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에서
텃밭은 씨앗을 심고 열매를 거두는 곳이 아니다.
작은 생명들이 부딪히며 공존을 배우는,
나만의 우주다.
.........
나의 텃밭, 그 초록의 심장은 가장 먼저 상추의 연한 얼굴로 고동쳤다.
아침마다 싱싱한 잎을 조심스레 뜯어 식탁에 올리던 기쁨이라니.
상추 위에 삼겹살을 얹고 쌈장을 살짝 더해 돌돌 말아 먹는 한 입의 기쁨은,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근사했다.
거의 매일 상추를 먹으며 그 풍요로움을 이웃의 식탁에까지 나누었다.
그러다 어느 날, 상추는 연보랏빛 꽃대를 길게 드리우며
자신만의 절정을 노래했고,
이내 다음 생명을 위해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었다.
상추의 시대가 저물자, 파릇한 오이들이 주렁주렁 열리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이슬을 머금은 오이를 따고,
더운 날엔 시원한 오이냉국,
때론 아삭한 오이무침으로 여름의 입맛을 달랬다.
햇살 아래 호박의 둥근 배도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
얇게 썬 애호박을 지져 만든 노릇한 부침개,
잔치국수 위에 얹은 고명까지—
텃밭은 나의 식탁을 매일 풍성하게 채워주었다.
이제 보랏빛 가지의 계절이다.
그 탐스러운 자태가 텃밭 한 귀퉁이를 조용히 물들인다.
오늘 아침에도 가지 두 개를 조심스레 따냈다.
그런데 문득, 잎마다 뚫린 작은 구멍들이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당벌레인지 풍뎅이인지 모를 작은 생명체들이
잎맥을 부지런히 갉아먹고 있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장갑 낀 손을 뻗어 그 존재를 조심스레 집어 들었다.
손안의 작은 무게.
그 순간, 생각이 멈췄다.
가지도 생명이고, 이 작은 벌레도 분명 생명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토록 서슴없이 벌레를 제거하려 했을까?
햇살 아래 반짝이는 가지 잎,
그 구멍들 사이로 영롱한 빛이 스며든다.
나는 그 빛을 바라보며 문득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이 텃밭에서 수고한 나의 손길과 기다림이 깃든 열매들이
온전히 나의 것이길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작은 벌레의 덧없는 생명보다,
내가 가꾼 작물의 온전함을 우선시하는 이 마음은
이기심이라기보다 삶의 본능에 가까운 것일지도.
이 작은 텃밭은
그저 씨앗을 심고 열매를 거두는 공간이 아니다.
생명과 생명이 부딪히며, 공존을 모색하는 작은 우주다.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우주의 진리가 담겨 있다.”
가지 잎의 작은 구멍 하나에서도
나는 자연의 섭리와 생명의 끈질김을 본다.
헤르만 헤세는 정원을 ‘영혼의 쉼터’로 여겼다.
그는 자연 속 고요와 고독을 사랑했다.
그의 시적 산문 『Bäume (나무들)』에 나오는 한 구절은 이렇게 말한다:
“Whoever has learned how to listen to trees no longer wants to be a tree.
He wants to be nothing except what he is.”
— Hermann Hesse, Bäume
“나무의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인지 외에는 아무것도 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곳에서 나 또한
나의 존재를 돌아보고,
작은 열매 하나에서 큰 위안을 얻는다.
잎을 갉아먹는 조용한 움직임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삶의 방식을 본다.
그들은 그저 본능대로 살아갈 뿐.
가지 잎은 그들에게 세상의 전부이자 생명의 터전이다.
나의 텃밭은 그들에게도 하나의 작은 우주다.
“Reverence for life is the foundation of all ethics.”
— Albert Schweitzer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말했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은 모든 윤리의 기초이다.”
그 말처럼, 나의 텃밭은 단지 나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생명이 함께 숨 쉬는 공존의 터전이어야 함을 나는 배운다.
오늘도 나는, 가지를 따고
때로는 벌레를 조심스레 옮겨 놓는다.
나는 인간으로서
나의 욕구와 관점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한다.
가지를 보호하려는 행위는
식탁을 채우고자 하는 욕망이자,
내가 뿌린 노력의 결실을 지키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다.
그러나 그 선택이
다른 생명에게는 위협이 될 수 있음을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이 미묘한 경계 위에서,
나는 오늘도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은 노력을 계속한다.
당신의 텃밭은 당신에게 어떤 공간인가요?
단순히 식량을 얻는 공간을 넘어,
생명과 생명이 부딪히며 공존을 배우는 작은 우주일지도 모릅니다.
당신만의 ‘가지’는 지금 어떤 빛을 머금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