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꼬꼬마에게... 국경선은 남과 북의 허리를 가로지르는 분단선을 의미했지요.
분단선을 넘으려는 개미만큼의 시도라도 감지될 시 오징어게임 영희가 즉각 처단(?)하는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었어요.
허가 없이 무단으로 국경을 넘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연상시킬 정도로 꼬맹이에게 무시무시한 것이었지요.
세월이 흐르면서... 꼬맹이도 세상 돌아가는 이해를 조금씩 넓혀가기 시작했어요.
국경선을 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아도 되고... 여권과 비자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쯤을 알게 되지요.
꼬맹이가 성인이 되어 90년 초 미국 유학을 준비하던 때였습니다.
여권 발급받는 과정도 지금과는 다르게 꽤 복잡했지요.
지금이야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신청서류 한 장이면 충분하지만, 당시는 추가로 "소양 교육"이라는 것을 반나절에 걸쳐 이수해야만 했었지요. "소양 교육 이수증"을 제출해야만 여권을 받을 수가 있었지요.
소양 교육이라는 것이 자세히는 생각나지 않지만, 공산권(북한) 주민 접촉 시 조심해야 할 사항... 서양 에티켓... 등등... 말 그대로 해외에 나가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유의 사항에 관한 그런 것이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은 유치한 그렇고... 그런 내용이었지요. 교육받으면서 가급적 졸지 않으려고 애썼던 기억이 나네요.
우리의 수준이 당시에는... 딱.. 그만큼이었던 것 같아요.
당시 우리나라 모습은 틀림없는 후진국이었거든요. 충분히 이해할 만했어요.
교육 효과에 대한 원성이 자자했었지요. 그 이유 때문인지 곧 이 제도가 없어졌지요.
국민의 수준을 너무 얕잡아본 사소한(?) 오류가 있었던 것 같지요.
지금 MZ세대가 믿기 어렵겠지만, 89년 여행 자유화 이전에는 아무나 해외에 나갈 수가 없었지요.
여권을 발급받기 위해서 재산, 학력, 세금 납부 사항을 제출해야 했고 때에 따라 재정, 신분 보증인까지 세워야 했지요.
해외에 다녀온 것을 은근히 자랑하던 시기일 정도로, 해외에 나간다는 것은 엄선된(?) 일부임을 간접 증명하는 것이었지요.
그만큼 아무나 넘을 수 없는 것이 국경선이었지요.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네요. (불과 삼십 년밖에 안 됐는데... 우리나라 대단한 나라이지요)
현재 선진국인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MZ세대가 이해하기는 좀 어려운 상황 같아 보이지요.
지금은 국민의 대부분이 여권을 이미 소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우리나라 여권 파워도 아주 좋아서 거의 모든 나라를 비자 없이 방문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이론상, 비행기표만 산다면 지구상 거의 못 갈 곳이 없는... 그런 좋은 세상에 살고 있지요. (비행기표를 사는 것이 제일 어렵기는 하네요.)
독일에 살면서 가장 좋았던 점 중의 하나는 "이웃한 다른 나라를 너무도 쉽게 넘나들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북쪽으로 덴마크, 동쪽으로 폴란드와 체코, 남쪽으로 오스트리아와 스위스, 서쪽으로는 베네룩스 3국(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과 프랑스 등 아홉 개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지요. 이런 이유로 다른 나라를 방문하기에는 아주 좋은 지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지요.
기차나 차를 타고 심지어는 걸어서 그 무서운(?) 국경선을 마구 넘나들 수가 있어요. (비행기 이동은 별도로 하고....)
국경을 넘는데 거의 아무런 제지도 없는 것 같았어요. 검문소가 분명히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상관하지 않는 분위기였지요.
우리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원래 다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어요.
아무도 여권이나 신분증 검사를 하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여권과 독일 거주증을 가방 한 곳에 꼭꼭 숨겨서(?) 다니기는 했지요.
스위스에서 독일로 차로 돌아오던 중, 국경선에서 경찰이 어디 사는지... 어디 갔다 오는지... 간단한 질문이 있었기는 했었네요.
그것도 일이 분이 채 걸리지 않았었지요. 그만큼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국경선이 딱히 의미가 없어 보였어요.
