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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May 03. 2023

걷다 보니: 지구 核까지 걸었네

꾸준함이 주는 작고 사소한 행복


독일로 생활의 거점을 옮긴 뒤 가장 큰 일상의 변화는 걷기였다.

코로나 덕분(?)에 재택근무가 거의 일 년 이상 지속되었고, 퇴근 뒤 한 시간 이상 동네산책이 가능했다.

처음부터 걷기를 좋아했던 것은 아니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왔다. 급기야 매일 먹어야 하는 혈압약이 처방되었다. 매일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에  심리적인 압박감이 너무도 컸다. 경고신호가 들어온 이래 아내로부터 강제되는 관리수칙이 대폭 강화되었다. 철저한 음식관리부터 아주 기본적인 운동에 관한 제약이었다. 적어도 매일 오후 한 시간 정도 동네 산책이 무조건 수행해야 하는 기본 행동 강령(?)에 포함되었다.


"나갑시다..."


 오후, 아내의 재촉이 시작된다.


".........."


즉시 거부는 못한 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최소한의 저항을 해 본다.


"싫어.. 혼자 다녀 오셔..."


"힘들어... 오늘, 그냥 쉴 거야..."


약간은 지치고  성의 없는 대꾸로... 과장해서... 애처로운(?) 눈빛으로...


"그래서... 안 나갈 거야?"


 "그러다가... 큰일 나면 어떻게 하려고... 요즘.. 쓰러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살 빼는 것이 기본이라고 의사 선생님이 그러시잖아... 살 빼면 혈압도 낮아지고.. 코골이도 줄어들고.. 심장에 무리도 덜 가고... 당뇨병도 안 걸리고...."


"그러니까.. 하루에 조금씩 만이라도 걷자는데..."


"내. 가. 하늘의 별. 을 따다가 달래.. 달. 을 따다가 달래.. 꼴랑.. 한. 시. 간. 동네 산책 하자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


".............."


한 템포도 기다리지 않고 이어지는 아내의 속사포에 최소한의 반항은 효과 없이... 잔인하게(?)... 진압되고... 목줄에 이끌려 나가는 강아지(반려견...)처럼... 집 밖으로 따라나설 수밖에 없고는 했다.




걷는 게 싫었다... 정말 싫었다...


다리로 전해오는 몸무게.. 지구에 정말로 중력이 존재한다는 증거를 관절과 근육의 뻐근함과 불편함으로... 매번 온몸으로 체험하고는 했다.


움직이기 싫은 귀찮음은... 몸 상태를 더 나쁘게 하고... 나빠진 상태는 움직이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 무한 반복의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몸 상태가 보내는 위험 시그널조차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무지한 심리상태였다.


과체중에 고혈압, 고지혈... 몸관리와 건강관리가 안된 불안한... 전형적인 중년(직장인)의 건강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직장생활로 인한 술자리와 저녁자리 전형적인 술자리 문화가 건강에 해를 끼치는 원인의 하나임은 확실했다. 저녁자리(술자리)의 횟수가 빈번해 짐에 따라 몸의 건강상태는 점점.. 나빠지기 시작했다. 물론, 어떠한 상황이라도 건강에 대한 관심과 관리의 부재가 불안한 건강상태의 책임에 있어서 순전히 개인책임으로 귀착될 수밖에 없음은 부인할 수가 없다.  


직장생활에 찌든 일상과 건강하지 못한 음식의 기호로 인한 몸상태는 바닥상태에서 힘겨운 SOS를 보내고 있었다.




독일로 이사 온 뒤 가장 큰 일상의 변화중 하나는 걷기(산책)였다. 


코로나 시기로 인한 재택근무는 산책을 더 용이하게 해 주었고 집 근처의 아름다운 풍경은 산책의 발걸음을 더욱 가볍게 해 주었다.


걷기의 의미는 아래 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s://brunch.co.kr/@e837b9e5604c4a3/5


아름다운 풍경에 마취되어(?) 걷는 산책은  더 이상 힘든 물리적인 운동을 의미하지 않았으나 건강에 대한 결과물만큼은 확실하게 효과가 있었다.


뱃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혁대 구멍의 위치가 하나 아래로 위치변경되면서도 숨쉬기가 편한 것이 그 증거였다. 산책의 시간이 지속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걷는 다리에 힘이 붙는 것이 느껴졌고... 발걸음도 한결 경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 신기했다. 경쾌한 발걸음은 걷기로 인한 피로감이 확연하게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 나게 해 주었고... 더 자주.. 더 멀리.. 걸을 수 있게 해 주었다. 허리살이 빠지고... 혈압이 낮아지고... 마음마저 맑아지는... 긍정적인 체험을  몸소 할 수 있었다. (예전에는 체험적으로 전혀 느끼지 못했던...)


걷기(산책)의 마니아가 되어가고 있었다.


걷는 게 좋았다... 아주 좋았다...


