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웨지감자 Apr 10. 2023

사람을 적게 만나게 되었다

동굴로 걸어가는 대학원생

사람을 적게 만나기 시작했다. 나는 힘들면 지칠 때까지 사람을 만나는 습성이 있다. 나의 힘든 일을 이 세상에 널리 알리려는 것처럼 떠들고 또 떠든다. 그러나 정말로, 진정으로 힘에 부치면 어딘가로 숨어버리곤 한다.


MBTI 검사를 한다고 하면 백이면 백 I가 나오는 나는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사람들 틈에서 어울리며 웃고 떠드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자 굉장히 이질감이 들었다.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할 게 아닌 것 같았다. 드디어 사람에게 쓰는 에너지가 바닥나버린 것이다.






어디선가 본 글에 연구자는 일할 시간이 부족하면 사람을 덜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 세상에서 제일가는 인싸라도 된 양 친구들을 한 명씩 바깥으로 끄집어냈다. 그 시절 나의 취미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너무 신기했다.


사람을 만나면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았다. 친구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으면 늘 어떤 식으로든 감탄하게 되었다.

나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대학원생들, 그리고 시험이나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에게는 연민과... 그리고 "다들 이렇게 힘든 시기를 거쳐가는구나"하는 묘한 안도감도 느꼈던 것 같다.

일을 시작한 친구들을 만나면 너무 다른 세상의 얘기를 들어 재미있었다. 또한 내가 하는 일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주는 역할도 했던 것 같았다.


아무튼 나는 시간을 쪼개어 사람을 부지런히 만났다. 조용한 것 같으면서도 은근히 제일 사람 잘 만나고 다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이다.






2023년이 되면서 나는 마음의 여유가 부족해졌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단 한 단어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졸업 준비. 각오했던 일이지만 생각한 것 이상으로 그것은 커다란 파도처럼 나를 덮쳤다. 바닷속으로 깊게 가라앉아 숨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매일매일 휩쓸리고 있었다.


나는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의도적으로 사람들과 거리를 두었다.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기분이 천국과 지옥을 오락가락하는 힘든 시기의 나는 자주 그런 편이었고, 몇 번의 반성 끝에 이제는 때가 되면 스스로 동굴로 들어가는 길을 선택했다.






한창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친구에게는 직접 연락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전했다. 마음껏 이야기를 들어주고 같이 투덜거리고 욕하고 싶었지만. 나는 당장 내가 힘든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털어놓는 상상을 해도 힘이 쭉 빠져버리는 상태이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 다시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마땅히 견뎌야 할 일을 견디고 다시 함께하고 싶다. 그러려면 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마음을 다잡자.

매거진의 이전글 대학원에 오면 머리만 쓸 줄 알았더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