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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미숙 Jul 09. 2024

그림책 상징 읽기

7. 마음을 담은 연주

7. 마음을 담은 연주


글. 그림  피터 H. 레이놀즈  ⸳ 김지혜 옮김 / 길벗어린이

                                        

작가 피터 레이놀즈 (1. '점'  작가 참고)


줄거리     


  어린 라지가 건반을 두드리기 전까지 피아노는 오랫동안 거실 한편에 조용하게 놓여 있었다. 몇 년이 지나 소년이 된 라지는 화음을 넣어 피아노를 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는 라지가 피아노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것을 보고 재능을 키워 주기 위해 피아노 선생님을 구해 주었다. 피아노 레슨을 시작한 라지는 열심히 연습하여 실력이 좋아졌지만 점점 싫증이 났고 마침내 피아노 치기를 그만두었다. 어른이 되어 일자리를 구해 집을 떠나 있던 라지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연락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라지는 아버지를 위해 피아노를 쳤다. 예전에 연습했던 여러 곡을 쳤지만 아버지가 듣고 싶어한 곡은 라지가 만든 이름 없는 그 곡이었다. 라지는 온 마음을 다해 연주했다.     



작품 들여다보기


 

 

 ‘마음을 담은 연주’의 원제목은 ‘Playing from the Heart’이다.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연주’라고 하는 편이 좀 더 책의 내용에 가까울 듯하다.


  이야기는 “피아노는 오랫동안 거실 한편에 조용히 놓여 있었다.”로 시작한다. 아무도 치는 사람이 없다. 라지는 아주 어리고 피아노 주변은 놀이공간이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라지가 어느 날 피아노 건반을 두드린다. 피아노가 처음 울리는 순간이다. 피아노에서 좋은 소리가 난다는 걸 알았다. 건반을 두드리는 어린 라지의 뒷모습에서 열정이 느껴진다. 피아노 주위는 온통 붉은색으로 라지의 열정과 기쁨을 드러낸다.


   몇 년이 지나 발이 페달에 닿을 만큼 자란 소년 라지는 피아노를 즐겨 쳤다. 라지는 물감을 섞듯 화음을 넣어 칠 수도 있게 되었다.  

  라지는 자기가 연주하는 아름다운 피아노 소리에 심취해 있다. 음표들에 칠한 고운 색깔들은 아름다운 화음을 상징한다. 피아노 선율은 온 집안에 울려퍼진다.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없는데 라지가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다는 것에 감동한 아버지는 라지의 재능을 키워 주기 위해 피아노 선생님을 구해 준다. 



  선생님은 라지가 만든 곡을 악보로 그려 준다.

  라지는 악보에 그려진 음표가 동물원 쇠창살 뒤에 갇혀 바깥세상을 그리워하는 동물들 같다고 생각한다. - 음악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것이지 틀에 갖혀서는 안 된다는 작가의 상징적 메시지이다.



  라지는 열심히 연습하여 아버지가 아는 곡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되고 실력이 점점 더 좋아졌지만, 이런 연주에 싫증이 나서 피아노 치기를 그만둔다. 피아노는 다시 조용해진다.     

  앞에서 본, 라지가 피아노를 즐거워하며 칠 때의 장면과 똑같은 구도의 그림이지만 느낌은 무척 다르다. 푸르딩딩한 배경색이 적막함과 쓸쓸함을 드러낸다. 달라진 것은 피아노 위 식물의 길이가 길어졌다는 것과 대학 졸업 사진이 놓였다는 점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며 라지가 대학을 졸업했음을 암시한다.


  라지가 취직을 하여 도시로 떠나고 나자 집은 너무나 조용해졌다. 아버지의 외로움이 두드러진다. 이 그림은 웅변한다. ‘음악이 없는 세상은 적막하다피아노 치는 아이가 없는 세상은 쓸쓸하고 삭막하다고. 그림 속 작가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라지는 열심히 일한다. 밤 늦도록 일하는 라지의 모습엔 어떤 기쁨도 보이지 않는다. 음악이 주는 기쁨을 잃어 버리고 먹고살기에 골몰하느라 메말라버린 현대인의 모습이다. 일에 파묻혀 살던 어느 날 라지는 아버지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는다. 라지는 지체없이 일어나 빗속을 뚫고 집으로 돌아온다. 오랜만의 귀향이다.


