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자라지 못한 나에게, 지금 밥을 차려주는 마음

성장판은 늦게 열린다

by 운조


오늘 아침, 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았다.

요즘 부모들 사이에서 화제라는 ‘키 크는 주사’에 대한 이야기였다.

성장판이 닫히기 전에 맞아야 하고, 빠지지 않고 매일 밤 주사를 놓아야 하며,

몇 년을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고 했다.


아이의 키는 곧 기회의 크기라고—

지금 투자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그렇게 조언했다.


화면 속 아이는 웃으며 팔을 걷었고,

엄마는 아이의 작은 팔뚝에 주사기를 꾹 눌렀다.

“조금만 참자. 미래를 위해서야.”

아이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오래전 내 점심시간을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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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키가 작다.

형제들 가운데서도, 반 아이들 사이에서도.


중학교 2학년.

그해 나는 점심시간마다 조용히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 시절엔 급식이 없었고,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나도 도시락은 있었지만, 그 밥을 먹지 못한 날들이 많았다.


나는 학교 구내매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빵을 진열하고, 음료수를 채우고, 과자 박스를 나르며

다른 아이들의 간식을 팔았다.


내 도시락은 그 시간 동안 식었고,

식은 밥보다 더 일찍 식어버린 건

내 성장의 시간이었다.


배가 고프면 몸이 먼저 움츠러든다.

어깨가 구부정해지고, 말수가 줄고, 시선은 바닥을 향한다.


그런 내게 어른들은 말했다.

“그래도 너는 야무지다. 어린 나이에 돈도 벌고.”


나는 그게 칭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건 가난을 향한 무심한 박수였다.


요즘 아이들은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다.

나는 ‘못 크는 시간’을 살았다.


그 주사는 좋은 걸까?

정말 꼭 필요한 걸까?


건강한 아이의 몸에도, 그 작고 연한 팔뚝에도

의무처럼 주사를 놓아야 할 만큼—

‘크기’는 그렇게까지 절실한 가치가 되어버린 걸까?


어쩌면 키가 아니라

‘남들보다 작아 보일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문제인지도 모른다.

부모의 불안, 사회의 조급함,

그것이 아이의 살에 먼저 박히는 건 아닐까.


나는 키 크는 주사를 맞지 못했다.

그 대신, 매점에서 빵을 진열하며, 도시락을 닫으며,

묵묵히 커야 했다. 아니, 버텨야 했다.


아이의 성장은 멈췄고,

어른이 되는 법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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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다 자란 어른이 되어 누군가의 밥을 차려준다.


오늘 아들은 좋아하는 돈가스를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코스트코에서 사온 돼지고기 안심을 꺼냈다.


고기를 두드려 펼치고, 계란물을 입히고, 빵가루를 묻혔다.

기름을 달구고, 하나씩 튀기기 시작했다.


지글지글 소리마다

기억이 튀겨졌다.


도시락을 닫던 점심시간,

굶주린 배를 안고 일하던 열다섯 살의 오후.


그때, 나는 돈가스를 먹지 못했다.

지금은 돈가스를 만들고 있다.

한 조각 한 조각,

내가 먹지 못한 것을

조금 늦게 내 아이에게 건네고 있다.


사랑은 때로

결핍의 시간을 회복하는 방식으로 찾아온다.


나는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 굶주림과 침묵 속에서도

조용히 자라고 있었다.

누가 봐주지 않았을 뿐.


기적이 아니면 뭐겠어요.

그 모든 외로움과 작음 속에서도

나는 꺾이지 않고 이렇게 살아남았다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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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늦게 열린

마음의 성장판을 발견한다.


그 시절 아무도 불러주지 않던 내 이름을,

지금의 내가 조용히 불러본다.


“미안했어.

너는 그때도 자라고 있었어.

다만 조금 외롭게,

조금 더디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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