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된 것 축하해"가 적힌 포스트잇과 함께 테스트기에 두 줄이 있었다. 꽤 기다려온 소식이기에 너무 기뻤고 우린 그 시간을 누렸다.
아내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하고 물어봤고, "딸이 좋기는 한데 뭐 크게 상관없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아이의 성별을 알기 바로 직전 속으로 나는 '딸 딸 딸... 제발 딸 딸'을 되뇌었지만 아들이었다. 사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내가 내 아이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딸이 보통 더 사랑스럽고 귀여운 짓을 더 잘하니 좀 더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주변에서 누군가 아빠를 준비하는 방법 같은 책을 주었는데 사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도리어 걱정을 키웠던 것 같다. 어떻게 젖병을 소독하는지 신생아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지 등등이 있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앞으로 몇 천 개의 기저귀를 갈게 될 텐데 그중에 똥기저귀는 몇 개가 될 것이고 평균적으로 자는 시간은 얼마나 줄어들 것인지 각종 통계가 나온 챕터였다. 내가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그리고 그날이 왔다. 미리 싸둔 짐을 들고 병원으로 갔다. 그리고 오랜 진통 끝에 아이가 나왔다. 한국에서의 경험이 없어 모르겠지만 난 계속 아내 옆에 있었다. 그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엄마는 위대하다는 것을 배웠다. 너무나도 고마웠고 미안했다. 그리고 '앞으로 내가 애 똥기저귀는 다 갈게'라는 생각을 했다.
처음 그 작은 아이를 안는데 생각했던 모든 걱정이 너무 순식간에 없어졌다. 정말 세상에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새로운 종류의 기쁨이 느껴졌다. 이 아이를 위해 모든 것을 다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하루 더 병원에서 보내고 새로운 가족과 함께 집에 왔다. 그리고 쉽지 않은 시간들이 찾아왔다. 애를 갖 낳은 아내는 새벽에 매 두 시간마다 일어나 유축을 하고 나는 젖병을 씻었다. 아내는 무급의 육아휴직을 내었다. 그 당시 아내는 유급 휴직을 할 자격이 안 되었고 내가 육아휴직을 낼 수도 있었지만 그럼 뉴욕주법에 따르면 현재 봉급이 절반으로 깎인다. 그 돈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했기에 나는 육아휴직을 낼 수 없었다. 정말 육아휴직은 한국이 훨씬 난 것 같다. 아는 분 중에 애 둘을 낳고 몇 년간 아이를 돌보는 분이 있는데 이 순간 너무 부러웠다.
정말 비몽사몽의 삼사 개월을 보낸 것 같다. 애가 없는 사람은 농담인 줄 알겠지만 정말 힘들었지만 솔직히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 똥기저귀를 갈 때도 행복했다.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요즘 한국에서의 트렌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애를 키우기보다는 둘이 행복하게 또는 결혼 전에는 혼자 취미 생활하면서 행복하게 살자.
하지만 그것은 아직 자신의 아이라는 실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상상만으론 알 수가 없다. 누군가의 아이가 납치됐다는 소식을 뉴스에서 접하면 그는 그냥 아무개일 뿐이다. 대학까지 육아비용을 계산하는 기사를 보면 당신의 아이는 그냥 하나의 숫자일 뿐이다. 하지만 실체를 마주하게 되면 다르다. 내 아이의 얼굴이 떠 오르고 마치 영화에서 사랑에 빠져 다 어려움을 다 감수하는 것처럼 다 감당할 수 있다."애 안 낳으면 더 행복해 여행도 다니고 취미생활도 할 수 있고." 하지만 좀 덜 행복해도 괜찮다. 그리고 솔직히 너무 행복하다. 이리 행복해도 되나 싶기도 했다. 혹 너무 행복해하면 이것이 달아날까 무섭기도 하다.
물론 친구들 중에 결혼 안 한 사람이 내게 결혼 생활에 대해 물어보면 야 죽겠어 넌 하지 마 이리 답하고 애 없는 친구가 육아에 대해 물어보면 혼돈이 따로 없다 애 없을 때 인생 즐겨라고 답한다. 뭐 사실 크게 거짓말은 아니지만 힘들어도 이 가족과 함께 힘들고 싶다.
뭐 당연히 이것은 내 얘기다. 누군가는 자기 애를 버리기도 한다 하지만 뉴스에 많이 난다는 것은 여전히 그것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모두 각자의 삶이 있을 것이고 누군가는 틀렸다는 말을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너무 반대쪽 얘기만 들리는 것 같아서 애 낳아서 너무 행복하다는 얘기도 하고 싶었다.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나이가 점점 드니 취미 활동도 그렇게 재미가 없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