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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히려 더 좋다 Mar 25. 2023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아파트 이유

#독일 아파트 #소음 # 문화

시간이 지나서야 만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처음 보아서는 절대 알 수 없는..

독일 아파트 생활에서  일어나는 역설적인 이야기
살아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조용해도 너무 조용한...


아파트 설계부실이 근본 원인인지 모르겠으나 위층 소음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아파트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운이 좋게도 배려심 깊은 이웃을 만난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으면 위층 소음으로부터 벗어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 될 것 같다.


독일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우리나라 아파트도 위층 소음문제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의 단거리 육상 경기와 인테리어 경시 대회가 위층에서 개최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아이들의 우당탕 거리며 뛰어가는 소리와 가구 끌어대는 소리들... 짜증을 넘어 매번 신경을 바짝 곤두서게 했다.


" 짜슥들... 오늘도 싸라 있네....."

" 참을만하고만..."


소음에 상대적으로 둔감한 편인 나의 역설적 표현이었다.

그다지 크게 개의치 않았다... 잘 참는다.. 포기에 거의 가깝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동안 몇 번의 정중한 부탁은 쇠창살에 바람 지나가듯 아무 효과 없는 것으로 판명난지 오래다..


" 재네들 때문에 미쳐.. 죽겠다..."

" 건설사는 아파트 좀 잘 만들어야 되는 거 아냐..."


아내는 소음에 예민했다. 지나칠 정도로 민감했다.

가끔씩,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반응을 하고는 했다.  지나칠 정도로 민감한 신경은 본인힘들 하기도 했지만 주변사람을 더 긴장하고 힘들게 만드는 경우많았다.


지나치게 화가 났을 경우, 소음 원인제공자를 향한 불평과 비난이 좀처럼  쉽게 멈춰지지 않는다. 주변에 있는 사람은 잔뜩 긴장한 채 아내의 화가 풀릴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조용히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번의 경험에서 터득된 최선의 행동 매뉴얼이었다. 간혹 위층의 소음이 멈출 때가 되었음에도  눈치 없이 지속되는 경우, 긴장의 시간 또한 더욱 길어지고 결국 참다못한 인내심이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이 온다.


" 그만 좀... 하시지요..."

" 그 정도로 싫으면 시골로 이사 가시든가..."


언성이 약간은 높아지는 순간이다.

지나치게 화가 나면 존댓말이 튀어나오는 나의 좋지않은(?) 습관이 있다.

이 순간, 위층과의 신경전이 아내와 나 사이의 내전으로 전선이 변경되는 것을 의미했다.


정서적으로 매우 이성적인 아내가 소음에 있어서만은 예상을 뛰어넘는 감정적 상태로 변하고는 한다.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교육적인 문제, 남을 배려하는 문화의 결핍, 제대로 된 집을 만들지 못하는 건축의 문제를 성토하기 시작한다. 성토의 대상을 더 이상 찾을 수 없을 때가 돼서야 비로소 원래의 이성적인 모습으로 천천히 돌아오고는 했다.

어렸을 적 드라마 헐크를 생각나게한다. 화가 가라앉아야만 제모습으로 돌아오는...

화난 아내는 무섭다.

내전이 발생할 경우마다 필요한 최소한의 무기는 아내가 제풀에 지쳐 휴전모드로 돌아오기까지 기다려주는 끈질긴(?) 인내력이다. 각고의 인내|끝에 결국에는 누가 승자인지도 모르는 상태로... 늘 그래 왔듯이...휴전모드로 돌입한다. 이웃이 바뀌지 않는한 종전상태는 오지않을 듯했다.

위층의 소음도 변화의 조짐이 전혀 없었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는 포기한 지 오래다..


인간에 대한 포기만큼 슬픈 일은 없다...(써놓고 보니 그럴싸하다...)




아내는 항상(가끔) 불평했다.

남편은 "남의 편"이라 "내편"이 아니라고...(그래도 휴대폰에는 내편으로 저장돼 있다...)

휴전상태에서 후속으로 국지전이 일어날 때마다 사용하는 단골 멘트다.


"남의 편"입장에서 너그러이 생각해 보면...


애들이니까 뛸 수도 있고, 이리저리 가구위치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자기네들이 내는 "소음이 이웃에 미치는 정신적 영향과 그 결과"에 대한 심각한 학문적 연구결과를 모르는 것 일뿐이다. (웃자고 하는 소리...)


"내편"의 입장에서 심각하게 생각해 보면...


들이 뛰려면 밖에 나가서 뛰거나.... 어른이 좀 단속해야 하는 것이 맞다.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은 좋은 것이 아니니 조심하라고 할 일이다. 그게 어려운가? 그 집에 사는 어른도 마찬가지다..

뭔... 인테리어 경시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고... 가구 끄는 소리 좀 조심하고... 안 낼 수 없어?

어른이 더 문제야.. 문제...

아이들이야 몰라서 그런다 치고.. 어른이 문제라는 점에는 백 퍼센트 "내편"에 선다.


이웃 간의 위층소음이 심각한 문제이기는 한 것 같다. (신문기사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이 소음은 아드레날린 분비를 촉진시키는 것이 틀림없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확실하게 느껴진데.


