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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로 Oct 29. 2023

사춘기 아이와 휴대전화 때문에 실랑이하는 밤

너도 나도 쟤도 남편도 스마트폰 중독

학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온 아이가 친구 전화를 받더니 잠깐 야시장에 다녀와도 되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래, 다녀오렴.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사 먹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돌아온 아이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핸드폰을 쥐고 소파에 길게 누웠어요.     


재미있게 놀았어? 그럼 이제 핸드폰 반납해.     


왜요?     


우리는 다시 핸드폰을 거실로 제출해서 관리하기로 했어. 우리 가족은 모두 스마트폰 중독이니까.      


아이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과장되게 한숨을 쉬었어요. 일부러 저를 화나게 하려는 수작이에요.     


또 시작이에요? 그리고 제가 암만 스마트폰 중독이라도 해도 엄마만 하겠어요? 흥, 이번에는 기껏해야 3일이나 가려나?     


엄마가 휴대전화 중독인 건 맞아. 그리고 3일만 가도 소원이 없겠어. 빨리 이리 내.


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무서운 표정으로 저를 노려봤어요.


참, 나랑 같이 공부하고 싶은 것 있다며? 갖고 와. 지금 시작할 거야.     


아이는 반항의 의미에서 저를 비웃는 표정으로 소파에 앉더니 다리를 꼬고 팔짱을 꼈어요. 그걸로도 모자라 한참이나 뚫어져라 노려보다가 공부할 거리를 주섬주섬 챙겨서 거실 테이블에 늘어놓았어요.  


아이는 더럽고 치사해서 엄마랑 공부 안 한다는 이야기는 절대 안 해요. 왜냐하면 제가 '옳다구나!' 하고 정말로 가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에요. 제가 명령조로 차갑게 굴어도 일단 함께 책상에 앉으면 집중해서 공부하게 되는 45분이 아쉬워서 엄마가 필요 없다는 말은 할 수가 없는 거예요. 그냥 자기가 성질부리고 괴롭혀도 그래도 "빨리 와! 이 녀석아, 어휴, 저 녀석이 진짜!"라고 하면서 공부하자고 제가 딱 버텨주기를 바라는 거예요. 공부하기 너무 싫고 엄마도 미워서 이렇게밖에 굴 수 없는 아이가 딱하기도 하고, 전생에 뭔 죄를 지었나 저런 눈깔로 째려봐도 이렇게 버텨야 하는 제 신세도 불쌍해서 한숨이 나왔습니다.


여기 빈칸에 들어갈 내용이 뭐야?     


아이가 뭘 자세히 보는 척하더니 책상에 엎드려서 일어나질 않아요. 일으켜 세웠더니 눈이 천근만근이라 제대로 뜨지를 못해요.      


그만 가서 자. 근데 나랑 싸웠던 시간에 공부를 했으면 모의고사 한 개는 풀었겠다. 내일 하자.     


아이는 날듯이 자기 방으로 들어갔어요. 휴대전화는 거실 나무 상자 보관함에 제출한 채로 들어갔으니 단잠을 자겠죠.


남편이 위로의 뜻으로 제 어깨를 부드럽게 두드리더니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군요.     


뒤통수에 대고 말했어요.     


휴대전화 저기에다 놓고 가. 얼렁뚱땅 넘어갈 생각하지 말고.     


남편이 시무룩한 얼굴로 휴대전화를 제출했어요.      


그리고 저도 자러 들어갔어요. 물론 제 휴대전화도 보관함에 놓아두었어요.     


휴대전화 없는 심심한 밤을 상상하니까 마음이 허전하고 불안했어요.


그 난리통에도 작은아이는 평화로운 얼굴로 책을 읽고 있었어요. 왜 쟤는 덤비고 싸우지 않았냐고요? 작은아이는 실수로 학원에 휴대전화를 놓고 왔거든요. 그래서 자신은 스마트폰 과몰입과 무관한 사람인양 미개한 인간들의 분쟁을 관망하며 느긋하고 기분 좋게 거의 몇 달 만에 책을 읽고 있던 거였어요.

아, 평화로운 존재가 하나 더 있었죠. 바로 달수씨예요. 달수씨는 왜 이렇게 시끄럽냐는 얼굴로 하품을 했어요.


그 꼴을 보니까 밤마다 누가 우리 가족에게 휴대전화 분실 서비스를 제공해 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근하고 돌아온 저녁에는 휴대전화가 사라졌다가 출근하기 전에 나타나는 거죠.


역시 획기적이야.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제 수첩에 적어놓았어요. 일단 직원은 저 혼자예요. 밤에 고객님의 집에서 자연스럽게 휴대전화를 수거하기 위해서 검은 옷을 입고, 고객님들은 자신이 스마트폰 중독자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할 테니까 서로 얼굴을 익히는 일이 없도록 내 쪽에서 스키 탈 때 쓰는 바라클라바를 써서 얼굴을 가리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여기까지 썼더니 뭔가가 자꾸 머릿속에 아른거렸어요. 이건 안 되겠다 싶어서 수첩에 적은 이 사업 아이템 위에 두 줄을 그었어요. 아무래도 한동안은 직장에 더 다녀야 할 것 같아요.


약 53번의 전투, 완패. 이번에는 과연 승리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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