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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바쓰J Aug 16. 2022

꽃길만 걸어요

인생이 비록 가시밭길인 것만 같아도, 삶은 계속되니까

<커버 이미지-몇 해 전 제주도 출장 중 찍은 사진>

동백꽃이 피었다 지면서 말 그대로 꽃길이 펼쳐졌다.

때때로 인생은 가시밭길인 것 같이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 서로 축복하듯 하는 그 말을 이 사진을 꺼내어보며 다시 해본다.


“우리, 꽃길만 걸어요!”







병가 1, 그리고 복직 


공식적으로 병가가 시작된 후로 1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대략 그 반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와 계절의 변화도 모른 채 멈추어 지냈고, 그 이후로 서서히 그 멈췄던 시간 동안 잃어버리고 놓쳤던 것들을 되찾아 왔다.


이제,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닌’ 그 회사원 신분 역시 되찾아 올 시간이 되었다.


복귀 한 달 전 즈음되었을 때, 인사부 담당자가 먼저 연락을 해 왔다. 그 누구도 몰랐던 나의 소식과 현재 상태를 파악해 보려는 의도가 분명한 통화를 했다.

그래서 나도 분명히 나의 뜻을 밝혔다.



“한 번도 회사를 그만둔다는 생각을 해 본 적 없으니, 제 자리로 돌아가야죠. 정말 암흑 같은 시간들이 있었지만, 지금은 원래의 일상과 컨디션을 거의 회복했습니다.

이제는 회사와 저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을 것도 잘 알고 있고, 어쩌면 제가 회사에 뜨거운 감자 같은 존재가 되었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다시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불편한 사람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사실도요.

하지만 제가 여기에서 그냥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17년을 넘게 다닌 회사에서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겪고 조용히 먼지처럼 사라지고 싶지는 않습니다.”



확실한 복직 의사를 밝히고 난 후, 내가 소속된 그룹의 그룹장이자 현재 회사의 일인자나 다름없는 최고위 상사가 직접 내게 연락을 해왔고, 복직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연락 역시 나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목적이 가장 컸는데 대화를 통해 이 사람이 당장은 제 발로 퇴사를 하는 일은 없을 것 같으니 급히 대책 수립이 필요했으리라. 회사가 최대한 책임을 피할 수 있고, 또 내가 돌아감으로 해서 일어날 파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을 것이었다.


한편 회사의 노동조합 역시 나와 연락이 닿은 후로 사건에 대한 파악과 나의 복직을 돕는 것에 최선을 다해주겠다고 나섰다. 그간 노조위원장님 외 임원들 모두 내가 개인적인 사유/질병으로 병가를 간 것으로 알고 있었고, 그래서 조심스러워서 먼저 연락을 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심지어 매 분기마다 산업안전보건 관리자와 정기적으로 회의를 함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조합원의 산재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기에 노조에서도 내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고 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노조는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기를 약속하고, 조언과 도움을 주고 있다.


“J님, 회사 사정이나 가해자 등등 다른 건 아무것도 생각하시지 마시고, J님이 원하는 것만 생각하세요!

가장 기본적으로 회사가 반드시 해야 하는 조치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분리입니다. 이건 안 하면 안 돼요. 그런데 이때, 당연히 J님의 원직복직이 원칙이니 가해자를 다른 데로 보내야 하겠죠. 보낼 곳이 없으면 회사는 대기발령이라도 내야 합니다. 그건 회사의 몫이지 우리가 생각할 부분은 아니고요.”


원칙과 법규로만 보면 노조의 이야기가 백번 옳았다. 그러나 다시 돌아가서 계속 일을 해야 하는 내 입장에서 더 많은 문제와 갈등들을 일으키게 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나는 과연 어디로 


예상했던 대로 세 번째 접촉을 해 온 그룹장은 나의 ‘원직복직’ 옵션은 언급도 하지 않았다. 불편할 두 사람을 분리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니, 새로운 자리를 제안한다 했다. 오직 성공적인 복귀와 재기를 잘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하지 않겠냐며 일 년 전 사건에서 나의 이목을 떼려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안한 자리는 이제까지 내가 해 온 일과는 관계가 없는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내가 회사에 더 각을 세우지는 않아도 되는 유일한 방법 같아 보였다. 사건이 일어난 이상 이미 나에게 ‘최선의 선택’이란 없는 것이 사실이니까.


며칠 생각할 시간을 요청했지만 아무래도 원래 자리로 가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지지 않았다. 마치 할 만큼 다 하고, 갈 데까지 가고 또 질릴 대로 질려 더 이상 미련도 뭣도 없는 기분이, 그 팀과 그 자리에 들었다. 당장 생계가 달린 회사를 박찰 순 없으니 차악의 선택이라고 할까.


나의 대답을 기다리던 그룹장에게 결정을 알리고, 노조에도 알렸다. 내가 원직복직을 고집하지 않아 회사는 많은 부분들이 쉬워질 것이었다. 다만 나는, 개인과 가족까지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지내야 했던 그 원인이 절대 개인적인 것이 아니었음을 분명히 하겠다는 의지를 전했다. 산재 승인이 되었음에도, 양쪽의 말이 너무 달라 아직도 믿을 수 없어하는 그룹장에게 먼저 공증했던 증거 자료들을 정리해 공유해 주었다. 그렇게, 상대 당사자와 회사가 주장하는 바가 내가 겪은 사실과 전혀 달라서 얼마나 억울하고 불편한지, 그러므로 사건에 대한 조사와 책임을 묻는 부분 그리고 그에 따른 조치를 공식적으로 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과 결정을 주치의 선생님께도 전했다. 이만큼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그러자 선생님은 나를 격려하신다.



“제가 비슷한 일들을 겪으시고, 상황에 있으신 분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그런데 정말 J님 같은 마음으로 새로운 상황을 마주하시는 분들 많이 없습니다. 정말 빨리 회복하신 거고 또 대단한 거예요. 그렇게 다시 돌아갈 용기를 가지는 것 자체가.”


그런데 나의 마음은 말한다.


“다른 더 나은 선택이 없어, 그곳에 돌아갈 수밖에 없으니까요. 삶은 계속되고 먹고살아야 하니까요.

저는 그냥 혼자가 아니라 오롯이 책임져야 할 아이의 삶까지 있으니까요.”



이보다 더 당연한 이유가 있을까 싶다.







삶은 계속 되니까 


내가 병가 휴직했던 기간 동안 공교롭게 회사는 이전을 했고, 나는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새로운 오피스로 출근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이 족히 십여 명은 더 될 오랜 동료들이 이미 회사를 떠났고, 그 자리를 아웃소싱 업체 사람들이 채웠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니 내일, 1년 만의 출근을 앞둔 18년 차 직원인 나는 난데없는 신입사원의 심정을 갖기에 충분한 상황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음을 단단히 하고 내일을 맞이할 것이다. 가서 내가 마주해야 할 것들을 마주하고 하나씩 헤쳐나갈 것이다.


삶은 계속되니까.

그리고 이 계속되는 삶이,

앞으로는 더 예쁜 꽃길이기를 바라본다.


때때로 가시밭길을 통과해야 하는 당신의 삶도,

앞으로는 그저 아름다운 꽃길이길.



“모두들 꽃길만 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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