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그 의사의 손은 조금 다르게 닿았다」*

— 이름이 아니라, 마음으로 닿는 손길

by 운조


그 의사의 손은 조금 다르게 닿았다


“그분도 의사예요. 기본적으로 같아요.”


미국의 병원 접수창구 앞에서 들은 짧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 ‘기본적으로 같아요’라는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왜 굳이 ‘같다’고 말하는 걸까.

그 말 뒤에 숨은 ‘다름’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알게 되었다.

누군가의 손이 ‘조금 다르게’ 닿을 때,

그 다름이 누군가에겐 기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미국에서 병원을 다니며 처음 DO라는 세 글자를 알게 되었다.

Doctor of Osteopathy, 정골의학 의사.

의사 이름 뒤에 붙은 작은 이니셜 하나가 낯설었지만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남았다.

사람들은 그저 “의사예요, 같아요”라고 말했지만,

내 안에는 자꾸만 ‘다름’이 있다면 무엇일까라는 질문이 머물렀다.


나는 그 다름을 조금씩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되었다.

그 작고 조용한 차이는 바로, 손끝에서 시작된 이야기라는 것을.


기계도, 차트도, 영상도 없던 시절.

의학은 본래 사람의 손에서 시작되었다.

아픈 이의 등을 쓸어보고, 맥을 짚으며, 살아 있는 몸의 언어를 읽던 그 시대의 의사들.

DO는 지금도 그런 손의 전통을 지켜가는 이들이다.


그들의 손은 뼈와 근육의 긴장을 느끼고,

몸 전체의 균형을 손끝으로 읽어낸다.

단지 통증을 없애는 것을 넘어

삶의 흐름과 무게까지 함께 어루만진다.


“스트레스는 어떠세요?”

“요즘 잠은 잘 주무세요?”

“몸 말고, 마음은 어떠세요?”


DO의 손길은 병보다 사람을 먼저 바라본다.

그리고 그 손은 아픈 부위보다

그 아픔을 견디고 살아가는 *‘하루’*에 닿는다.



나는 문득 조선의 의사 허준을 떠올렸다.

『동의보감』을 지은 그 역시 병보다 사람을 먼저 보려 했다.

맥을 짚는 손끝에 담긴 마음,

몸보다 삶을 더 깊이 들여다보려는 태도는

시대를 넘어 닮아 있었다.


DO는 사실, 의사가 되지 못할 뻔한 사람들이 선택한 길이기도 하다.

MD 입시에서 점수와 조건에 밀린 이들이

‘다른 가능성’을 좇아 택한 길.

하지만 그들은 단지 ‘다른’ 의사가 아니라,

어쩌면 진짜 의사였다.


도시보다 시골을, 수익보다 진료를,

‘병’보다 ‘사람’을 먼저 택한 그들의 손길은

의사라는 이름보다

의사라는 의미를 지켜낸 것이었다.


오늘날 DO와 MD는 거의 같아졌다.

같은 시험을 치르고, 같은 수술실에 서며, 같은 병원에서 일한다.

하지만 그 손길에는 여전히 작은 차이가 있다.

조금 더 천천히, 조금 더 다정하게 닿는다.

그리고 그 다정함이 어느 날의 나에겐

기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누군가가 나를

‘환자’가 아닌 ‘사람’으로 바라봐 준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나는 지금 다시 의사를 고르는 중이다.

이름 뒤의 이니셜도 이제는 눈에 들어오지만,

더 중요한 건 그 손이 나에게 어떻게 닿는가 하는 것이다.

그 손이 내 하루를

어떤 마음으로 쓰다듬는가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조용히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의 손은, 어떻게 닿습니까?”


이 이야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질문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내가 아플 때,

누구의 손에 닿고 싶은지.

내가 누군가를 돌본다면,

어떤 마음으로 닿고 싶은지.


그 질문은 국경을 넘고,

언어를 넘어

오래도록 내 마음에 남는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다시 한 번 중얼거린다.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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