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준함이 주는 작고 사소한 행복
독일로 생활의 거점을 옮긴 뒤 가장 큰 일상의 변화는 걷기였다.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가 거의 일 년 이상 지속되었고, 퇴근 뒤 한 시간 이상 동네산책이 가능했다.
처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독일로 이사 온 뒤 가장 큰 일상의 변화중 하나는 걷기(산책)였다.
코로나 시기로 인한 재택근무는 산책을 더 용이하게 해 주었고 집 근처의 아름다운 풍경은 산책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 주었다.
걷기의 의미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e837b9e5604c4a3/5
아름다운 풍경에 마취되어(?) 걷는 산책은 더 이상 힘든 물리적인 운동을 의미하지 않았으나 건강에 대한 결과물만큼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뱃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혁대 구멍의 위치가 하나 아래로 위치변경되면서도 숨쉬기가 편한 것이 그 증거였다. 산책의 시간이 지속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걷는 다리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졌고... 발걸음도 한결 경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경쾌한 발걸음은 걷기로 인한 피로감이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고... 더 자주.. 더 멀리..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허리살이 빠지고... 혈압이 낮아지고... 마음마저 맑아지는... 긍정적인 체험을 몸소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체험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걷기(산책)의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걷는 게 좋았다... 아주 좋았다...
걷는 것이 그냥 "물리적인 거리의 걷기"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걷기를 통한 운동의 효과는 부수적으로 얻어진 효과였을 뿐이었다. (목표치의 칼로리를 소모하고 거리를 꼭 주파해야 하는 운동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풍경과 대화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걸었네.."가 적절한 의미였다.
이렇게 이년 반 동안 걷다 보니, 걸은 거리가 지구핵까지의 거리만큼 되었다.
무려 6,058km를 걸었다. 측정되지 않은 거리도 상당히 있었으므로 걷기는 정말 많이 걸은 모양이다.
"지구핵까지 200km 남았습니다."
걷기 측정의 어플이 거창하게.. 과장해서.. 격려를 해준다.
이만큼이나 걸었고... 조금만 더 걸으면... 지구 핵까지 걸은 거리가 되니... 조금만 더 열심히 걸으라고....
6,058km/8,909,042걸음 = 0.0006799km/걸음= 0.6799m/걸음
(0.6799m/걸음) x(10,000걸음/일) x 365일 = 2,482km (만보씩 매일 일 년 동안 걸은 거리)
(2,482km/년) x 2.5년 = 6,205km (만보씩 매일 이년 반동안 걸은 거리)
수치를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계산해 보려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가 얻은 결과물은 지구의 크기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짐작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다지 크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좀(아주) 놀랐다. 반경 대략 6,200km이면 직경이 12,400km인 구체.... 그다지 크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스케일이 너무 큰가?)
그리 크지 않은 지구에서... 서로 미워하고...(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서로 더 갖겠다고), 잘났다고..(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못났다고... (못났으면 또 얼마나 못났고), 치고받는...(네가 틀리고 나만 맞고), 우리의 삶이 참... 그렇다. 누구나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뭐시 중헌디?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스스로도 놀라운 사실은 이년 반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하게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결과자체보다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꾸준함에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감이 더 컸다. 꾸준함의 부족으로 실망과 자책하던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이 결과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회복에 더 의미가 컸다. 몸과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산책(걷기)의 치유력이 대단함을 몸소 실감했다.
몸 건강은 눈에 띄게 나아진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일 체크하고 있는 혈압은 아주 정상의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독일의사는 지극히 관리 잘하고 있다는 견해와 함께 혈압약은 안 먹어도 좋으며 약간의 불편이라도 느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의견을 주었다. 혈압약을 매일마다 꼭 챙겨야 한다는 우리나라 의사의 견해와는 조금(아주) 다른 소견을 주어서 당황스러웠다. 만약은 모르니... 꼭 챙겨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복용을 중지하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관리에 있어서 약간의 혼돈이 있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지기보다는 어느 쪽을 따랐을 때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을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이제는 아내를 재촉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산책을 나선다.
걷다 보니 좋아진 건강과 더불어 하루하루가 더 나아지는... 긍정의 사이클로 들어간 느낌이 확실하다.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마음마저도 깃털처럼 가볍다.
오늘의 산책 코스에서 만날 향기로운 꽃들과 사람들의 미소 가득한 얼굴...
물가의 오리(백조)들과 기분 좋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길 모퉁이 오래된 가게 안에... 손길을 기다리는 앙증맞은 소품들...
오늘의 인연들이 기대된다.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세요... 햇살을 즐기시고... 빗소리를 즐기시고... 귀를 기울여 들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