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그림 피터 H. 레이놀즈 · 엄혜숙 옮김 / 문학동네
레이먼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여 늘 그림을 그리는 아이다. 어느 날 꽃병을 그리고 있을 때 형 레온이 레이먼의 그림을 보더니 그게 뭐냐며 웃어댔다. 그때부터 레이먼은 뭐든지 똑같이 그려 보려고 애쓰다가 뜻대로 되지 않자 그리기를 포기했다. 레이먼이 구긴 종이를 집어가는 마리솔을 잡으러 쫓아가다가 레이먼이 망친 그림들이 모두 동생의 방에 붙어 있는 걸 보았다. 마리솔이 제일 좋아하는 그림은 형이 비웃었던 바로 그 꽃병 느낌이 나는 그림이라고 했다. 레이먼은 자기 그림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보았다. 그 후로 자기만의 느낌이 나는 그림을 즐겁게 그리며 느낌 가득한 삶을 살았다.
원작의 제목은 ‘ish’이다. ‘ish'는 ‘~같은’, ‘ ~의 느낌이 나는’의 뜻을 가진 말이다. ‘ish’가 붙은 단어로는 ‘boyish, childish, oldish, redish’ 등이 있다. 실제 영어권에서는 ‘ish'를 부사로도, 다른 말 뒤에 붙여 형용사 형태로도 폭넓게 쓴다.
제목뿐만 아니라 이 책 본문에 수없이 등장하는 ‘ish'라는 말의 상징성을 알아야 작가가 전하는 뜻을 제대로 알 수 있겠다.
레이먼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 언제나 무엇이나 어디서나 그린다. 레이먼은 어린 화가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심리상태를 색채로 상징한다. 레이먼을 둘러싸고 있는 노랗고 붉은 배경 색은 레이먼이 얼마나 행복하게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느 날 형 레온이 꽃병을 그리는 레이먼의 그림을 들여다보더니 그게 뭐냐며 웃어댄다. 레이먼은 대답도 못하고 종이를 구겨 던져 버린다. 레이먼을 둘러싼 빨간색은 어린 화가의 분노만큼 강렬하다.
이때부터 레이먼은 뭐든지 ‘똑같이’ 그리려고 애쓴다. 똑같이 그리는 건 즐겁지 않다. 푸르딩딩한 주변 색깔이 곧 레이먼의 마음 상태다. 그림이 잘 되지 않아 구겨진 종이만 늘어갈 뿐이다.
“난 끝났어(‘I am done’ 번역문엔 ‘이제 안해’).” 레이먼이 연필을 내려놓는다. 그림에 대한열정이 식었다. 어두운 푸른색이 더없이 싸늘하다.
이때, 동생 마리솔이 등장한다. 레이먼이 마리솔에게 심통을 부리는 이 장면은 따뜻한 주황이다. 마리솔의 오빠에 대한 마음 상태를 드러낸다. 레이먼이 구긴 종이를 집어가는 마리솔을 잡으러 쫓아가다가 자신이 망친 그림들이 모두 동생의 방에 전시되어 있는 걸 발견한다. 마리솔의 방은 그야말로 화가 레이먼의 전시장이다.
마리솔은 레이먼이 처음 구겨 버린 바로 그 ‘꽃병’ 그림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한다. ‘꽃병 느낌(vase-ISH)’이 난다면서. 여기 원본에 ‘ISH’가 대문자로 쓰인 것에 주목해야 한다. 꽃병 ‘느낌이 나는’ 그림인 걸 강조하고 있다.
그 말을 들은 레이먼이 자기 그림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들여다보고는, “진짜 ... 느낌이 있게 보이네.”('They do look... ish.')라고 말한다. 이 대목이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창조적인 그림을 볼 줄 아는 동생 마리솔의 안목 있는 평가를 받은 레이먼이 화가로 부활하는 장면이기 때문이다. (레이먼의 이 중요한 말을 번역문에 “그렇구나.”로 해 놓은 것이 매우 아쉽다.)
이 마리솔로 말할 것 같으면 이 작가의 그림책 ‘sky color(그리는 대로)’의 주인공인 바로 그 마리솔이다. 마리솔은 오빠 레이먼이 그림 그리는 것을 오래 보아왔으며 오빠의 ‘ish’ 그림들을 좋아한다. 레이먼이 망쳤다고 구겨 버린 그림들을 몰래 주워다가 자기 방에 붙여 놓고 감상할 정도로 오빠의 그림들을 소중히 여긴다. 마리솔은 오빠가 그리는 ‘ish’그림의 개성과 창조성을 이미 발견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피터 레이놀즈가 그림의 창조성을 다룬 그림책 ‘the dot(점)’, ‘sky color(그리는 대로)’, ‘ish’(느끼는 대로)' 세 작품은 서로 관련되어 있다.)
자신의 ‘ish’를 알아봐 주는 마리솔의 한 마디 말에 격려를 받아 다시 창조적 화가로 돌아온 레이먼은, (형의 말 때문에 오랫동안 무거웠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운이 솟아오름을 느끼며(“즐겁고 신이 났다.”로 번역되어 있다.)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느낌이 나게 그리는 일은 멋진 일이었다.('Making an ish drawing felt wanderful'- “느끼는 대로 그리는 건 아주 근사한 일이었다.”로 번역됨)
레이먼은 온갖 느낌이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감정도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걸 깨닫는다. 레이먼은 느낌이 나는 그림(ish art)뿐 아니라 시 느낌이 나는(poem-ish) 글도 쓸 수 있게 된다. 레이먼은 오래도록 느낌 충만한 삶을 산다.(‘Ramon lived ishfully ever after’)
창조적인 그림은 ‘똑같이’ 그린 그림이 아니다. 사물을 복사한 듯이 그린 그림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가 추앙하는 화가들은 모두 어떤 것을 ‘똑같이 잘 그린’ 화가가 아니라 어떤 것의 느낌이 나는(ish) 그림을 자신만의 개성으로 그린 사람들이다.
(사실 작가 피터 레이놀즈의 그림도 정교하지 않다. 대충 그린 듯 보이기도 하지만 그가 표현하려고 하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ish’가 있다. 개성 있으면서도 매력적이어서 자꾸 보고 싶게 한다.)
‘ish’는 창조성이다. 그림을 비롯한 모든 예술품을 창조하는 예술혼이다. 진짜 잘 그린 그림은 ‘ish’를 가진 창조적인 그림이다. 창조적 작가는 ‘ish’를 가지고 창조하는 사람이리라. 레이먼의 형 레온처럼, ‘똑같이’ 그리지 못했다고 이런 작품을 폄하하는 것은 ‘ish’를 모르는 사람의 무지에서 나온 행위이다.
레이먼과 같은 어린 ‘ish’ 작가가 내 주위에 있을지 모른다. 유심히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