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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웨지감자 May 09. 2023

조건 없는 후원자들

부모님께 바치는 이야기

이번 어버이날에는 여느 때와 같이 동생들과 함께 돈을 모아서 부모님께 선물을 사드렸다. 엄마는 딸이 어버이날인데 얼굴을 비치지도 않는다면서 서운한 기색을 내비치셨다. 어쩜 집에 가도 방에 누워만 있을 딸이 그렇게도 보고 싶을지 마음이 찡해졌다. 다가오는 연휴에 꼭 집으로 가겠다고 엄마와 약속했다.


대학원생이 되어 맞이하는 어버이날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아직 나잇값, 혹은 어른으로써 1인분을 다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내가 어느새 20대 후반이다. 어정쩡한 신분인 대학원생으로써 가방끈을 늘이는 게 가능한 까닭은 부모님께서 나를 물질적, 정신적으로 아낌없이 후원해 주시기 때문이다.


가끔 생각한다. 우리 엄마 아빠는 어떻게 이렇게 아낌없이 지원해 줄 수 있었는지.

후원이란 무릇 어떤 가능성이 보이는 사람에게 하기 마련인데 부모님은 나에게서 어떤 가능성이 보았을까? 보이긴 했을까. 그저 나의 꿈을 믿어 주었을까.






지난 몇 달 동안은 정말 힘들었다. 세상이 나를 억까하는 것 같았다. 우울하고 우중충한 이야기만 쓸까 봐 글도 쓰지 않았다. 사실은 취미에 노력을 들일 마음의 여유가 전혀 없었다.

나는 나를 즐겁게 하는 모든 것에 흥미를 잃고, 내가 사랑하는 취미를 뒤로 했고, 운동도 하지 않았으며, 오직 나를 상처 주지 않을 사람만 조심스레 만났다. 밤에는 잠이 오지 않았고 뒤척이며 핸드폰만 바라보다가 쓰러져서 잤다. 푹 쉬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스스로에게 벌을 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했다.


부모님께 연락드리는 빈도도 뜸해졌다. 일단 나는 내가 힘들어한다는 걸 부모님께 들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나 딸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엄마 아빠는 결국 나를 둘러싼 상황이 힘들다는 것, 그래서 내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는 걸 알아내셨다.






부모님은 내가 이 길을 걷기를 얼마나 바라왔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계셨다. 학문에 대한 사랑은 중학생 때 이후로 흔들린 적이 없었고, 그 첫걸음을 내가 이제 막 떼기 시작했다는 것도.


특히 아빠는 자식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일에는 최고가 되기를 바라는 분이었다. 그래서 당근보다는 채찍을 자주 드셨고, 나를 푸시하는 응원의 말씀을 주시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힘들다고 말했을 때 조금만 더 버티라고 할 줄 알았다.


- 너무 힘들면 학위과정을 그만해도 된다. 일단 사람이 살고 봐야지.


아빠가 이 말을 하셨을 때 나는 이전부터 맺혀 있던 눈물을 줄줄 흘리고 말았다. 내가 콧물을 훌쩍이면서 아빠가 그렇게 말할 줄 몰랐다고 말하자 아빠는 너무 아등바등 애쓰지 말라고 했다. 어쨌거나 첫째 딸 건강이 우선이라는 엄마 아빠의 말에 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펑펑 울었다.


힘들면 포기하고 부모님 품으로 도망쳐와도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놓이고 위안이 되었다.

도망칠 수 있는 보금자리가 있다는 사실은 내게 큰 힘이 되었고, 역설적이게도 도망치는 대신 다시 학문에 정진할 수 있을 용기를 주었다.






혈연이란 무엇일까. 유전자 단위부터 각인된 이 사랑과 지지는 또 무엇인가. 이게 대체 뭐길래 이 사랑을 잃는 상상만 해도 눈물이 핑 돌고 마음이 저린 것일까.


나를 이유 없이 사랑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은 얼마나 축복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4월의 짧은 방황을 끝으로 마음을 다잡고 다시 연구에 열정의 불씨를 틔우게 되었다.

언제든지 이 선택을 버리고 도망쳐도 보듬어줄 곳이 있다는 믿음이 있기에 나는 힘들어도 계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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