  병약해진 아버지와 라지가 만나는 장면은 노란색과 어두운 색이 혼합되어 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서로에 대한 사랑과 염려로 가득 차 있음을 상징한다.   

   

  자신이 해 드릴 것이 없는지 묻는 라지에게 아버지는 피아노 연주를 부탁한다. 라지는 이전에 연습했던 곡을 쳐 보지만 아버지가 원하는 곡이 아니다.

  “아니... 그 곡이 아니야... 그... 이름없던 곡 있잖니...”     


   라지가 어릴 때 제멋대로 연주한 곡, 아버지가 감동했던 그 곡이 아버지의 마음 깊숙이 자리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 곡은 라지가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연주한 곡이며어떤 규칙이나 기교가 끼어들기 이전의 가장 자유롭고 창조적인 음악이었다. 피아노 레슨 선생님이 가르쳐 주는 ‘유명한’ 곡들을 치느라 기억 저편에 묻힌 곡이었다.

 

  라지가 도시로 떠난 뒤 아버지는 피아노 소리 들리지 않는 쓸쓸하고 적막한 집에 홀로 남아 라지를 그리워했다. 라지에 대한 그리움 속에 늘 함께 흐르던 피아노 소리... 규칙과 기교로 다듬어진 유명한 곡들이 아닌, 아들의 성품과 정서와 마음이 담긴,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그 피아노 소리... 감동으로 들었던 그 곡, 아들을 그리워하는 아버지 가슴속에서 그 음악은 내내 흐르고 있었다. 


  드디어 아들이 곁에 왔다. 아들이 연주하는 그 곡을 마지막으로 들으며 행복하게 눈을 감고 싶다...     

  라지는 아버지가 가리키는 게 뭔지 알아듣는다.



  라지가 다시 피아노를 연주하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음악의 세계에 흠뻑 빠진 행복한 모습이다.

  라지는 비로소 오랫동안 떠나 있었던 자신의 음악 세계로 다시 들어간다. 삭막한 도시에 파묻혀 분주하게 사느라 잊고 있었던 피아노 음악의 세계, 행복한 세계에 다시 몰입한다. 라지의 소년시절 가슴 속에서 우러나왔던 그 소리가, 이제 라지의 가슴에서 다시 솟아나온다.

  음표에 칠해진 색깔이 더없이 곱고 영롱하다. 자유로우면서도 멋진 화음을 이루며 울려퍼지는 아름다운 선율이다.     

   “그래, 맞아... 그곡이야.” 듣고 싶던 그 선율을 들으며 아버지는 행복감에 젖는다.     


  그림 속 피아노 선율은 라지의 손끝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가슴에서 흘러나온다. 진정 감동을 주는 음악은 규칙이나 기술로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즉 진정성이 담긴 자유롭고 창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이것이 이 그림책의 상징이며 작가의 메시지이다. 


  라지의 가슴속으로부터 우러나오는 피아노의 선율은 둥글게 휘어지는 곡선으로 표현하였다진한 붉은색에서 시작하여 노란색으로 차츰 변하면서 점차 가늘고도 길게 휘며 퍼져나가는 곡선은피아노 소리가 울려퍼져 듣는 이의 귀에 맴돌며 들어가 오래도록 감동에 젖게 하는 모습이다. 색과 선그리고 몇 개의 음표로 독자는 라지가 연주하는 피아노 음악소리를 듣는 듯 읽을 수 있다.


  라지의 가슴속에서 우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는 이 책의 끝까지 계속된다. 피아노 소리는 이 책을 덮은 훨씬 뒤에까지 독자의 귓가에 계속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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