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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미숙 Dec 01. 2023

효학반(斅學半) 가르치고 배우고,  이것이 내 천직일까

<강의 섭외가 들어온 날>

 

  한달전 쯤이던가 딸과의 해외여행 중, 한통의 문자를 받았다.


내년에 그곳에서 일본어 강의를 해달라는 문자였다. 정중히 거절문자를 보냈다. 이유는 간단했다.

같은 대학원에서 공부했던 후배이자 동료가 그곳에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자리를 대신해 달라는 말이다. 물론 경쟁사회에서  있을수 있고 흔히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만 마음 내키는 일도 아니다.

      

이런 일은 그 전에도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강사채용을 하는 기관(주로, 시에서 운영하는 교육청이나 그 외의 기관들)에서는 연말이 되면 내년을 준비하기 위한 채용 공고를 다.


그 때도 부탁을 받아 응시했고 면접 당일 찾아간 그 곳엔 대학원 때 갑자기 연락이 끊겼던 후배가 일하던 자리였다. 면접 순번이 돌아왔고 담당자에게 면접을 취소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 이럴 경우 기존강사와 새로운 강사들의 자리다툼을 하는 식의 껄끄러운 상황이 되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아는 사람이면 더욱 곤란하다. 당시 면접관은 이왕 왔으니 얘기라도 하고 가라며 친절히 대해줬고. 이후 그 후배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아무튼 여행 중 강의 섭외 연락은 그대로 끝이었다.


그리 몇 주가 흘렀고 강의도중 한통의 전화가 찍힌 것을 발견했다. 여행중에 받았던 그쪽 기관 담당자로부터 온 전화였기에 다시 거절의 문자를 보냈다. 강의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또 다시 벨이 울렸다.  이번에는 내가 알고 있는 강사가 강의를 못하게 되었으니 류를 내보라는 이었다. 강사모집에 한두 사람이 지원하는 것이 아닐 터, 생각해 보겠다며 전화를 끊으려 하자 당일이 마감날이 했다.   

   

집에 도착하자 마자 이력서와 강의계획서 그리고 그간의 경력 증빙과 학위 증명서, 그 외 자격증명서까지 모조리 준비했다. 게다가 초본까지 필요하다 하니 동사무소까지 들러야 다. 아파트 안에 동사무소가 있기에 마감시간까지 가능했지만, 서류는 한 묶음이다.



  언젠가는 아파트 안의 우체국에서 지원서 한곳에 보낼 서류를 들고 소포를 부탁하니, 무슨 강사 지원이 국회의원 공천 받는 것 보다 심한거 아니냐 물었다. 지금도 국회의원 공천 서류가 어떤건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면 다행이다. 국제 자격증 공증을 서야할 때도 있다. 법무사무소 직원은 공증을 서줄 사람이 필요하니 그럴 사람을 데려오라 했다. 갑자기 어디서 사람을 구한담. 어이없는 일들이다.  


그 공증이 어려운 것도 아니고 종이한장을 번역하는 너무나 간단한 것이어서, 본인도 가능한 건지, 내가 제일 자신있는 일이 아니겠냐 말하고 타이핑한 공증서에  인감을 찍어 만들어온 적도 있다.  참으로 골치 아픈 과정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오전 강의을 마치고 집에 오자마자 이 많은 서류를 구비하고 제출처를 찾아가니 몇 개 이력서와 경력증명  자료에 기재된 날자 부분이 다르다고  수정해서 다시 제출하라 한다. 촉박한 마감시간이라 몇 군데의 경력은 차라리 없었던 것으로 빼버리라 하고 그걸 다시 카피해 제출했다.     


  그 서류 면접이 바로 어제 늦은 오후에 있었다.

나이가 많은 만큼 누구와 경쟁하고 싶지도, 누구의 면접도 보고싶지 않은 나이.  

이력서를 본 면접관은 웃으며 말했다. 문화도 적절히 넣고 수업해 주시는 거죠? 학습자들의 레벨이 천차만별인 것은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형식적이면서 당연한 질문이었다. 이렇게 면접은 간단히 끝이 났다.

     

관계자의 권유로 부랴부랴 몇 시간내에 이루어진 일들. 면접까지 치르게 된 어제 마음은 날아갈 듯 가벼웠다. 번거롭긴 했지만 그 약간의 번거로움이 나에겐 활력이 된 하루였다. 약간의 번거로움은, 수고스러움은 내 뇌를 깨우는 청량제이다. 면접이 끝난 어둑어둑한 시간, 프랑스에서 말하는 '개와 늑대의 시간'에나 느낄수 있다는 황홀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해마다 누군가와 경쟁을 해야는게 나같은 강사들의 운명이다. 어느 기관에서 해준 말이다. 인정에 얽매여 경쟁을 거부하고 새로운 강사가 지원해 주지 않는다면 기관들로서는 강사의 질이 점점 낮아질 수 밖에 없으며 기관 쪽에서는 손해를 보는 것이라 했다.


 수고스럽게도 여러번 연락을 준 그곳 기관의 관계자 분께 감사한 마음이다. 흔히 철밥통이라 말하는, 손놓고 있어도 월급을 받고 사는 공직에 있으면서 몇번 거절당한 타인에게 연락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일은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늦게까지 부산은 떨었지만 불러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행복한 하루였다.     


배우고 전수하지 않으면 그것 또한 도둑과 다름없다는 말이 있다.

내게 힘이 허락되는 날 까지 효학반(斅學半)의 정신을 이어가고 싶다. 학습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동반 성장하는 나를 발견하고 그들의 열정을 배우고 싶다.  가르치고 배우는 즐거움을 느껴가는 學者의 길을 걷고 싶다.


學者는 배운 사람이 아니라, 배우고 있는 사람이기에 學者이.  이시영 박사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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