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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Dec 03. 2022

낮에는 대학원생인 내가 밤에는 락스타?

슬기로운 대학원 생활

목요일 6시 반에 의문의 사람들이 연구실에서 걸어 나온다.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살핀 뒤 누가 볼 새라 재빨리 건물 밖으로 나갔다. 네 사람 중 두 사람은 커다란 악기 케이스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곧장 어느 골목의 건물 지하 1층으로 내려갔다. 어둡고 가파른 계단을 통해 내려간 그곳은 지하 연습실이었다. 스탠딩 마이크와 세트 드럼, 키보드가 있는 곳. 베이스와 기타를 든 이들은 케이스에서 악기를 꺼내었다. 앰프에 악기를 연결하고 마이크 커버를 씌웠다.

뒤이어 무질서한(!) 악기 소리와 음을 이탈한(!!) 보컬이 방음벽을 뚫고 나왔다.


그렇다. 이들은 낮에는 대학원생, 밤에는 밴드 연습을 하는 이중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시작은 내가 드럼을 배우면서부터였다. 학창 시절부터 밴드 음악에 푹 빠져있던 나는 일찌감치 버킷리스트 제일 앞에 밴드 공연하기를 적어둔 상태였다. 그중 내게는 드럼이 제일 멋있어 보였다. 하지만 정말로 드럼을 배우고 말겠다고 주변에 알리면서도 진짜로 배우기까지는 2년이나 걸렸다. 게으른 내 성정이 또 여기서 발휘된 것이었다. 우습게도 학부생 때는 바쁘다는 핑계로 벼르기만 하다가 제일 바쁜 대학원생이 되어서야 비로소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드럼은 처음 배울 때 정말 지루하다는 말을 주변에서 많이 들었다. 나는 지레 겁을 먹었다. 보기엔 참 멋있어서 시작했는데 드럼이 나와 안 맞으면 어떡하지, 하고. 심지어 나는 스스로를 박치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근심이 더 컸다. 레슨비는 또 보통 비싼가? 이러다 본전도 못 뽑는 거 아냐?

그러나 막상 레슨을 시작하니 다들 지루하다고 하는 기본기 연습조차도 내게는 너무 재미있었다.


    - 선생님, 저는 항상 제가 박치라고 생각했어요.

    - 그건 ㅇㅇ씨가 진짜 박치를 본 적이 없어서 그래요.

    - 그런가요?

    - 네. 정말 어려워하시는 분들은 방금 연습한 부분을 완성하는 데에 한 달도 더 걸리는데, ㅇㅇ씨는 한 번만에 성공하셨잖아요.


나는 박치가 아니었다. 리듬악기를 배우고 나서 알게 된 또 다른 사실이다.






연구실에는 대학생 때 밴드를 했던 사람들이 많았다. 모아보니 각 세션별로 다 있었다. 우리는 술자리에서 모이기만 하면 밴드 결성하자고 했다. 밴드명도 지었고 단톡도 만들었지만 다들 바빠서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시간만 지나가던 도중 이 모든 일을 농담으로만 치부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우리 중 한 명이 그만 악기에 돈을 써버린 것이었다. 사람을 부추겨 돈을 쓰게 하고 발을 뺄 수는 없었다.


우리 밴드는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시작했다.



밴드 연습 지침은 다음과 같았다.

- 3주에 한 번 전체 합주 (학교 주변 연습실 대관)

- 그동안 새로운 곡을 하나 정해서 각자 연습

- 보컬은 구해지지 않았으니까 노는 세션이 노래를 부르기






남들은 처음 드럼을 연주하면 합주 때 점점 빨라져서 문제라더니 나는 느려져서 문제였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기가 막힌 곡 선정으로 쉬운 곡들 위주로 연습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에 연습할 곡은 그렇지 않았다. 그 덕에 매일 근심 걱정을 달고 곡을 듣고 있다. 본업 (대학원)이 바빠서 연습을 제대로 할 시간까지는 나지 않았기 때문에 곡에라도 익숙해져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대학원에 오면 다들 어떻게라도 자신만의 <삶의 낙>을 찾아 떠나기 마련이라는데 나에겐 그중 하나가 악기였던 것 같다. 올해 참 잘한 것 중 하나를 꼽자면 드럼을 배우고 밴드를 시작한 것이 들어갈 테다. 악기를 할 때만큼은 나는 업무 스트레스도 잊고 오로지 연주에만 집중하게 된다. 그 순간이 참 좋다.


스트레스도 풀린다. 뭔가 일이 잘 안 풀린 날에는 화풀이하듯 드럼을 치곤 하는데(드럼을 팬다고 표현한다), 그러다 보니 내 옆에서 악기 하는 사람은 내가 너무 드럼을 요란하게 치는 데에 지쳐 귀마개를 들고 와야겠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참 웃었다.






이리하여 나는 본업은 대학원생, 취미로는 아마추어 밴드에서 드러머를 하고 있다.

내 몇 안 되는 숨 쉴 구멍 중 하나가 되어준 드럼에게, 밴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다.


대학원생이 아무리 일에 치인다고 해도 나는 일도 취미도 열심히 하는 어른이 되고 싶다.


졸업하기 전에 공연을 올리는 것이 내 새로운 버킷리스트에 추가되었다.

그리고는 다 함께 우리의 성공적인 대학원 생활에 축배를 들게 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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