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로키가 먼저다

— 고양이와 내가 만든 조용한 기적

by 운조



아침의 시작은 언제부턴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눈이 먼저 떠지는 것도, 햇살이 눈꺼풀 위를 톡 건드리는 것도 아닌,

차고 문을 여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 소리를 누구보다 먼저 알아차리는 존재.

바로 앞집 고양이, 로키였다.


처음에는 우연이라 생각했다.

하루 이틀이면 말겠지, 금세 관심을 거두겠지 싶었다.

하지만 로키는 매일 아침, 그 정해진 시간에 어김없이 내 앞에 나타났다.

차고 문이 미처 반쯤 열리기도 전에,

회색빛 털을 햇살에 반쯤 담근 채, 포장도로 끝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호박빛 눈동자가 나를 향했고, 나는 그 시선을 피하지 못했다.


그저 길고양이쯤으로 여겼던 존재는 어느새

내 마음 한 자락을 먼저 점령하고 있었다.

그것은 정면에서 다가오는 어떤 열정이 아니라,

삐걱이는 마음의 문틈으로 스며드는 기척이었다.

소리도 없이 다가와 머물고, 침묵으로 위로하는 존재.



---


며칠 전엔 유난히 피곤한 아침이었다.

물뿌리개를 들고 나가기도 버거운 날,

차고 문을 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그날도 로키는 어김없이 나타났다.

잔디밭 가장자리, 그림자 진 곳에 앉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기다렸다’는 눈빛으로.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존재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내 하루의 움직임을 지켜봐 주는 생명이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를.


그날 이후, 나는 로키를 위한 자리를 먼저 준비했다.

냉장고 한켠엔 고양이용 통조림이 놓였고,

식탁 밑엔 작은 접시와 종이 수건이 마련됐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은 작은 의식이 생긴 것이다.



---


처음엔 무얼 줘야 할지 몰랐다.

마트 냉동칸에서 생멸치 한 봉지를 집어 들었다.

‘고양이는 생선을 좋아하겠지.’

막연한 추측이었다.

하지만 로키는 냄새를 맡더니 한 점도 입에 대지 않았다.

잠깐 눈을 마주친 뒤, 느긋하게 등을 돌려 잔디밭 끝으로 걸어갔다.

고양이의 미묘한 거절은, 말 한 마디 없이도 단호했다.


그날 오후, 나는 다시 마트에 갔다.

애완동물 코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작은 플라스틱 포장 안에 들어 있는 치킨과 연어맛 콩알만 한 간식들.

고양이용이라 적혀 있는 그 작고 부드러운 사료를 들고 나왔다.


다음 날 아침, 접시에 간식을 덜어 내놓았다.

로키는 천천히 다가와 냄새를 맡고는 조용히 앉아 먹기 시작했다.

작은 이로 콩알 같은 것을 하나하나 깨무는 모습이

왠지 모르게 경건하게 느껴졌다.

작은 입, 조용한 움직임, 생명을 살아내는 침묵의 시간.


나는 어느새 물뿌리개를 든 손을 멈추고,

그의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잎새에 맺힌 물방울보다 조심스럽고,

새벽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생명 하나.

그 부드러운 호흡과 움직임이

어디선가 내가 잊고 있던 감각을 되살렸다.

지켜보고, 기다리고, 준비하고, 마침내 연결되는 시간.

그 시간이 내게 기적 같았다.



---


하지만 어떤 날은, 로키가 오지 않았다.

차고 문은 평소처럼 열렸고,

식탁 아래엔 조용한 빈자리만 남아 있었다.

괜히 잔디밭을 한 바퀴 돌았다.

길가 담장 밑도, 앞집 창가도 기웃거려 보았다.

없었다.


그날 하루 종일, 마음이 툭 비어 있었다.

별일이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과

혹시 다시는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쓸쓸함이 교차했다.

그제서야 알게 되었다.

이 작고 느슨한 만남이

내 일상에 얼마나 단단히 뿌리내렸는지를.


다음 날 아침, 나는 일부러 문을 천천히 열었다.

그리고 다시 나타난 로키.

어제보다 조금 느린 걸음, 그러나 정확히 나를 향한 눈빛.

괜히 눈가가 뜨거워졌다.



---


『어린 왕자』의 여우는 말했다.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는 내게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야.”

로키는 나를 길들이지 않았다.

그저 매일의 반복되는 시간 속에서,

말없이 나를 기다리고, 응시하고, 머물렀다.

그 침묵 속의 일관성이

나를 다시 걷게 했고, 나를 다시 믿게 만들었다.


내가 로키를 기다리는 걸까,

로키가 나를 기다리는 걸까.

그 질문의 경계가 흐려질 때쯤,

나는 알게 되었다.


로키가 나의 하루를 열고 있다는 것,

그것이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keyword
이전 13화13화 :자라지 못한 나에게, 지금 밥을 차려주는 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