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없는 세상의 노래

산책길의 묵상:

by 운조


아침 햇살은 더디지만 은밀하게 골목을 기어오르고, 하루가 채 깨어나기 전의 고요 속에 나는 산책길 초등학교 담장 곁을 걷는다. 철망 너머 운동장이 희미하게 시야에 들어오고, 교문 옆 전광판의 붉은 글씨가 문득 시선을 붙든다.

“We are a peanut free school.”


‘땅콩이 없습니다.’

짧은 영어 한 줄이 유난히도 뚜렷하게 마음에 박힌다. 처음에는 그저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들을 위한 안전 문구려니 했다. 작은 견과류 하나가 누군가의 생명을 위협할 수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라면서도, 동시에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무언가를 *‘제외하는 공간’*이 있다는 것에 묘한 안도감을 느꼈다. 배려란 이렇듯 사소한 곳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으니까.


하지만 며칠이고 같은 길을 오가며 그 문장을 마주할수록, 나는 그 속에 더 깊은 의미가 숨어 있음을 직감했다.



문득, 땅콩 알레르기가 있는 아이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단 한 알의 땅콩이 입에 닿는 순간, 아이의 얼굴은 순식간에 붉게 부어오르고 숨쉬기조차 힘들어지는 아나필락시스 쇼크가 올 수 있다는 이야기. 작은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그 아찔한 순간을 상상하니, ‘땅콩이 없습니다’라는 문장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이 문장은 단순히 특정 음식을 금지하는 것을 넘어,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학교의 간절한 노력, 그리고 공동체 전체의 섬세한 배려를 담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의미의 ‘땅콩’도 문득 스쳐 지나갔다.

오래전 누군가의 입가에 맴돌던 농담 같은 말.

“이번엔 땅콩 좀 넣어야지.”

혹은 한밤중 주차된 차 안에서 조심스럽게 건네지던 납작한 봉투를 뜻하던 말.


겉보기엔 작고 소박하나, 그 속에 담긴 의미는 묵직하고 불투명했다.

이청준 작가의 소설 『병신과 머저리』에서 '땅콩 껍질'은 주인공 중 한 명이 겪는 내면의 갈등과 외부와의 타협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땅콩 껍질을 까는 행위가 사실은 감추고 싶은 진실, 혹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과 마주하는 은유였듯이, 내가 마주한 '땅콩' 역시 작고 사소해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과 타협의 의미를 담고 있었다.


그렇게 보니, 매일 아침 전광판이 속삭이는 한 줄은 단순한 위생 지침을 넘어선, 더 큰 의미의 선언처럼 다가왔다.


우리는 아이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작은 위험조차 허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용한 타협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약점을 거래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작지만 유해한 것을 경계합니다.


그 순간, 전광판의 문장이 하루를 시작하는 내게 말을 거는 듯했다.

“당신의 마음도 땅콩 없이 가고 있나요? 당신의 하루도 누군가에게 무해한가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췄다.

무의식중에 던졌던 말 한마디, 무심코 내뱉은 눈짓 하나가 누군가에겐 숨 막히는 알레르기였을지도 모른다는 자각이 번개처럼 스쳤다. 나의 사소한 언행이 누군가의 하루를 붉게 부어오르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 한편이 아려왔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내 마음속에도 하나의 전광판을 달았다.

그 위에는 매일 같은 문장이 번쩍이며 나를 비춘다.


“My mind is peanut free.”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해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조심하고, 배려하며, 때로는 불필요한 것을 기꺼이 제거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제 나는 학교 앞을 지날 때마다 그 문장이 마치 내 이름을 부르는 것처럼 느껴진다. 담장 너머로 뛰어노는 아이들의 맑은 웃음소리가 바람을 타고 들려올 때면, 이 세상이 참 괜찮아 보인다.


작은 땅콩 하나가 금지된 공간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여전히 희망을 노래할 수 있는 존재임을 믿게 된다.


땅콩이 없는 학교,


땅콩이 없는 마음,


땅콩이 없는 하루.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늘 하루도, 나는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이 산책길을 걸어가고 있다.

땅콩꽃

주렁 주렁 달린 땅콩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