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그녀는 노래 끝에 사라졌다

사랑은 짧았고 서류는 길었다.

by 운조


한인타운에는 노래방이 있다.

낡은 간판과 희미한 조명 아래,

사람들은 매일 밤 한국의 유흥을 짧게 재현한다.

좁고 어두운 방에서 마이크를 돌리고,

찬 바람을 막은 사각 담배 연기 속에서

그들은 흘러간 노래로 서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그곳엔 서울에 없는 것들도 있다.

‘체류’라는 말에 긴장하는 사람들,

은행 계좌 대신 체크 캐싱 스토어를 이용하는 이들,

신분 없는 노동과 잊힌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한인타운은 한국에서 밀려나거나 도망쳐 온 사람들의 그림자까지 담긴 곳이다.


영수는 그런 사람들을 잘 알지 못했다.

그는 공장에서 일하며 조용히 살았다.

야근이 잦았고, 이불에 눕기도 전에 잠들기 일쑤였다.

그러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갔고, 그곳에서 미자를 만났다.


그녀는 도우미였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다가,

노래가 시작되면 사람들 사이로 웃으며 다가오는 여자.

그러나 노래할 때만큼은, 목소리가 이상할 정도로 낮았다.

마치 이 땅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사람처럼.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나, 서류 없어.”

영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보다, 망설임이 더 진실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미자는 IMF 때 한국을 떠난 사람이었다.

부모의 사업은 부도났고, 그녀가 일하던 회사도 구조조정으로 사라졌다.

친구들은 지방으로, 누군가는 교회로 흩어졌다.

그녀는 결국 여기로, 미국으로 왔다.

“살고 싶어서 왔어요. 그런데 미국은… 사는 법을 알려주진 않더라고요.”

그녀의 말에는 오래된 먼지처럼

한 세대의 좌절이 가라앉아 있었다.


둘은 사랑했다.

함께 장을 보고, 주말이면 동전 바구니를 들고 빨래방에 갔다.

둘은 나란히 세탁기 앞에 앉아 돌아가는 드럼통을 오래 바라보곤 했다.

젖은 옷을 말리며 묻은 삶의 먼지도 조금씩 씻겨나가는 것 같다고,

미자는 말했다.

“여긴 다 공용이야. 세탁기도, 삶도, 기다림도.”


영수는 그녀를 위해 영주권을 신청했다.

그러는 동안, 미자는 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살아냈다.


미자는 수표를 받으면 곧장 체크 캐싱 스토어에 갔다.

미국에선 임금을 수표, 즉 ‘페이첵’으로 받는다.

그러나 미자에겐 계좌도, 사회보장번호도 없었기에

은행 대신 방탄 유리창 너머의 가게로 가야 했다.


그곳은 수표를 현금으로 바꿔주는 장소였다.

신분을 확인하지 않는 대신, 수수료는 비쌌다.

창구 앞엔 두꺼운 철제 파이프가 가로질러 있었다.

강도 침입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라고 했다.

돈을 지키기 위해선 사람보다 먼저 금속이 필요하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 창문은 수표를 받아들이고,

수수료를 뗀 뒤 현금을 밀어냈다.

그러나 그 누구도 그녀의 이름은 묻지 않았다.

돈은 내어주었지만, 존엄은 건네주지 않는 창구.


영수는 가끔 그녀를 대신해 그 창구 앞에 섰다.

현금은 손에 남았지만,

자기 존재는 유리벽에 반사되어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늘 수표를 다 펴보지도 않고 지갑에 넣었다.

마치, 그건 자신이 일한 증거가 아니라

이 나라에 잠시 발 딛고 있다는 흔적처럼 여겨지는 듯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미자는 사라졌다.


전화는 꺼져 있었고, 자취도 없었다.

냉장고 안엔 남은 김치찌개가 있었고,

싱크대 옆엔 마르지 않은 그릇이 놓여 있었다.

그녀가 자주 앉던 작은 의자만

창문 아래 햇볕을 받고 있었다.


누군가 말했다.

“서류 나오면, 그냥 떠나는 여자들 많아.

원래 그런 거야. 정 붙이면 손해 보지.”


그러나 영수는 그 말이 사무치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그를 이용한 것인지,

그가 그녀에게 잠시 ‘안전한 이름’이었는지

그는 끝내 알 수 없었다.


한인타운의 노래방은 지금도 불이 켜져 있다.

도우미들은 여전히 이름을 감추고 앉아 있고,

마이크는 여전히 고장 직전이며,

노래는 끝나기도 전에 다음 곡으로 넘어간다.


사랑은 짧았고, 서류는 길었다.

그리고 그녀는,

노래가 끝나기 전에 사라졌다.



영수는 아직도 그녀를 기다린다.

그녀의 칫솔이 욕실 구석에 그대로 있고,

신발장 한쪽엔 미자가 신던 슬리퍼 한 켤레가 먼지를 뒤집어쓴 채 남아 있다.


전화번호는 지우지 않았고,

한 달에 한 번쯤은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기도 한다.

수신음은 울리지 않고 곧바로 끊기지만,

그는 그 짧은 무응답조차 그녀의 호흡처럼 듣는다.


누군가는 말했다.

“그런 여자는 잊는 게 낫지.”


하지만 영수는 그 말을 믿지 않는다.

잊는 건 선택일지 모르지만, 기다림은 살아 있는 사람의 방식이니까.


그는 여전히 같은 집에 산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걸어 나간 현관문 앞에서,

가끔 문고리를 바라보다가 문득 멈춰 선다.


마치,

누군가가 다시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나 다녀왔어요”라고 말해줄 것 같은

그 순간을 위해.



“이 이야기는 누군가로부터 전해 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구성한 것으로, 특정 인물이나 사실을 단정하지 않습니다.”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