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살이 # 독일 아파트 # 아파트 선정 기준
독일입국 비자신청과 더불어 본격적인 독일 사귀기(?)가 시작되었다.
독일 현지에 살 곳, 집을 알아보는 일이 독일 사귀기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급선무였다. 현지회사 정착 도우미(Relocation team)의 도움이 거의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에 살 곳을 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라 쉽게 생각했다. 재미(?) 있게도, 예상은 기대와 달리 어긋나기 시작했다.
집 구하는 방법과 문화가 달랐다.
한국에서 독일로 우리 삶의 터전을 옮기는 본격적인 화분 분갈이가 시작되었다.
집안에 작은 꽃화분과 큰 나무화분이 있으면 기분이 좋았다. 기분 전환이 필요할 때마다 집안에 화분을 사다 나르는 것이 사소한 취미이자 습관(?)이었다. 새 식물을 들일 때마다 적당한 크기의 화분과 기름진 흙으로 분갈이도 해주면서 매번 정성을 다 했었다. 정성과는 무관한 듯, 처음 가져다 놓고 흐뭇해하며 식물을 감상하는 시간은... 번번이...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무리 길게 생각해도, 한두 달이라는 기간은 식물이 고사상태로 시들어 가는 것을 지켜보는 시간으로 충분했다.
"사랑과 관심을 너무 주어서 그래요."
"..........."
"물을 주고 싶을 때 주지 말고 참으세요."
"..........."
자주 가는 화원 주인이 내린 단호한 처방이다. 지나친 관심과 사랑은 오히려 독이 된다.....
식물에게 분갈이는 경우에 따라 사느냐 죽느냐를 담보로 할 수 있을 만큼 매우 민감한 순간을 의미한다. 나같이 식물을 키우는 재주가 부족한 사람을 만나면, 식물의 입장에서는 매일매일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서 불안한 곡예줄을 타는 느낌일 것이다. 제대로 기르지도 못할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욕심을 부리다가 죽이기를 여러 번... 아내로부터 생명체를 집으로 들이지 말라는 경고를 수차례 받았다.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고 죽이는데 대한 죄책감과 아내의 경고 이후로 화분 사다 나르기를(화분 죽이기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 결심은 지금까지 잘 지켜지고 있으나 언제 다시 도질지 모르겠다. 요즘처럼 화창하고 따뜻한 봄날에 더욱 심해지는 계절병이기도 한 것이라 다시 도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삶의 장소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히 물질적 장소 변경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사는 곳에 따라 사회적 문화, 가치관, 행동 양식 등이 달라질 수 있으므로 삶의 질뿐만 아니라 정신적 세계까지 영향을 받게 된다.
누군가 그랬다.
"당신이 어떤 것을 먹는지 알려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당연히... 이 표현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댜. 단순히 먹는 음식에만 의존하여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는 것에서 개인의 가치관이나 삶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경우가 많다. 주변의 지인들을 대상으로 적용해... 생각해 보면 상당히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채식주의자는 양처럼 온순하고(아내가 그렇다).. 고기 좋아하는 사람은 호랑이처럼 공격적이고(적극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임을 다시 한번 밝혀 둔다. (다르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당신이 어디 사는지 알려주면, 나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고....."
먹는 것 이상으로 살고 있는 지역과 사는 곳의 형태가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 표현도 절대적 일 수 없지만, 사는 곳과 형태에 따라서 삶의 가치관과 철학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는 표현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나라를 변경해야 하는... 엄청난(?) 삶의 새 분갈이 기회를 갖게 되었다.
우리가 살고자 하는 곳의 장소와 형태 그리고 먹거리가 많이 바뀌게 될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려는 노력과 태도에 따라 인생을 보는 가치관과 철학 등이 새롭게 바뀔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 것인지 상당히 궁금하다.
다행인(감사하는) 것은 식물과 달리 "선택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을 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독일에서도 집을 구하는 방법에는 누구에게나 뻔한 내용이듯 구매, 전세 그리고 월세로 사는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전세 형태는 찾아볼 수 없으니 뭔가 손해 보는 듯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월세는 뭔지 모르게 현금이 그냥 새어 나가는 느낌.. 그런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어쩌랴.. 우리에게는 월세만이 유일한 방법인 것을.. 집을 사는 경우는 10년 이상 독일에 거주할 계획이 있어야만 유리한 점이 있어서 고려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아파트를 구하는 절차(문화)는 우리의 방식과 아주 많이 다르다. 우리의 방식은 살고 싶은 지역을 둘러보다가 그 지역의 부동산에 들러서 가격 살펴보고 임대인과 가격과 일정합의가 되면 계약서 도장 찍고 입주하면 그만이다. 거래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절차만이 있을 뿐이다.
이 기본적인 계약절차는 독일에서 아파트 구하는 거래에도 당연히 존재한다. 이 기본적인 절차 외에 다소 어색하기도 하고 흥미로운 추가절차가 몇 가지 더 있다. 임대인이 여러 명의 임차후보인리스트를 바탕으로 각각 서류면접부터 인터뷰를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계약금 먼저 거는 사람이 우선인 것에 비하여 여기는 계약금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 임대인이 마음에 드는 임차인을 찾을 때까지 임대인에 의하여 거래가 결정된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임차인이 아파트 임대를 얻기 위하여 사전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입사면접 뺨치는 수준의 서류준비와 인터뷰 준비를 해야 한다.
