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결국 한 끼의 식사였다

식사하셨어요 ?

by 운조




​ "안부를 묻던 질문 '식사하셨어요'가 손을 내미는 제안 '밥 먹자'가 되기까지, 우리를 다시 살게 하는 한 끼의 의미에 대하여."



― 삶의 끝에서 남은 가장 오래된 인사


​오래전, 우리의 인사는 늘 “식사하셨어요?”였다.

​그 말은 형식적이었으나, 동시에 형식 이상이었다. 상대의 안부를 묻는 가장 구체적인 질문이었고, 오늘 하루라는 강을 무사히 건너왔는지를 확인하는 생활의 언어였다. 밥을 먹었느냐는 물음은 곧 살아 있느냐는 확인이었으며, 막연한 “잘 지내느냐”는 말보다 훨씬 정확하고 다정한 안부였다.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의 마지막 대사, “밥 먹자”를 듣는 순간 나는 그 오래된 인사를 떠올렸다. 사라진 줄 알았던 말이 결을 달리하여 돌아온 것만 같았다. “식사하셨어요?”가 타인의 안위를 살피는 질문이었다면, “밥 먹자”는 그 안부에 대한 응답이자 다음 장면을 함께하자는 제안이다.


​김 부장은 평생 밥을 책임져온 사람이었다. 회사에서는 실적과 숫자로, 집에서는 가장이라는 무게로 생활을 떠받쳤다. 그는 누구보다 치열하게 '밥벌이'를 해왔지만, 정작 “식사하셨어요?”라는 진심 어린 질문을 받아본 적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그의 하루는 늘 다음 성취를 향해 달려 나갔고, 그에게 밥이란 일과 일 사이 끼워 넣는 생존의 도구에 불과했을 테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던진 “밥 먹자”는 특별하다. 그 말에는 화려한 성공도, 극적인 회복도, 거창한 희망도 담겨 있지 않다. 대신 아주 오래된 감각이 되살아난다. 오늘을 살아냈다는 사실, 그리고 그 하루의 끝을 혼자 넘기지 않아도 된다는 암묵적인 약속. 그것은 한때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던 “식사하셨어요?”라는 인사의 가장 따뜻한 현재형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이 질문을 잊어버렸다. 대신 바쁨의 정도를 묻고, 성과의 유무를 묻고, 다음 계획을 묻는다. 잘 먹고 있는지, 잠은 잘 자는지, 오늘 하루가 고단함에 무너지지는 않았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렇게 인사는 건조해졌고, 관계의 밀도는 얇아졌다.


​드라마는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이 메마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타이틀이 벗겨지고, ‘부장’이라는 이름이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빈자리에서 김 부장은 가장 본질적인 언어를 꺼낸다.


​“밥 먹자.” 그것은 “식사하셨어요?”라고 차마 묻지 못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뒤늦은 답변처럼 들린다. 그 말은 거창한 위로가 아니다. 명쾌한 해결책도 아니다. 다만 오늘을 계속 살아가겠다는 담담한 선언이다. 실패한 사람도, 삶이 잠시 무너진 사람도 여전히 밥을 먹어야 하며, 누군가와 마주 앉을 자격이 충분하다는 조용한 확언이다.


​어쩌면 우리는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모른다. 잘 지내느냐는 관습적인 인사 대신, “식사하셨어요?”라고 진심을 담아 묻는 법을.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밥 먹자”라고 먼저 손을 내미는 법을.


​이 드라마의 엔딩이 긴 여운을 남기는 이유는 분명하다. 삶은 언제나 거창한 결말보다, 따뜻한 한 끼의 식사에서 다시 시작되기 때문이다.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