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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숙 Jul 15. 2024

8. 나, 여기 있어

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8. 나, 여기 있어



                               글그림 피터 H. 레이놀즈 · 김경연 옮김 문학동네




작가 피터 H. 레이놀즈 (1. ‘점’ 작가 참고)


작품 줄거리


  아이들은 마당에서 어울려 논다. 나는 혼자 멀리 떨어진 곳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기만 한다. 내 친구는 바람뿐이다. 그런데 종이 하나가 내 앞에 내려앉는다. 나는 종이와 친구가 된다. 나는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만들어 아이들을 향해 힘껏 날린다. 내 마음이 종이비행기를 타고 아이들 곁으로 날아간다. 아이들은 종이비행기를 잡아 다 같이 신나게 날린다. 비행기는 날아가다가 땅으로 내려앉는다. 그때 한 아이가 종이비행기를 주워 가지고 내게로 온다. 


작품 들여다보기

     

   ‘나, 여기 있어’의 원제목은 ‘I`m here’이다. 우리말 번역서의 제목 ‘나’ 뒤에 반점 ‘,’을 굳이 넣은 것은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땅에 무릎꿇고 앉은 아이가 바람을 지휘하는 것 같기도 하고 바람과 어울려 노는 것 같기도 한 그림이 표지이다.   

  


   많은 아이들이 마당에서 즐겁게 놀고 있다. 아이들은 여러 인종이 섞인 모습인데, 서로서로 어울려 그네뛰기, 공기놀이, 공놀이, 줄넘기, 손바닥치기 등을 하면서 논다.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웃음소리로 가득하다. 소년은 아이들과는 뚝 떨어진 마당 한쪽에 혼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들은 저기 있네. 난 여기 있는데.”

      

  소년은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 무기력한 모습이다. 아이들이 있는 ‘저기’와, 소년 혼자 있는 ‘여기’는 물리적 거리뿐 아니라 심리적 거리를 나타낸다. 아이들이 소년을 무리에서 소외시킨다든가 하는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소년 스스로가 아이들 곁에 가지 못하면서 소외감과 외로움을 느끼는 거다. 남과 소통하는 것이 힘든 아이다. 아이들이 던지고 놀던 공이 소년 옆으로 굴러간다. 그걸 잡아서 아이들 곁에 갈 수도 있는데 그러질 못한다. 



   바람만이 소년의 친구다. 그런데 종이 하나가 바람에 날려 앞에 내려앉는다. 소년은 종이를 반긴다.


   

  “종이야, 어떻게 나를 찾아냈니?  너도 혼자 있고 싶지 않구나. 걱정 마, 친구야. 내가 있잖아.” 

    

   감정이입이다. 소년은 종이도 저처럼 외로워서 친구를 찾아 자기에게 온 것이라 생각한다. 기꺼이 종이의 친구가 되어 준다. 스스로가 친구를 찾아나서지는 못하지만 자기를 찾아오는 친구는 기쁘게 받아들인다.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잘 아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소년이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친구들을 싫어해서가 아니다. 매우 내성적이어서 자기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서지 못하는 것뿐이다.


  심리학자 최재훈 교수의 설명에 비추어보자면 소년은 내성적 외향인이다. 자신의 관심은 친구들을 향해 열려(외향) 있는데,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내성) 사람이다. 내성적 외향인들은 자신에게 다가온 친구를 소중히 여긴다. 좋은 친구가 되어준다.  



    소년이 친구인 종이를 접는다. 종이를 위해 비행기로 만들어준다. 친구에게 정성을 다한다. 작가는 소년이 종이를 접어 비행기를 만드는 과정을 펼침면 가득 꼼꼼히 그려 놓았다소년이 친구를 대하는 지극한 마음의 상징이다소년의 자세가 바뀌었다땅바닥에 계속 무릎꿇고 있던 무기력한 자세에서 종이를 접기 위한 적극적인 자세로 고쳐 앉았다. 친구가 와주기를 기다리기만 하던 소극적인 모습이 아니다.

 

  종이는 소년이다종이비행기는 나 홀로 앉아 있는 여기에서 친구들이 있는 저기로 훨훨 날아가고 싶은 소년의 간절한 마음을 상징한다날기 위해서는 비행기가 되어야 한다

     

  드디어 종이비행기가 완성됐다. 소년은 친구들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준비를 마치고 출발을 위한 심호흡을 한다.


