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피어나는 순간

노동의 자리에서 듣게 된 마음의 꽃소리

by 운조



우리는 누구나 인생 어느 지점에서 문득,

소리 없는 꽃이 피어나는 순간과 마주한다.

그 순간은 종종 아주 작은 움직임에 숨어 있다.

책장을 넘기는 소리 한 줄기, 바늘 끝이 천을 가르는 한 땀,

혹은 오래된 마음에 햇빛이 닿는 아주 사소한 장면 속에서.


그동안 나는 그 순간들을 놓치며 살았다.

일을 하느라, 살아내느라, 견디느라 마음의 문을 걸어 잠근 채

스스로도 모르게 많은 봄날들을 흘려보냈다.


그러나 이제, 늦게나마 알게 되었다.

꽃이 피는 소리는 자연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삶의 틈틈이, 내 마음 깊은 곳에서도 들린다는 것을.

그 소리를 알아듣는 일이야말로 인생 후반부에 허락된

가장 은밀하고 아름다운 풍류라는 것을.


이 글은 그런 ‘내면의 개화’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노동의 자리에서, 바늘 한 땀에서,

세탁소의 스팀 속에서, 그리고 한 권의 책에서

조용히 피어오르던 내 마음의 꽃소리들을 기록해 두고자 한다.


이제, 당신의 마음에도

어떤 조용한 봄이 찾아오기를 바라며—.




얼마 전, 고교 후배가 쓴 글 하나가 내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남겼다.

그는 동문 독서모임을 소개하며, 다산 정약용과 선비들이 결성했던 죽란시사(竹欄詩社) 이야기를 꺼냈다.


살구꽃이 피면 모이고, 복사꽃이 피면 또 모이며,

국화 위에 첫눈이 사뿐히 내려앉는 날에는 특별히 다시 모였다는 사람들.

그들은 동이 트기 전 연못가에서 숨을 고르고 귀를 기울였다.

연꽃이 열리는 찰나에 들린다는 청개화성(聽開花聲)—

꽃이 피는 소리를 들으려는, 그 맑고도 깊은 마음의 여백.


그 풍류 앞에서 나는 한동안 글을 넘기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그 시간을 받아낼 마음의 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후배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여유란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창고에 자리를 마련하는 일이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붙들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살아내야 한다는 이유로

시간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잃어버리고 있었던 지난 세월이 떠올랐다.


이민 초창기, 나는 바느질 기술 하나로 하루를 이어갔다.

시어머니가 해주던 말—

“바느질만 잘해도 굶지 않는다.”

그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었다.

새로운 땅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나를 붙잡아 준 빛이었다.


양재학원에서 처음 실을 바늘귀에 꿰었을 때,

내 손끝은 어색하고 떨렸지만 마음만은 기도하듯 고요했다.

그 후로 바느질은 노동을 넘어

내 삶을 다시 꿰매고 이어주는 일종의 숨결이 되었다.


세탁소 일을 시작하면서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옷은 단순한 천이 아니라,

사람의 하루와 버팀의 흔적을 품고 있는 또 하나의 신체라는 것을.


어떤 바지는 무릎이 닳아 있었고,

어떤 셔츠는 팔 뒤꿈치가 조용히 헤져 있었다.

책상 앞에서 오래 팔꿈치를 괴고 글을 쓰던 사람일까,

아니면 생계를 위해 하루 종일 버텨야 했던 노동자의 팔꿈치였을까.


그 작은 해짐 속에는

그 사람이 넘겼을 수많은 오후와

묵묵히 견뎠을 긴 저녁들이 조용히 접혀 있었다.


나는 그 자국들을 스팀으로 펴고,

섬세하게 다시 다듬으며 배웠다.

삶은 우리 몸의 가장 많이 닿는 곳부터 서서히 피어나고,

또 그렇게 서서히 닳아간다는 것을.


바늘이 천을 통과하며

아주 작은 소리를 내는 순간이 있다.

삶이 무거운 날에도,

그 소리는 한 땀 한 땀 나를 붙들어 주었다.

어쩌면 그것도 또 다른 청개화성이었을 것이다.

꽃 대신, 내 마음이 조용히 피어오르는 소리.


후배의 독서모임 이야기는 그 때문에 더 깊게 스며들었다.

거주지를 순회하며 한 사람이 책을 소개하고,

발표와 토론이 끝나면 식사까지 내어놓는

아주 단순하고도 따뜻한 모임이라 했다.


작은 모임이지만, 그 속에는 오래된 풍류의 온기가 있었다.

여유를 ‘시간의 남음’이 아니라

‘마음의 순도’로 이해하는 사람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그들이 읽을 책 목록을 보며 나는 미소가 지어졌다.

『호모 데우스』, 『장미의 이름』, 『월든』, 『장자』, 『적절한 균형』, 『세계사편력』…

철학과 종교, 문학과 과학이 한 바구니에 수북이 담겨 있었다.

두 해는 걸릴 거라 했지만,

나는 생각했다.

책을 다 읽는 데 걸리는 시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책들이 우리 마음 속에서 천천히 피어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진짜라는 것을.


삶이 파란만장하다는 말은

사건이 많아서가 아니라

마음 속에서 꽃이 피어나는 순간들이 많다는 뜻이 아닐까.


세탁소의 스팀이 피어오르는 아침에도,

바늘 끝에서 실이 매끄럽게 빠져나가는 순간에도,

선교지의 마른 흙을 파던 한낮에도

나는 문득 문득, 내 마음 어딘가에서

아주 조용한 개화를 느껴왔다.


그 순간들이

무너지던 날을 붙들어 주었고,

견디던 날을 단단하게 해주었으며,

살아내던 날을 조금 더 따뜻하게 데워주었다.


후배의 글 덕분에 나는 오늘 다시 깨닫는다.

우리에게 필요한 풍류는

연못가에서 꽃 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울림을 알아채는 일이라는 것을.


바늘 한 땀, 책장 넘기는 소리,

커피포트가 끓어오르는 새벽의 소리까지도

모두 내 안에서 꽃 피어오르는 조용한 신호들이었다.


남은 생의 1/3을 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

여유를 소유가 아니라 태도로 이해하며,

마음을 비워둘 자리를 스스로 마련하며,

내면의 풍류를 잃지 않은 채 천천히 걸어가고 싶다.


오늘 나는 후배가 남긴 글의 흔적 위에

내 삶의 조용한 꽃소리를 덧붙여 본다.

책 한 권, 바늘 한 땀, 하루의 작은 숨결 속에서

마음은 언제든 다시 피어날 수 있으니까.


그 개화의 순간을 조용히 기다리며—

이 글을 오늘의 파란만장한 책갈피로 남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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