가장 재미있었던 국경선 넘기는 독일 남부 보덴호수(Bodensee)에 위치한 콘스탄츠(Konstanz)라는 마을에서였지요.
보덴호수는 아래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알프스 가장자리에 있는 바다만큼이나 큰 호수이지요.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의 3개 국가가 국경을 맞대고 있기에 3국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어요. 보덴호수 서쪽 가장자리에 있는 콘스탄츠는 호수와 산 풍광이 고혹적인 구시가지를 배경으로 펼쳐진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지요. 관광객들에게 인기 만점이고 호수가 정말로 아름다워요. 호수 뒤편으로 보이는 눈 덮인 알프스산맥의 풍경이 일품이지요.
콘스탄츠에서 보트를 타고 보덴호수 자체를 즐길 수도 있지요. 정기 유람선을 타고 바로 옆에 이웃한 또 다른 아름다운 마을 프리드리히스하펜(Friedrichshafen)이나 린다우(Lindau)도 방문할 수도 있지요. 가까운 마이나우(Mainau) 섬은 섬 전체가 공원으로 매년 봄과 여름철에 다양한 꽃의 정원으로 아주 유명하지요.
오늘은 국경 이야기에만 집중할게요. (이곳은 소개할 것이 너무 많아서 나중에 따로 소개해 드리도록 할게요.)
콘스탄츠(Konstanz)는 취리히에서 북동쪽 뮌헨에서 남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보덴호수를 끼고 있으며 호수와 산악경치가 무척 아름다운 마을이다.
콘스탄츠에 며칠간 머물면서 호수를 즐기며 휴가를 보내는 것도 만점이지요.
독일, 스위스,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어서 이웃 나라로 여행하는 중간 기착지로 아주 좋지요.
취리히(Zürich)도 가깝고 리히텐슈타인(Liechtenstein)의 파두츠(Vaduz), 디즈니랜드 성 모델인 백조의 성 노이슈반슈타인성(Schloss Neuschwanstein)에 들리기에도 위치적으로 아주 좋지요. 독일에서 제일 높은 Zugspitze에 들르기도 좋지요.
마을 중심지를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독일 스위스 간 국경을 만나게 된다. 국경선이 참 인상적이다.
호숫가를 따라 남쪽으로 걷다 보면 독일 스위스 국경을 만나게 되지요.
그동안 만나본 국경 중에 가장 간단한 것이었지요. 그냥 줄 하나 달랑 그어져 있고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판 하나 세워져 있지요.
이 선을 보는 순간 초등(국민) 학교 때 짝꿍과 장난치던... 책상 위에 그어놓은 선이 연상되었지요.
선을 넘어오는 지우개나 공책에 가차 없는 응징(?)을 가하여 짝꿍을 울리고는 했었지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당시는 일상적이었지요.)
책상 위 선만큼도 구실을 못하는 듯한 국경선... 선하나....
인간행동이...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네요.
선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하는 곳이 있는데... 무심히 그어져 있는 선....
독일에서 스위스 쪽을 바라보는 풍경(좌)과 스위스에서 독일쪽을 바라보는 풍경(우)
독일과 스위스의 경계를 나타내는 표지판. 표지판 좌우로 독일과 스위스로 국경이 나뉜다.
줄 하나 넘어가면 스위스이고 넘어오면 독일이고... 고무줄놀이하듯이 아무 방해도 없이 넘나들 수 있지요.
이렇게 국경을 쉽게 넘나들어도 되는지, 처음에는... 누가 목덜미를 잡아당기는 듯한 혼자만의 어색함이 있었지요.
스위스 쪽에 주인 따라 나온 쪼끄만 닥스훈트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바라보며 꼬리치고 있네요.
독일 쪽에 있는 우리를 보고 괜찮으니 어서 넘어오라는 듯 말이지요.
군인이나 경찰 혹은 공무원.... 지키는 사람과 시설은 아무 곳에도 없었지요.
상상 속에나 있었던 줄 하나 달랑 그은 국경선.... 실제로 접하게 되니 약간 허무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지요.
산책 나왔다가 스위스 쪽으로 걸어가서... 점심 먹고... 차 마시고... 놀다가... 선 넘어서 독일로 귀가하면 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