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검사라는 말이 남긴 질문

기다림의 자리

by 운조


​임신 소식과 함께 들려온 단어는 뜻밖에도 ‘젠더검사’였다.

​작년 가을 결혼한 친구의 딸이 엄마가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이, 친구는 덧붙이듯 말했다.

“요즘은 젠더검사를 하더라.” 그 말이 낯설었다. 거부감이라기보다는 생경한 호기심에 가까웠다.

언제부터 우리는 아이의 성별을 ‘검사’라는 차가운 말로 부르게 되었을까. 그 말이 이상하게도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내가 아이를 가졌던 시절을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몸이 많이 약했다. 입덧보다 기력이 먼저 빠졌고, 계단 몇 개만 올라도 숨이 턱 끝까지 찼다. 결국 보약이라도 지을 요량으로 동네 한의원을 찾았다.

​한약 냄새가 은은하게 퍼진 진료실. 늙은 한의사는 말없이 내 맥을 짚었다. 시계 초침 소리만 들리는 정적 속에서 나는 그저 눈을 감고 누워 있었다. 손목 위로 서늘하고도 따뜻한 손가락이 머물던 시간. 얼마나 흘렀을까, 선생님은 담담하게 말을 건넸다.

​“아들이네요.”


​그것은 검사 결과도, 데이터도 아니었다. 초음파 화면도, 의학적 수치도 없었다. 그저 타인의 손끝을 타고 전해진 미세한 파동 같았다. 과학적 근거를 따질 이유도 없었다. 아이는 이미 내 몸 안에서 하나의 우주로 살아가고 있었고, 누군가는 그 맥동을 읽어낼 수 있다고 믿던 시대였으니까. 성별은 미리 확보해야 할 정보가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이야기의 일부였다.


​요즘은 다르다. 임신 10주만 지나도 혈액을 통해 태아의 염색체 지도를 그려낸다. 본래는 건강을 살피기 위한 의학적 절차라지만, 사람들은 그 과정에서 '성별'을 가장 먼저 끄집어내 이름 붙인다. 기술이 발달하며 알아낼 수 있는 것은 많아졌지만, 우리가 무엇에 먼저 이름을 붙이는가는 여전히 선택의 영역이다.


​요즘 부모들은 더 많은 정보를 더 빨리 얻고, 그만큼 더 완벽하게 준비한다. 그것은 진보이고 책임감일 것이다. 다만 그 빠른 앎의 속도 속에서, '기다림의 자리'는 여전히 남아 있을까 궁금해진다.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본래 불확실했기에 더 간절했다. 성별(Gender)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를 먼저 떠올리던 그 느릿한 감각.

​이 기록은 시대에 대한 판단이 아니다.

언어가 바뀌며 삶을 느끼는 속도가 달라지고 있음에 대한 조용한 관찰이다.

‘젠더검사’라는 말이 내게 남긴 것은 태아의 성별이 아니었다. 우리가 얼마나 빨리 알고, 얼마나 서둘러 준비하며 사느라 생명의 일렁임을 고요히 지켜볼 기회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기다림의 자리


​손끝으로 전해지던

한 생명의 일렁임

​예전엔 마음이 먼저 가서 닿았고

지금은 숫자가 먼저 와서 박힌다


​핏줄 속을 흐르는 것은

염색체인가, 아니면

차마 다 읽지 못한 사랑인가


수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