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바람 강바람"이라는 노래이다. 대부분의 중장년층도 이 노래를 부르면서 초등(국민) 학교 시절을 보냈으리라 생각된다. "여름" 하면... 무엇이 제일 먼저 연상되는가? 물어온다면 이 노래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고 대답할 것 같다.
왜? 이 꼬맹이적 노래가 생각나는지는 모르겠다.
산바람 강바람- 윤석중 작사, 박태현 작곡
산 위에서 부는 바람 서늘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여름에 나무꾼이 나무를 할 때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준데요
강가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 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
사공이 배를 젓다 잠이 들어도
저 혼자 나룻배를 저어간데요
아직도, 잠재의식 저 아래에 꼬맹이적 자아가 살아 숨 쉬고 있음이 틀림없다. 가만히 기억을 더듬어 보니 어렸을 적 동네 친구들과 (혹은 어른도 포함) 가끔 산마루 언덕에 올라 이 노래를 불렀던 것 같다. 어른들의 부추김에 꼬맹이들의 즉석 노래자랑이나 합창대회가 열리는 순간이었다.
산마루 언덕이니 적당한 바람이 불어왔음은 물론이고, 이제 막 언덕에 올랐으니 이마에 쏭쏭이 맺혔던 땀방울이 바람에 시원하게 씻겨나가는 듯했다. 친구들과 동네를 휘젓고 다니며 재잘대던 이 노래가 레퍼토리 일 순위에 들었음은 당연했다. (꼬맹이적, 친구들과 왜.. 노래를 부르며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 보니 신기하기만 하다. 마지막 수업 끝나고 청소를 위해 책상을 뒤로 물릴 때마다 다 같이 동요를 부르고는 했다. 흥이 다 가시지 않았는지 집으로 가는 내내 그 동요를 부르며 집으로 향하고는 했다.)
어린 마음에도, 이 노래가 어쩌면 이렇게 꼭 어울리게 지금의 상황을 묘사해 주는지 감탄(?)했던 기억이 뚜렷했다. 한참 성인이 된 지금도 "여름" 하면 이 장면이 먼저 연상되는 것을 보면 당시의 강렬했던 인상이 기억의 메커니즘 한편에서 여전히 작동되고 있음을 증명한다.
여름(관념적)하면 시원한 바람... 이마에 흐른 땀... 쾌적함....이었다. (바다, 산, 계곡.. 이 아니었다.)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쾌적함 그 자체... 말이다.
우리나라 여름의 실상은 달랐다..
초여름에서 본격적인 여름으로 들어가면... 최고기온이 30~35도 이상으로 치솟기도 하고 습도가 높아... 몸은 찐득거리고... 매일마다 샤워나, 얼음물 없이 하루도 버티기 어렵다. 간헐적인 태풍에 우기까지 겹치면 정말 견디기 어려운 것이 여름이다.
우기가 지나고, 푹푹 찌는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면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을 정도로 몸과 마음이 무기력 상태로 빠지고 만다.
그러나...
일방적인 기후의 공격을 한 방에 막아낼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우리 손에 있으니...
에어컨...(Air conditioner)
이었다.
우리나라 기후에서 에어컨 없이 여름을 보내는 것은 거의 상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에어컨이 없을 때, 또 다른 강력한 무기로는 선풍기와 조상 대대로 물려오는 부채를 들 수 있으나 에어컨에 비해 파워는 조금 부족하다. 에어컨이 기후에 대항하는 핵무기 (너무 표현이 과했나..)라면 선풍기와 부채는 미사일(?)이나 개인화기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개인화기의 파워는 핵무기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우리나라의 아파트는 대부분 언제든 작동가능한 강력한 무기가 장착되어 있고, 실내에서 쾌적한 환경을 유지하며 기후에 대항(?) 할 수 있도록 항상 만반의 준비가 되어있다.
실외는 어떤가?
누렇고... 뿌연... 미세먼지와 황사... 때문에 미치겠다.
누가 좀(꼭..) 어떻게 해 줄 수 없나?
피맛골의 꽁치 굽는 연기 탓하던 정신 나간 사람 말고... 미세먼지 신경 쓴다는 사람에게 정치색 무관하게 무조건 지지표 한표 던진다. (아내까지 두표..)
작금의 공기질 수준을 생각해 보면, 일급청정수에서 살아야 할 산천어가 메기가 사는 진흙탕물에 살고 있는 느낌이다.
산천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데얼마의 시간이 더 필요할까?