출국 전부터 아파트 찾기를 서둘러 시작했다. 독일정착 도우미가 괜찮은 아파트가 있을 때마다 동영상을 찍어서 보여주고 논의를 했다. 선택이라는 과정이 생각과 달리 쉽지 않았다. 몇 번의 반복되는 실망과 주저함 끝에 독일에 입국해서 직접 보고 결정하기로 했다. 회사에서는 에어비엔비를 통하여 몇 주간 머물 임시 숙소를 먼저 준비해 주었고 독일에 도착 후 정착 도우미와 같이 직접 찾아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었다.
독일입국 후 정착도우미와 함께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독일에서 부동산을 찾아볼 때 가장 인기 있는 앱이 Immoscout24와 Immowelt이다. 이 앱들을 이용하여 지역과 예상비용 그리고 주택형태 등을 비교분석할 수 있었고 부동산과 임대인이 광고하는 물건들을 살펴볼 수 있었다. 관심이 있는 아파트가 있을 때마다 임대인에게 연락하여 실물을 확인했다. 가끔씩 광고에서 보인 사진과 실물이 주는 느낌이 너무 다른 경우가 많았다. 음식점 메뉴판의 사진과 실물을 받아 보았을 때 느끼는 차이로 인한 씁쓸함.. 그것과 비슷했다.
제출하는 서류의 종류는 우리에게 약간은 당황(황당..)스러운 것들이었다. 공인된 개인 신용도 평가서, 회사 연봉 계약서 그리고 자기소개서 등 앞으로 문제없이 임대인의 아파트를 잘 사용하겠다는 서류들이 필요했다. 좀 괜찮은 지역과 쓸만한(?) 아파트일수록 임대인이 요구하는 서류가 집요하고 깐깐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그냥 독일에 들어가서 아파트 월세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고생을 각오하거나 조금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만큼 절차가 조금(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임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복잡한 절차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나 독일이나 마찬가지로, 입주 후 문제를 야기할 가능성이 낮은 임차인을 선택하고 싶을 것이다. 더군다나, 독일 임대차법이 임대료를 잘 내지 못하는 임차인을 함부로(?) 하지 못하도록 철저히 보호한다고 한다. 그 결과로 임차인 스크리닝 절차가 한층 더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절차와 방법이 조금 (아주) 다를 뿐 본질은 마찬가지라는....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으나 마음에 드는 아파트 헌팅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아파트 주변환경을 비롯하여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들이 최종선택을 망설이게 했다. 선택의 눈높이를 조금 낮추기도 하면서 선택의 과정을 반복했다.
이 과정 중에 우리의 것과 아주 다른 황당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월세 사는 사람이 조명이나 부엌가구, 싱크대를 직접 설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이전에 살던 사람이 자기가 설치했으니 이사 나갈 때 다 떼어 가지고 간다. 가끔 새로 들어오는 세입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팔고 가는 경우도 있다. 가격협의가 실패로 끝날 경우 떼어가거나 부셔서 버리고 가는 황당한 경우를 종종 목격하게 된다. 임차인이 부엌가구를 설치하고, 이사 나갈 때 떼어가는 이사문화는 아주 (아주 많이..) 불합리해 보였다. 아파트가 새것이고 마음에 들어도 부엌가구와 싱크대, 조명등이 없어 선택을 망설이게 된다. 내부에 아무것도 없는 썰렁한 공간만이 그냥 덩그러니 있는 이질적인 문화에 쉽게 정이 가지 않았다. 몇몇 죄(?) 없는 독일친구들에게 불평했더니 자기네들도 불합리성을 인정한다고 했다. 요즘은 임대인이 직접 설치하고 임대료에 반영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변하고 있다니 그나마 다행이다.
시간은 계속... 흘러서 곧 쉽게 아파트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상과는 달리... 세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우리의 경우, 부엌과 조명 그리고 가구 등을 새로 설치하기에는 시간상으로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다. 고민 끝에 fully furnished 아파트를 선택하기로 했다. 이 형태의 아파트는 침대, 소파 같은 가구부터 전자제품, 그릇, 숟가락, 젓가락까지 내부생활 용품들이 이미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다. 비용은 조금 더 추가로 들겠지만 집 인테리어에 신경 써야 할 것이 거의 없었다. 다른 것에 신경 쓸 필요 없이, 시급한 직장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 큰 선택의 이유였다.
아파트 형태 외에, 우리 나름의 지역선택 기준으로 3S (Security 안전, Shopping 쇼핑, Society 주민)가 있었다. 어디든 살 곳을 정할 때 적용하는 우리의 기준이다. 이 기준을 적용하면 살기 좋은 곳을 선택하는데 큰 실수가 없을 듯하다.
