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이 여가를 떠난 순간
쇼핑을 싫어하게 된 건 아니다.
다만 어느 순간부터, 쇼핑이 피곤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예전의 쇼핑은 선택 사항이었다. 시간이 남을 때, 굳이 아무것도 사지 않아도 될 때, 구경하듯 나서는 일이었다. 목적 없이 들어간 가게에서 옷걸이를 밀어보고, 거울 앞에서 망설이며, 결국 아무것도 사지 않고 나오는 날도 많았다. 쇼핑은 소비라기보다 머무는 시간이었고, 그 시간 자체가 여가였다.
그러다 어느 문장을 읽었다.
쇼핑은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귀찮은 일이 되었다는 말이었다. 새로울 것 없는 문장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오래 붙잡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미 나는 쇼핑을 ‘하고 싶은 일’이 아니라 ‘언젠가 처리해야 할 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온라인 쇼핑은 분명 편리하다. 집을 나서지 않아도 되고, 가격은 한눈에 비교할 수 있으며, 후기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바로 그 편리함 앞에서 우리는 자주 멈춰 선다. 무엇을 살지보다,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가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하나를 사기 위해 수십 개의 선택지를 검토하고,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했는지 스스로를 검증한다. 더 싸게 살 수 있었던 건 아닐지, 평점이 더 높은 제품을 놓친 건 아닐지 계속해서 확인한다.
클릭은 결정을 끝내는 행위가 아니라, 결정을 미루는 습관이 된다.
쇼핑은 더 쉬워졌지만, 동시에 더 피곤해졌다. 우리는 소비자가 아니라 구매 담당자처럼 행동한다. 장바구니에는 물건이 가득 쌓이지만, 마음은 늘 미결 상태다. ‘일단 담아두자’는 말은 이제 ‘언젠가 판단해야 할 것들’이라는 뜻이 된다.
예전에는 “나가서 뭐 좀 살까”라고 말했는데, 이제는 “주문해야 할 게 있었지”라고 생각한다. 쇼핑은 외출의 이유가 아니라, 틈새 시간에 처리해야 할 업무처럼 일상에 끼어든다. 배송 알림은 기쁨이 아니라 확인해야 할 또 하나의 알림이 되고, 도착한 물건은 정확하지만 쉽게 잊힌다. 언제 샀는지, 왜 필요했는지 금세 흐려진다.
반면 오래된 가게에서 우연히 샀던 물건 하나는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그날의 날씨, 가게 안의 냄새, 계산대 앞에서 나눴던 짧은 말까지 함께 떠오른다. 물건보다 경험이 먼저 남았기 때문이다. 쇼핑이 여가였을 때는 물건이 아니라 시간이 기억에 남았다.
어쩌면 쇼핑이 귀찮아진 이유는 선택지가 너무 많아져서가 아니라, 감각이 너무 얇아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빠르게 사고, 더 자주 사지만, 덜 느낀다. 모든 선택을 합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쇼핑마저 성실하게 수행해야 할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가끔은 일부러 불편한 선택을 해보고 싶어진다. 직접 가게에 가서 물건을 보고, 실패할 가능성을 감수하는 일. 더 나은 선택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내려놓는 소비. 그것은 쇼핑을 다시 즐거움으로 되돌리기 위해서라기보다, 삶의 모든 순간이 효율과 최적화로만 평가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허락하는 일이다.
장바구니는 가득한데, 마음은 여전히 비워지지 않는다.
쇼핑이 일이 되었을 때, 비로소 알게 된다.
문제는 무엇을 사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언제부터 삶을 이렇게까지 부지런히 관리하며 살고 있는가 하는 질문이라는 것을.
물건보다 마음을 더 천천히 고르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