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 집 제일가는 먹고잽이로 때려죽여도 밥은 제대로 먹어야 하는 부류에 속한다. 형제자매가 많은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남들보다 먹는 행위를 사랑한다는 것, 꽤 식탐이 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고향집에 내려가면 부모님이 (특히 아빠가) 뭐라도 더 먹여 보내려고 한다. 내 행복의 원천이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데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시기 때문이다.
- 먹고잽이는 이런 거 좋아하지? 아빠가 딱 알아
이러고 치킨을 딱 쥐어주곤 하는데 보통 그게 내가 원하는 게 맞았기 때문에 자존심 상해하지도 않았다. 설령 원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일단 시켜놓으면 나는 금세 그것을 원하게 된다. 이상하게 아빠는 내가 뭘 먹고 싶은지 귀신같이 눈치채시곤 하셨다.
학부생 시절 나는 언제나 먹을 계획이 있는 사람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계시를 받은 사람처럼 음식 이름을 외치며 일어나는 그런 부류였다.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자마자 마라탕이 너무너무 당긴다고 치자. 그러면 나는 그날 점심이나 저녁 둘 중 하나는 무조건 마라탕을 먹어야만 한다. 만일 내가 단골로 가는 마라탕집이 문을 닫아서 내가 마라탕을 먹지 못하게 되었거나, 마라탕을 시켰음에도 내가 원하는 맛이 아닐 때 나는 스트레스가 머리끝까지 솟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그러면 나는 곧장 디저트 가게로 달려가 이 안정적이지 못한 마음을 당으로 살살 달래줘야 한다.
대학원생인 지금은 계시를 더 적은 빈도로 받는다. 딱 하나의 메뉴가 당기는 일이 적어졌다.
하지만 원체 이런 성향이다 보니 내가 연구실을 다니면서 제일 화가 났을 때 또한 내 의지가 아닌 일 때문에 내가 원하는 메뉴를 제 때 먹지 못했을 때였다. 미팅이 길어질 때, 일정이 갑자기 변경될 때, 실험이 갑자기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 나는 일단 입을 다문다. 날카로운 말이 입 밖으로 나올까 싶어서.
일이 너무 바빠졌을 때 하나둘씩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버려야 한다지만 밥은 내게 가장 마지막에 포기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였다.
나는 세상에 생각보다 밥을 소홀이 먹는 사람들이 많다는 데 매번 놀라곤 한다. 나에게 밥시간은 <하루에 두 번밖에 없는 힐링 타임>인데. 연구실 한 동료는 자기는 어떤 메뉴라도 상관없이 밥 먹는 게 귀찮다고 한다.
대학원 생활을 우리가 왜 하는가?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사실 이거 다 밥 벌어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란 걸 알아야 한다. 밥 먹자고 하는 일인데 일 때문에 밥 먹는 걸 소홀히 한다는 건 앞뒤가 바뀐 말이다.
끼니를 잘 챙겨 먹는 건 자기 관리의 가장 밑거름이 되는 일이다. 일용할 양식을 스스로 챙기고 거기에서부터 기쁨을 느끼면 나는 고난에도 쉽사리 불행해지지 않는 사람이 된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나는 밥 먹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다. 힘든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도 절대절대 잘 먹는 걸 소홀히 하지 않을 것이다.
글 쓰면서 다시 마라탕이 당기기 시작했다. 일요일 저녁에 연구실에 있는 나는 맛있는 저녁을 먹을 자격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저녁은 버섯 듬뿍 넣은 마라탕을 먹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