걷는 것이 그냥 "물리적인 거리의 걷기"를 의미하는 것은 전혀 아니었다. 걷기를 통한 운동의 효과는 부수적으로 얻어진 효과였을 뿐이었다. (목표치의 칼로리를 소모하고 거리를 꼭 주파해야 하는 운동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은 아니었다.) "주변의 풍경과 대화하면서 걷다 보니 어느새 이만큼 걸었네.."가 적절한 의미였다.




이렇게 이년 반 동안 걷다 보니, 걸은 거리가 지구핵까지의 거리만큼 되었다.

무려 6,058km를 걸었다. 측정되지 않은 거리도 상당히 있었으므로 걷기는 정말 많이 걸은 모양이다.


"지구핵까지 200km 남았습니다."


걷기 측정의 어플이 거창하게.. 과장해서.. 격려를 해준다.

이만큼이나 걸었고... 조금만 더 걸으면... 지구 핵까지 걸은 거리가 되니... 조금만 더 열심히 걸으라고....


"지구핵은 지표면으로부터 약 2900km부터 약 5100km의 외핵과 약 5100km부터 약 6400km의 내핵으로 나뉜다. <위키백과> 이 상황을 고려하면 대충 거리상으로는 지구 핵까지 거리를 이미 걸었음을 의미했다. 

독일로 이사 온 후 이년 반동안 걸었던  꾸준함의 결과


지구의 반경이 대략 하루에 만보씩 걷는 것을 기준으로 이년 반동안 걸으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 (6,200km)에 해당한다.


6,058km/8,909,042걸음 = 0.0006799km/걸음= 0.6799m/걸음
(0.6799m/걸음) x(10,000걸음/일) x 365일 = 2,482km (만보씩 매일 일 년 동안 걸은 거리)
(2,482km/년) x 2.5년 = 6,205km (만보씩 매일 이년 반동안 걸은 거리)

수치를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계산해 보려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가 얻은 결과물은 지구의 크기가 대략 어느 정도인지 실감할 수 있는 짐작을 가능하게 해 주었다.  그다지 크다고 생각되지 않아서 좀(아주) 놀랐다. 반경 대략 6,200km이면 직경이 12,400km인 구체.... 그다지 크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내가 스케일이 너무 큰가?)


그리 크지 않은 지구에서... 서로 미워하고...(시기하고 질투하고), 싸우고...(서로 더 갖겠다고), 잘났다고..(잘났으면 얼마나 잘났고), 못났다고... (못났으면 또 얼마나 못났고), 치고받는...(네가 틀리고 나만 맞고), 우리의 삶이 참... 그렇다. 누구나 다 같이 행복했으면 좋겠는데...


뭐시 중헌디? (영화 대사가 생각난다... 뭐가 중요한지 알기는 아는 것 같은데.... 모르겠다.)




스스로도 놀라운 사실은 이년 반의 짧지 않은 기간 동안 꾸준하게 상당한 거리를 걸었다는 것이었다.

결과자체보다는 결과를 얻기까지의 과정이 꾸준함에 있었다는 사실에 스스로 만족감이 더 컸다.  꾸준함의 부족으로  실망과 자책하던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에 이 결과는 자신에 대한 신뢰감의 회복에 더 의미가 컸다. 몸과 마음이 회복될 수 있도록 하는 산책(걷기)의 치유력이 대단함을 몸소 실감했다.


몸 건강은 눈에 띄게 나아진 결과를 보여주고 있었다. 매일 체크하고 있는 혈압은 아주 정상의 수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독일의사는 지극히 관리 잘하고 있다는 견해와 함께 혈압약은 안 먹어도 좋으며 약간의 불편이라도 느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의견을 주었다. 혈압약을 매일마다 꼭 챙겨야 한다는 우리나라 의사의 견해와는 조금(아주) 다른 소견을 주어서 당황스러웠다. 만약은 모르니... 꼭 챙겨야 한다는 아내의 의견에 따라 복용을 중지하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관리에 있어서 약간의 혼돈이 있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따지기보다는 어느 쪽을 따랐을 때 조금 더 안심할 수 있을지 여부가 판단의 기준이었다.



"빨리 나오셔..."


이제는 아내를 재촉하는 상황으로 바뀌어 산책을 나선다.

걷다 보니 좋아진 건강과 더불어 하루하루가 더 나아지는... 긍정의 사이클로 들어간 느낌이 확실하다.

경쾌한 발걸음과 함께 마음마저도 깃털처럼 가볍다.


오늘의 산책 코스에서 만날 향기로운 꽃들과 사람들의 미소 가득한 얼굴...

물가의 오리(백조)들과 기분 좋은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 길 모퉁이 오래된 가게 안에... 손길을 기다리는 앙증맞은 소품들...


오늘의 인연들이 기대된다.


밖으로 나가서 걸어보세요... 햇살을 즐기시고... 빗소리를 즐기시고... 귀를 기울여 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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