  “자, 됐다. 너 준비됐니?”

 


     종이비행기를 날린다. 종이비행기가 날아갈 방향이 비스듬히 위쪽을 향한 사선으로 그려져 있다소년의 눈이 그리로 들려 있다거기가 소년이 가고 싶은 방향이다.

     종이비행기는 높이 높이 날아 구름을 지나 별이 있는 곳까지 날아간다. 종이비행기 속에 숨어 있던 소년이 점차 모습을 드러낸다. ‘저기로 가기 위한 최대한의 용기를 상징하는 그림이다. 

  높이 날아오르는 종이비행기는 소년의 마음이고 간절한 소망이다소년이 높이 날고 싶은 이유는 저기로 날아가기 위해서다저쪽 아이들이 있는 곳 말이다.     


  소년은 날아가면서 여기 있어!” 하고 마음속으로만 크게 외친다. 



   마침내 아이들이 있는 곳 가까이 종이비행기가 내려간다.

   그때 아이들이 “와, 종이비행기다!” 하면서 종이비행기를 잡는다. 드디어 소년이 아이들에게 다가가 만나는 순간이다소년이 오랫동안 꿈꿔온 그 순간 

  그러나 종이비행기에 담긴 소년의 마음을 모르는, 알 리 없는 아이들은 종이비행기를 잡자마자 달려가더니 저 위로 휭 날려 버린다. 종이비행기는 바람에 실려 얼마쯤 날다가 다시 땅으로 내려앉고 만다. 소년이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한 일생일대의 용기 어린 시도가 허무하게 끝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누군가... 종이비행기를 주워 들고 온다. 한 소녀다. 

  소녀는, 날아온 종이비행기를 다시 날리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있지 않다. 대신 그걸 여기로 보낸 사람이 누굴까 주위를 둘러보고 저기에 있는 소년을 발견한 것이리라. 

    

  이 소녀가 누군인가를 알기 위해 맨 첫 그림부터 다시 들여다보자. 아이들과 함께 있지만 중심에 있지 않고 가장자리에서 조용히 친구들의 말에 귀기울이던 소녀이다. 이 소녀도 내성적으로 보인다.



   친구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만 무리의 중심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쪽이 아니라 말없이 친구들을 응시하는 소녀. 말하자면 소년보다는 수줍음이 덜하지만 역시 내성적 외향인이다. 친구들에게 관심을 기울이며 친구들의 말을 늘 경청하는 소녀, 그 소녀가 소년이 보낸 마음의 신호를 알아듣고 소년의 친구인 종이와 함께 새 친구가 되려고 찾아온 것이다.

  소녀가 종이비행기를 들고 온 것은, 소년의 마음 친구들에게 날아가 닿고 싶은 마음 을 받아들였다는 상징이다     



  “친구야, 나 왔어.” 종이비행기가 말해.

  “너, 여기 있었구나.” 소녀가 웃으며 말해.    

 

   저기에 있던 친구가 여기로 와 친구가 되어 준 것이다소녀에게 마음이 통했다소통이 이루어졌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종이비행기에 담긴 소년의 마음을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단 한 명이지만 진짜 친구가 생겼다. 

    

  이후로 소년과 소녀는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외향 내성을 가진 두 친구는 서로에게 ‘정 많이 주고, 잘 들어주고, 고마워하고, 언제까지나 곁에 있어 주는 마음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들이기 때문’이다. (최재훈, <내향인을 위한 심리학 수업>)


   소년은 자신감이 생겼다. 소통을 위한 첫 시도로 친구를 얻었기 때문이다. 다시 종이비행기를 날릴 마음의 준비가 됐다. 종이비행기는 또 다른 친구를 데려다 줄 것이다. 

  소년의 고개가 들리고 자신감 있는 표정이다. 소년은 크게 외친다. 아직은 마음속으로만이다.  

   

  “그래, 나 여기 있어, 내 친구들아.”



  소년은 수줍지만 친구들을 향해 자신의 마음을 계속 전할 것이다.      


  이 책은, 소년처럼 소통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격려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남들과의 소통을 위한 시도를 해 보라고 말이다. 그리고 무리에 속한 이들에게는, 주위를 따뜻한 눈으로 살펴 그런 소년이 보인다면 다가가 주라고 말한다. 그래서 함께 행복해지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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