현지에서 아파트 헌팅 중, 3S를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3S 만족도가 높다는 것은 비용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었다. 나는 전원생활을 좋아하는 편이고 아내는 도시생활을 좋아하는 편이다. 사는 곳의 지역선택 논쟁이 있을 때마다, 이 기준은 매번 나를 일방적인 패배 상황에 처하도록 만들어 놓고는 한다. 상황에 맞게 적절한 3S의 균형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곳저곳 여러 군데를 돌아다닌 아파트 헌팅 끝에, 이 세 가지 조건을 어느 정도 만족하는 사냥감을 찾을 수 있었다. 열다섯 명의 후보와 경쟁을 했다. 다행히도... 가장 우수한(?) 점수로 사냥감을 우리의 품 안에 넣을 수 있었다. 문제는 품 안에 넣은 사냥감 요리를 하려면 무려 세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 달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임차인이 나갈 때 임대인에게 적어도 세 달 전에 계약종료를 통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경우, 임대인이 계약종료 의사를 받고 Immoscout24에 내놓은 것을 성공적으로 계약할 수 있었다. 성공적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이 지역의 해당 아파트가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기회 자체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우리에게는 행운이었고 계약까지 할 수 있었던 것에 더욱 감사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우리가 찾고 있는 기준에 거의 부합하는 것이기에 세 달 이상이라도 기다릴 만한 가치가 충분했다.
집 앞으로 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으로 아름다운 고성이 바라다 보이는... 거실에서 보이는 풍경은 거의 완벽했다. 집 앞으로 보이는 경치도 탁월했지만 3S관점에서도 만족할만한 점수를 줄 수 있었다.
Security 관점에서 볼 때, 건물의 입구에 주출입구와 주차장이 안심할 수 있을 정도로 밝고 깨끗했다. 낯선 사람들의 침입을 방지할 수 있는 안전망이 잘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다. 동네 근처를 거닐기에도 좋아 보였고 집 뒤쪽으로 철학자의 길이 있어 한두 시간 안전하게 산책하기에도 만점이었다. 강 따라 산책하다가 성 쪽으로 넘어가는 다리에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려 비교적 안심하고 다니기에 충분했다. 다른 지역에 비하여 안전 관점에서는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Shopping 관점에서도 매우 만족스러웠다. 걸어서 십분 거리 내에 Galleria 백화점, REWE, LIDLE, ALDI 그리고 DM 등의 크고 작은 식료품점이 다양하게 있어서 물건이나 식료품을 사는데 불편함이 거의 없었다. 가까운 거리에 원할 때마다 들러서 필요한 것들을 살 수 있으니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 다니기도 편했다. 게다가 물건 값까지도 그리 비싸지 않았으니 쇼핑환경이 아주 좋았다. 이 지역의 백화점 규모는 소규모로 우리나라의 롯데 백화점이나 신세계 백화점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만큼 (너무 했나...) 크지만 우리에게는 그다지 상관없었다. 과일과 채소의 가격은 우리나라에 비하여 신선하고 저렴해서 부담 없이 즐기기에 좋았다.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에 서는 시골장도 집 근처에 있어서 신선하고 다양한 시골채소와 과일, 빵 등을 즐길 수 있어서 좋았다.
시골장이 서는 매주 토요일마다, 아침 일찍 장에 들러서 과일과 채소를 사고, 크라상으로 유명한 빵집에서 크라상 두 개, 쵸코크라상 두 개 그리고 커피를 사들고 아내와 함께 Necker 강변 벤치로 가고는 했다. 강가의 오리 떼... 강을 거슬러 힘차게 노를 젓는 조정선수들의 역동적인 모습... 한 모금의 커피와 크라상의 향기... 아침의 행복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Society 관점에서 아파트 구성원인 이웃들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코로나 시국 때문에 교류가 활발할 수는 없었지만 이웃 아주머니와 팔순의 할머니 자매님, 도도하면서도 멋쟁이 신사분 (노교수님)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은 전형적인 보수적(내 느낌은 그랬다) 독일인으로 처음에는 아주 쌀쌀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마주칠 때마다 항상 웃으시면서 인사하고 반겨주시는 것이 아주 고마웠다. 걸어서 십 분 거리 강건너에 독일 성당이 있어 매주 미사에 참석하기도 아주 편리했다. 매번 친절하게 대해주시던 독일 할머니 자매도 성당에 다니신다. 성당에서나 혹은 성당 가는 길에서 마주치면 활짝 웃으시면서 따뜻하게 안아 주시던 고마움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좋은 이웃들과 더욱 가깝게 지냈을 수 있었을 것을 생각하면 많이 아쉽다.
우리의 삶은 항상 변화하고 그때마다 최선의 선택을 해야 한다. 우리는 독일로 생활의 근거지를 옮기는 화분 분갈이와 같은 중요한 선택의 기회를 가졌다. 분갈이하는 식물처럼 생존과 더불어 삶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큰 변환점을 맞이한 셈이다. 변화의 과정 중에 예상과는 다른 여러 가지 다양한 문화와 생활의 차이를 경험하고 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마음의 창을 활짝 열어놓고 변화를 즐기려 한다.
변화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인생은 어차피 도전과 모험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