산천어가 얼마나 더 아파야 신경을 쓸까?
정말 심각한 것 같은데.. 불안하다... 못해 화가 난다.
눈은 뻑뻑하고 아프고, 간지럽고... 아가미는 흙탕물에 캑캑거리며 고통을 호소하고 있고... 산천어가 불쌍하다.
실내에서는 에어컨과 공기 청정기가... 산천어가 살 수 있도록 불순물(미세먼지) 제거와 쾌적한 산소(공기)를 공급하느라 파랗게, 빨갛게 얼굴에 핏대 올리며 돌아가고 있고... 실외에서는 열 교환기가 열기에... 달아올라...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독일의 날씨와 공기의 질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공기의 질에 있어서 만큼은, 어렸을 적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온 듯했다. 산천어가 다시 일급 청정수(?)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깊은 숨쉬기가 가능했다. 의식하지 않고 마음껏 숨 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고 미안했다. 뻑뻑하고 간지럽던 눈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흠뻑 들이킬 수 있는 공기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독일 아파트에 입주를 했을 때 가장 인상적인(이상한) 것이 에어컨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 집만 없으면 계약을 아예 하지 않았을 텐데 거의 모든 아파트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랐다.
"어라.. 에어컨이 없네.."
"........"
"여름에 어떻게 지내라고.. 큰일 났네..."
"........"
아내와 우려 섞인 눈빛을 교환하고 있었다.
"걱정하지 마.. 다른 아파트에도 거의 다 없어.."
"이유는 지내보면 알아... 전혀 걱정하지 마.."
입주 도우미가 우리의 우려를 단칼에 제거해 주었고, 이 말을 따르는 것 외에 다른 옵션이 없었다. 계약을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은 또 다른 지옥문의 시작이라는 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더군다나, 다른 아파트에도 에어컨이 없다는데, 이미 선택의 여지는 우리의 손에 없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해 여름... 우려는 단지 기우였다는 것이 사실로 판명되었다. 에어컨 없이 여름을 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게도(?) 엄연한 사실이었다. 억지로 참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지낼 수 있었다.
인공적인 것이 아닌, 자연이 주는 자연스러운 쾌적함 그 자체를... 즐기면서 말이다.
독일의 여름은 대체로 따뜻하지만 더운 날씨는 드물고, 일반적으로 습도가 낮았다. 낮은 습도는 햇빛에 노출되는 쪽은 덥고 그늘 쪽은 시원함을 의미한다. 그늘 안에만 있으면 그다지 더위를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러한 기후 조건은 많은 독일 아파트에 에어컨 없이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또 다른 신기한 것은 방충망이 없고, 공기의 흐름을 최적화한(?) 창문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창문을 조금.. 에서부터 전부 활짝 (완전 개방) 열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공기의 흐름을 언제든지 자연스럽게 조절할 수 있었다. 방충망이 없는 이유는 정확히는 알 수 없었으나 실제 경험으로 쉽게 인지할 수 있었다. 두 번의 여름을 보내는 동안 과장(거짓말) 없이 모기에 한방도 물린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밤에 창문을 열어놓아도 모기가 들어올 일이 없으니 굳이 방충망을 달아놓을 필요가 없다는 점이다.
모기대신 파리가 날아 들어와 쫓아내느라 소동을 피운 적이 가끔 있다. 동네에 반려견을 키우는 사람들이 많은데 가끔 길가에 치우지 않은 반려견의 흔적(?)에 앉아있는 똥파리들을 봐왔던지라.. 실내로 날아들어오는 파리에 더욱 예민할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열어주고 약간의 시그날을 주면 돌아 나가는 신사적인(?) 파리가 대부분이어서 살생을 피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독일의 최근 건축물들은 대체로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건축 기술을 채택하고 있다고 한다. 건물의 외벽과 창문 등 외부 구조물을 잘 고려하여 건물 내외부 열 교환을 최소화하고, 실내 온도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한다. 이러한 기술들이 날씨의 이점과 더불어 독일의 아파트에 에어컨 없이도 쾌적한 실내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이유라고 한다.
그 다지 필요 없는 에어컨에 불필요한 소비를 하지 않으려는 독일인의 검소함도 한 가지 이유라는 설득력 있는 설도 있다.
당연히, 독일의 일부 지역에서는 더운 여름을 견딜 수 없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에어컨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영역에서 관찰했던 일이므로 일반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으니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너무도 당연했던 상식이... 너무도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살아있는 경험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