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는, 오늘을 견디게 하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면
나는 늘 도리스 리의 〈Thanksgiving〉을 먼저 떠올린다.
따뜻한 기운이 부엌 가득 번지고,
누군가는 반죽을 하고,
누군가는 작은 아이의 손을 잡아 부드럽게 달래며
하루의 온기를 식탁 위에 올려놓는 장면들.
그 풍경이 유독 내 마음을 오래 붙든 이유는
그 화가의 성이 리(Lee),
나와 같은 이름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피 한 방울 섞인 인연도 아니지만
그저 성 하나가 겹쳤다는 이유만으로
나는 그 부엌의 공기 속에 내 삶의 체온이 스며 있는 듯 느껴진다.
낯선 땅에서 오래 살아온 사람에게
이런 작은 우연은 때로 ‘나를 부르는 신호’처럼 다가온다.
도리스 리의 그림 속 풍경은 화려하지 않다.
끄트머리가 닳아가는 삶의 자리,
부엌이라는 가장 속 깊은 공간에서
누군가는 채소를 다듬고,
누군가는 냄비에 불을 맞추고,
누군가는 식탁 위 작은 접시 하나에도 진심을 얹는다.
그 소박한 움직임 속에
‘함께’라는 단어가 가진 오래된 온도가 은은히 깃들어 있다.
1621년, 혹독한 겨울을 견디고
원주민들과 첫 수확을 나누던 청교도들의 기도 또한
아마 이런 손길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오늘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살아남았다는 사실 하나가 이미 축복이었던 시절,
감사는 그렇게 손과 손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늘의 풍경은 조금 달라졌다.
어딘가에서는 가족들이 모여 촛불을 밝히고,
또 다른 곳에서는
블랙프라이데이를 기다리며
새벽의 세일 알림을 켜둔다.
도시는 따뜻한 집의 불빛과
화려한 쇼핑몰의 전광판 사이에서
두 개의 다른 리듬으로 깜박인다.
하지만 누구의 방식이든
그 속에는 나름의 ‘감사의 자리’가 있다.
사람들은 각자의 삶이 허락한 방식대로
조용한 행복을 찾아간다.
내게 추수감사절은
이웃에게 마음을 건네는 날이 되었다.
몇 해 전부터 나는 햄과 포도주, 맥주를 들고
조용히 초인종을 눌렀다.
“Happy Thanksgiving!”
그 한마디는 생각보다 따뜻한 온도를 가지고
이웃과 나 사이의 공기를 조금씩 바꾸어놓았다.
올해는 한국의 맛으로 감사를 건네고 싶었다.
김과 막걸리—
소박하지만 나의 근원이 스며 있는 선물들.
예전에 제시카의 딸 쟈스민이
우리 집에서 김을 먹고
“이건 바삭하고 짭짤한 매직이야!”
라고 감탄하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이의 한마디는 오래된 빛처럼 남아
올해의 선물까지 자연스레 이어졌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김 선물 세트를,
제시카 부부에게는 막걸리 한 병을 준비했다.
“조금 달지만 부드러운 한국식 와인이에요.”
그 말을 전하는 순간
낯선 문화가 마음의 온기로 이어지는
작고도 분명한 흐름이 생겨났다.
감사는 이렇게
큰 사건이 아니라 작은 자리에서 피어난다.
문을 열러온 손님이 남긴 미소,
아이의 맑은 웃음,
반려견 루나가 발등 위에 얹는 따뜻한 머리.
그 사소한 온기들이
내 삶의 깊은 곳에서 천천히 빛을 만든다.
루이자 메이 올컷은 말했다.
“감사란, 큰 행운이 없어도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마음속에 켜지는 등불이다.”
나는 그 말을 오늘처럼 선명하게 이해한 적이 없었다.
삶의 작은 등불들을
내가 얼마나 쉽게 흘려보내며 살았는지도
그제야 알게 되었다.
밤이 내려앉고
창밖에는 초승달이 얇게 걸려 있었다.
루나는 내 발등을 베고
고른 숨을 쉬며 잠들어 있었다.
그 체온이 이유 없이, 그러나 정확하게
나를 위로했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감사는 말이 아니라
살아 있음의 증거라는 것을.
이별이 있었기에 오늘이 있고,
그리움이 있었기에 사랑이 있고,
사랑이 있었기에
지금 이 순간도 조용히 빛난다는 것을.
김 한 장, 막걸리 한 잔 속에서도
감사는 피어난다.
그리고 그 작고 단단한 불빛은
내일을 건너갈 힘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