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이야기책 상징 읽기
글. 그림 레오 리오니 ⸳ 이명희 옮김 /마루벌
알파벳 나무가 있다. 이 나무는 얼마 전까지 많은 글자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거센 돌풍에 글자들이 날아가자, 남은 글자들도 두려움에 떨면서 나뭇가지 안쪽에 모여 웅크리고 있었다. 그 때 단어벌레라는 벌이 나타나 알파벳 몇 개로 단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단어가 된 글자들은 신이 나서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바람이 불어도 겁먹지 않게 되었다. 이번에는 애벌레가 나타나 문장 만드는 법을 알려 주며 뜻 깊은 문장을 만들라고 하자, 글자들은 마침내 “지구에 평화를,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이라는 문장을 완성했다.
얼핏 보면 아이들에게 단어와 문장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으로 보기 쉽다. 그리고 끝에 나오는 문장이 참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을 수도 있다. 어린 독자라면 그 정도로만 읽어도 재미있고 유익하겠다. 그러나 인생 경험이 있는 독자라면 이 책이 그리 단순한 내용이 아니라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이 책은 상징으로 가득하다. 깊이 들여다보고 작가가 숨겨 놓은 메시지를 꺼내 보자.
알파벳 나무가 있다. 이 나무에는 많은 알파벳 글자들이 행복하게 살고 있었다. 이 잎에서 저 잎으로 뛰어다닐 수도 있고 자기가 좋아하는 나뭇잎에 앉아 햇빛도 바람도 얼마든지 즐길 수 있었다.
이 글자들은 백성을 상징한다. 자유를 누리며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 민중의 모습이다.
어느 날 거센 돌풍이 몰아쳐서 나무에 있는 글자들을 날려 버린다. 민중의 평화로운 일상과 행복을 앗아가는 거센 바람은 불의한 권력이다. 평화롭게 자유를 누리던 사람들은 갑자기 들이닥친 사나운 세력에 일상이 깨져 버린다. 생명과 삶의 터전을 잃은 이들도 있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바람이 들지 않을 구석진 곳을 찾아 숨어 지낸다. 자유니 평화니 행복이니 하는 것은 하루아침에 아련한 추억이 되어 버렸다.
이 때 ‘단어벌레’라는 이름을 가진 묘한 벌이 숨어 있는 글자들을 찾아와서 말한다.
“내가 단어 만드는 법을 가르쳐 줄게. 너희들이 셋이나 넷, 또는 더 많이 모이면 아무리 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거야.”
벌은, 글자들이 예전처럼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날아가지 않을 방법. 그것은 따로따로였던 글자들이 모여 단어가 되는 방법이었다.
벌이 가르쳐 준 대로 단어가 된 글자들은 신이 나서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다. 원래 자기들이 살던 곳이다. 벌의 말처럼 웬만한 바람이 불어도 겁내지 않고 함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단어벌레는 선구자요 선각자다. 글자들이 따로따로 있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지만, 글자들이 모여 단어를 이루면 의미를 가짐을 알고 있는 자다. 즉 한 사람 한 사람은 약하지만 여럿이 힘을 합치면(연합하면) 나쁜 권력이 함부로 하지 못할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 사람이다.
선구자의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은 이제 소규모로 연합하여 부당한 권력의 침해를 피할 정도가 되었다.
그들에게 또 다른 선구자요 지도자가인 애벌레가 찾아온다.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단어들을 보고는 딱하게 여기며 말한다.
“너희들 왜 함께 모여 문장을 만들지 않니? 그러면 뜻이 생기는데!” (작가의 메시지가 담긴 중요한 대목인데 번역이 조금 빗나갔다.)
원문은 “Why don`t you get together and make sentences - and MEAN something?" 왜 너희들은 함께 모여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들지 않니? )
애벌레가 처음부터 글자들에게 알려 주려 한 것은 모두가 연합하여 ‘의미 있는 문장’을 만드는 거였다. 여기서 ‘의미 있는’이란 ‘모든 사람이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민의를 담은’... 이런 뜻 아니겠는가?
지도자는 민중을 계몽하고 설득한다. 모두가 힘을 합쳐 ‘중요한 말’을 하라고. ‘모든 사람이 원하는 것’, ‘가장 소중한 것’을 분명하게 말하라고.
드디어 자신들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달은 글자들은, 자각한 민중은 마침내 의미 있는 문장을 완성한다.
“지구에 평화를,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peace on earth and goodwill toward all men)
“그런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는 거니?”
글자들이 궁금해서 묻자 애벌레가 나무를 기어내려가면서 말했어.
“대통령 할아버지한테.(To the President.)”
민중이 진정 원하는 것은 평화와 사랑(온정)임을 정치인들에게, 권력자에게 당당히 알리고 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다.
책 마지막 페이지는 이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