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우리는 아이를 좋아해.

by 알로

달수씨는 맛있는 음식 먹는 것을 참 좋아합니다. 모처럼 뼈다귀나 귀한 빵을 얻어 방해받고 싶지 않을 때에는 켄넬에 들어가서 먹습니다. 우리 집에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몇 가지 규칙이 있는데 그중에 첫 번째는 달수씨가 켄넬 안에 들어가 있을 때에는 절대 그 안에 손을 넣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달수씨가 ‘으르르르’하는 소리를 낼 때에는 반드시 개한테서 손을 떼야하며 가급적 빨리 도망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나머지는 뭐 차차 적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켄넬 안은 치외법권이라고 해야 하나 달수씨만의 공간으로서 뭐가 되었든 일단 개가 그것을 물고 켄넬 안까지 도착했다면 깨끗하게 포기하거나 맛있는 간식으로 협상을 시도해야지 무작정 빼앗으려고 한다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되더라도 할 말이 없는 그런 곳입니다. 또한 그런 일을 당해도 다들 “그러게 왜 켄넬 안에 손을 넣니? 겁도 없이”라고 말하며 자업자득이라는 듯이 동정해 주지도 않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달수씨는 꼭 제 가방에 코를 박고 뭐 맛있는 게 없는지 검사를 합니다. 경조사 답례품으로 받아온 떡이나 호두과자가 있으면 그걸 입에 물고 쏜살같이 켄넬 안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예전에 빵에 발라먹으려고 커다란 버터 덩어리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녹아서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렸던 적이 있습니다. 각자 볼일을 하느라 잠깐 방심한 사이 달수씨가 재빨리 두 발로 일어서서 왼쪽 앞다리로 그것을 바닥에 떨어뜨린 후 물고 자기 켄넬로 뛰어 들어가 버렸습니다. 우리가 그걸 발견하고 최선을 다해 달려가 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켄넬 문을 닫으려고 했으나 사력을 다해 뛰어가는 네 발 짐승을 이길 수는 없었습니다. 켄넬 앞에서 오리고기 간식으로 협상을 시도하여 달수씨에게 버터를 돌려받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이미 그것은 온 집안의 먼지와 개털, 개침으로 범벅이 되어 있어서 더 이상 인간이 먹을 수 있는 식품이라고 할 수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버터를 돌려달라고 간절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제 다리에 매달리는 달수씨를 보다가 그걸 도로 주라고 큰아이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습니다.


삶은 달걀을 노리는 달수씨의 형형한 눈빛


누구 하나라도 행복하면 됐지.


제가 버터도 없이 뻑뻑한 식빵을 씹으며 힘없이 말하자 큰아이도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걸 두고두고 핥아서 아껴 먹느라 달수씨 얼굴은 기름에 젖어 한동안 짙은 갈색을 띄고 있었습니다.

예전에 큰아이와 셋이 뻥튀기를 나누어 먹을 때는 어땠습니까? 그때 우리는 셋이서 사이좋게 큰 비닐봉지에 든 뻥튀기를 나누어 먹고 있었습니다. 아이와 저는 소파에 앉고 달수씨는 바닥에 앉아 있었는데 저는 그때 우리가 순서대로 하나씩, 비교적 공평하게 먹었다고 생각합니다.


나 하나, 너 하나, 달수씨 하나... 앉은자리에서 뻥튀기를 절반이나 먹어치우고는 입천장이 까지고 배부르니까 이제 그만 먹자고 하면서 봉투를 묶어 소파 위에 올려 둔 그 순간 이상하게도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습니다.

설마 하는 사이 눈치를 보던 달수씨가 펄쩍 뛰어올라 그 비닐봉지를 물고 켄넬 안으로 뛰어들어 가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잡아! 빨리 잡아!


저는 소리쳤고 다행히 큰아이가 훌쩍 뛰어 켄넬 문을 닫는 것으로 달수씨의 뻥튀기 갈취 행각은 미수에 그칠 수 있었습니다.


얘가, 얘가 아주 무서운 애네. 그걸 혼자 다 먹으려고 들고 도망가니? 달수씨, 이 나쁜 놈아!


달수씨는 제 타박에 겸연쩍은 미소만 짓고 있었습니다.


어쨌든 미국대사관 못지않게 강력한 치외법권을 보장받고 있으며, 특례시에 소속되어 고유번호를 부여받은 반려동물로서 달수씨는 항상 자신의 권리를 알고 산책도 위풍당당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 리를 저절로 움츠러들고 눈치 보게 하는 대상이 딱 하나 있으니... 그건 바로 아이들입니다. 아기는 물론이고 어린 아이들도 그렇습니다. 이 친구들이 너무 좋은데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강아지 놀이터에서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어떤 아기가 달수씨에게 관심을 보인 적이 있습니다. 강아지를 이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처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 주머니 속의 간식으로 설득하여 달수씨가 제 명령에 따라 바닥에 앉은 후 손을 내밀고 바닥에 엎드렸다가 엄지와 검지로 만든 손가락 동그라미 안에 코를 집어넣는 공연을 해 보였습니다. 작은 손바닥으로 짤깍짤깍 박수를 치는 모습을 보니까 웃음이 저절로 나더군요. 달수씨도 자신의 퍼포먼스에 매우 만족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우리는 신나게 산책을 하다가도 아이들이 나타나면 줄을 짧게 잡고 한옆으로 공손히 비켜섭니다. 혹시라도 아기가 무서워할까 봐 아예 달수씨가 보이지 않게 가리고 조심조심 가장자리로 걸어갈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서정주 시인의 ‘동천’이라는 시 구절이 떠오르는데요, 그건 다음과 같습니다.


동천 – 서정주


내 마음속 우리 임의 고운 눈썹을

즈믄 밤의 꿈으로 맑게 씻어서

하늘에다 옮기어 심어 놨더니

동지섣달 나르는 매서운 새가

그걸 알고 시늉하며 비끼어 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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