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아들은 원래 다정한가요?

돈독이 올랐니? 꼴통 녀석아!

by 알로

큰아이와 함께 공연을 보러 가지 못한 지 오래됐습니다. 큰아이의 동의를 구해 예약했던 공연인데 갑자기 자기는 그런 거 보러 가고 싶지 않다고 화를 내면서 갈등이 촉발되었고 그날 티켓을 몽땅 날리게 된 일을 마지막으로 저는 큰아이와 함께 공연을 보는 것을 깨끗하게 포기했습니다.


둘째 아이와만 시간을 조율하면 되니까 오히려 무엇을 볼지 결정하기가 쉬워졌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작은놈이 왜 자꾸 자기만 공연을 보는데 잡혀가야 하는지 불만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반항을 할까 말까 망설이는 아이를 보면서 저는 이제 공연은 남편과 둘이 보러 가야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한숨을 푹 쉬었습니다.

둘째는 가을동화의 송혜교도 아니면서 돈이 많이 필요하다고 언제나 말했습니다. 그는 피시방도 가고 마라탕도 사 먹고, 게임 현질도 해야 하며 친구들과 마음이 맞으면 고기 뷔페에 가기도 합니다. 형은 학원과 스카에 다니면서 저녁을 사 먹느라 용돈을 충분히 받는데 얘는 일주일에 2만 원 받는 범위 내에서 이런저런 일들을 해결하려니 매번 빠듯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한 번은 공연을 보러 가주면 용돈을 조금 더 주겠다고 했더니 갑자기 태도를 바꿔 흔쾌히 동행하겠다고 말하더군요. 그리고 잠깐 생각을 해보더니 이왕이면 최저시급에 맞춰 계산을 해주면 좋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시급만 제대로 쳐준다면 어디든 따라가 주겠지만 그래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하는 공연을 봤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발레나 오페라 관람은 지양해 달라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이제 공연 날짜가 잡히면 인터미션을 포함한 공연 시간 및 왕복 시간을 계산하고 제가 지불해야 할 비용을 따져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남편에게는 비밀입니다. 아마 알게 된다면 펄쩍 뛰면서 공연이고 뭐고 집어치우라고 화를 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남편도 억지춘향으로 공연에 잡혀가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참에 잘 되었다 이 일을 핑계로 지긋지긋한 일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하거나 최악의 경우 자기에게도 시급을 쳐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여름휴가에서 큰아이가 집에 돌아간 후 우리는 식당에서 매일 이른 아침 식사를 하고 절에 다니며 구경을 했습니다. 둘째는 이제 까칠한 형이 집에 갔으니까 자기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는데 절에 가자고 하니까 기분이 몹시 상한 것 같았습니다. 식당에 가기 전 숙소에서 자기는 절에 가기 싫다고 투덜거려서 남편 몰래 우리의 협정에 따라 시급을 계산하겠다고 속삭이니까 금방 서글서글한 미소를 지으면서 따라나서더군요.


짜증 나서 찡그린 얼굴로 땡볕 아래를 걷다가도 함께 사진을 찍을 때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고 눈을 부라려주면 금방 다정하게 태도를 바꾸어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이쪽저쪽 자리를 바꿔가며 저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인 것처럼 웃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가히 자본주의 미소라고 할 만했습니다.

양양의 휴휴암에 갔던 날의 일입니다. 절을 다 돌아보고 계단을 내려가 황어 떼가 우글거리는 바위 근처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이곳에서는 물고기 밥을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물고기들이 모여서 서로 먹이를 먹으려는 모습이 장관이라고 했거든요. 가두지 않아도 자연산 물고기들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며 갈매기들도 이곳에서는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 신비롭고 평화로운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곳에 내려가려고 했는데 작은놈이 제 팔을 살짝 붙잡고 능글맞게 웃으며 ‘날씨가 너무 뜨겁고 저기는 절이 아니니까 5000원 정도 추가 비용을 지불하셔야 되겠는뎁쇼.’라고 말했습니다.


갈매기조차 물고기를 잡아먹지 않는 완벽하게 아름다운 이곳에서 양산 대신 쓰고 다녔던 우산으로 이 녀석을 서너 대 두들겨 패줘야 되나 고민이 됐습니다. 아주 그냥 절에 온 김에 부처님을 뵙고 오게 해 줄까 하는 생각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물고기 구경을 아주 고대했기 때문에 그것을 망치고 싶지 않아서 이를 앙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둘째 아이는 펄펄 날 듯이 계단을 내려가서 물고기밥을 사서는 저한테 두 주먹만 나누어 주고 지가 신나서 물고기 밥을 다 줘버리더니 그것을 먹으려고 튀어 오르는 황어 떼를 구경하는데 여념이 없었습니다. 얘는 중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대충 짐을 정리하고 소파에 누웠는데 작은아이가 주변 눈치를 보면서 은밀하게 다가와서 넉살 좋게 웃으며 이제 정산을 해달라고 했습니다. 토스 뱅크로 보내달라고 하더군요. 네, 이런 일은 신뢰가 생명입니다. 약속한 돈을 부쳐주지 않으면 이제 다음은 없는 겁니다.


어휴, 이 새끼야, 돈에 환장했냐? 환장했어?

저는 약이 올라서 소파에 누운 채로 아이를 향해 허공에 발길질을 했습니다. 꼴통 녀석은 저를 바라보며 느끼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고는 외출을 했습니다.


남편에게 욕을 할 수도 없는 일이니까 거실에 누워 낮잠을 자는 강아지 귀에 아휴, 저 꼴통 때문에 속이 터진다고 속삭이자 강아지는 자기 옥수수를 빼앗아가는 줄 알고 으르렁 화를 내고 자기 켄넬로 가버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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