심장 맥박수는 "왕벌의 비행"을 들려주는 오디오의 이퀄러라이저를 보는 듯하고, 혈관을 지나는 피의 속도는 F1 포뮬러 경주용 차를 따라잡는 듯하다.




독일입국 후, 우리의 선택기준으로 완벽에 가까운 아파트를 찾아서 입주할 수 있었다.

매일 즐거운 마음으로 새 환경이 주는 행복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가 서서히 감지되기 시작했다.


아파트가 조용했다.(조용해서 좋은데...)

너무도 조용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일반적인 생활소음조차도 듣기가 어려웠다.


소음에 조금(아주) 민감한... 소음에 지쳤던 부류에 속하는 사람으로서... 조용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적막강산... 이 고요한 (조용한 이라는 표현이 충분하지 않다) 분위기는 서서히 이유 모를 긴장감이 포함된 어색한 분위기를 선사하기 시작했다.

분명히 이웃들이 살고 있음을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조용할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완벽한 건축물로 인해 소음이  차단되는 것아닌 것은 확실했다. 어쩌다... 아주 간혹... 들려오는 소리가 건물의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확인시켜 주었다. 모두가 극도로 조심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소음을 내서는 안됩니다."


 아파트 계약서에 쓰여있는 내용이었다. 이 시간만큼은 의적으로 조용히 지내야 함을 의미했다.

문제는 침묵의 시간 영역 외에도 너무 조용했다. 생활소음도 거의 내지 않고 사는 듯했다. 어떻게 이렇게 살 수 있는지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고요한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우리가 만드는 소음에 우리 스스로가 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내는 소음에 조금씩 민감해지는 정도를 지나쳐 극도로 민감해져 가기 시작했다.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침묵(?)의 시간이 끝날 무렵, 아침 일찍 커피 끓일 준비와 함께 하루의 루틴을 시작한다. 커피물 끓이는 포트의 소리가 우뢰와 함께 소낙비 내리는 소리만큼 크다는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막바지 단계에 다다른 물 끓는 소리는 크기에 있어 절정의 상태였다. 이소리는 고요한 새벽의 정적을 깨는 소울음과도 같았다. 분명히 이웃이 아침마다 이 소음을 들었을 것이다. 직접적인 불평을 듣지 않았으니 좋은 이웃을 둔 것이 같다는 예측이 틀림없다. 물 끓이는 소리조차 긴장해야 하는 고요함을 상상해 보시라.


물 끓이는 소리가 나지 않는 포트를 개발하면 대박이 날 거라는 생각을 잠시 해 보았다.

사업화를 검토해 봐야겠다.




평소 소음에 민감하던 불평분자(?)가 어느덧 소음 메이커(?)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가 만드는 소음이 이웃들에게 불편함을 야기하고 있음을 의미했다.

소음을 낼 만한 일에 바짝 긴장하고 조심하면서 지내야 함을 의미했다. 

우리나라에서 생활하던 때와는 달라도 완전히 달랐다.


샤워도 너무 이른 시간에 하면 눈치가 보였다. 씻는 것도 맘대로 할 수없었다.

누가 뭐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샤워기 물소리도 엄청 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적막한 상태에서 나는 소리는 크기가 더욱 배가 됨을 알았다... 당연한 이야기 같지만...


세탁기나 진공청소기도 아무 때나 사용하면 안 되었다.

일요일에는 특히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는 긴장감이 절정에 이른다.

독일사람들은 일요일에 집에 있을 때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편하게... 정말로 편하게.. 조용히 지내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일요일에는 소음을 내지 말아야 한다...


세탁기와 진공청소기를 사용하는 빨래나 청소는 일요일에는 기본적으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단독 주택에서야 일요일이고 휴일이고 자기편 할 때 청소와 빨래한다고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공동 주택에서는 더욱 잘 지켜야 할 생활규범이라고 했다.


독일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고 공동주택 규범에 대한 인식이 약간은 부족했다. 이미 다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해서인지 나서서 미리 주의사항에 대하여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다. 시간이 지나고... 느낌을 주변사람에게 전달하고 나서야.... 더 자세한 문화에 대하여 들을 수 있었다.




조용한 원인은 단순히 생활문화에만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이웃에 거주하고 있는 구성원들을 보면  연세가 어느 정도 있으시고, 은퇴하신 독신 혹은 노부부들이 대부분이었다. 아파트 전체에 아이들이 있는 젊은 가족이 한 가구도 없었다. 조용하게 지낼 수밖에 없는 가구로만 구성이 되어 있으니 소음이 날래야 날 수가 없었다.(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다)


가장 젊은(?) 축에 속하는 우리가 가장 다이내믹하게 생활하는 구성원이었으니 우리만 조심하면 아파트전체가 소음에서 있어서 문제가 될 일은 없을 듯했다. 우리가 소음을 가장 많이 발생시키는 것은 틀림이 없다. 다행히 아직까지 우리에게 불평을 제기한 이웃은 아무도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우리나라에 있을 때와 공격과 수비의 상황이 바뀌었다.


" 여기는 침묵의 수도원 같아...."


"............"


집사람의 행복한 불평이었다. 위층의 소음에서 완벽하게 해방된...


점점 거주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완벽함이 서서히... 천천히... 불편함으로 변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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