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독서

[냉정과 열정사이]- 츠지 히토나리

by 조윤효

읽어 버렸다. 남녀의 사랑을 여자의 관점으로 쓴 소설 Rosso 편을 읽은 지 거의 두 달이 되었다. 남자의 관점에서 쓴 Blue를 곧 읽어야지 하면서 그 사이 다른 책들을 만나고 잠깐 아껴두었던 이야기였는데 결국 읽어 버렸다. 종합 과자 세트를 선물 받았던 어린 시절 맛있는 과자를 아껴두고 먹을 날을 미루며 행복한 고민을 하듯이 '냉정과 열정사이'소설 Blue를 내 안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남녀의 사랑을 다룬 소설 중 가장 기발한 발상이다. 두 남녀 간의 사랑 속에서 여자의 내면을 여자 소설가인 에쿠니 가오리가 써내려 가고 남자는 남자 소설가인 츠지 히토나리가 풀어낸 것이다. 각각의 소설이 마치 쪼개진 두 개의 조각이 다시 한 개의 조각으로 만나 완성품을 이룬 것 같다.



여주인공의 아오이의 사랑은 은은하게 퍼지는 호숫가의 잔잔한 물결 같다면 남자 주인공 쥰세이의 사랑은 바닷가의 파도처럼 출렁거리는 느낌이다. 그의 8년의 생활은 아오이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채워진 느낌이다. 명화를 복원하는 자신의 일을 '과거를 미래에 연결해 주는 작업'이라 칭한다. 자신의 손으로 복원된 명화를 수천 년이 지나 미래의 누군가가 감상할 수 있다는 그 만의 소명이 그의 업의 기둥이 되어 준다.



아오이와의 짧은 과거 사랑을 현재의 삶 속에서 매일매일 갈고 닳고 복원하듯이 그의 사랑은 지독하리 만큼 짙고 강하다. 두 연인의 만남에서 8년이라는 깊은 세월의 계곡을 어떻게 건너야 할지 막막해하는 이들의 사랑이 다시 피어오를 것 같은 기대감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쥰세이의 사랑 방식은 조지훈의 '사모'라는 시를 떠올리게 한다. 대학 때 좋아했던 유일하게 외울 수 있는 단 하나의 시이다. 졸업 후 면접을 볼 때 외울 수 있는 시를 요청한 면접관에게 들려준 시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다. 회사에서는 떨어졌지만, 50이 넘어 보이는 그 중년의 중역이 내게 그 시를 써달라고 해서 써준 기억이 있다. 그때 주체할 수 없이 젊은 나는 오만했고, 나이 든 남자도 사랑에 대한 관심이 있구나 라는 어설픈 판단을 했었다. 이제는 안다. 살아 있는 한 사랑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랑을 다해 사랑하였노라고


정작 할 말이 남아 있음을 알았을 때


당신은 이미 남의 사람이 되어 있었다.



불러야 할 뜨거운 노래를 가슴으로 죽이며


당신은 멀리로 잃어지고 있었다.



하마 곱스런 웃음이 사라지기 전


두고두고 아름다운 여인으로 잊어 달라지만


남자에게서 여자란 기쁨 아니면 슬픔



다섯 손가락 끝을 잘라 핏물 오선을 그려


혼자라도 외롭지 않을 밤에 울어보리라


울어서 멍든 눈흘김으로


미워서 미워지도록 사랑하리라



한 잔은 떠나버린 너를 위하여


또 한잔은 너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그리고 또 한 잔은 이미 초라해진 나를 위하여


마지막 한 잔은 미리 알고 정하신 하나님을 위하여"



미친 듯이 사랑해본 사람 만이 삶을 더 깊게 느낄 것 같다. 때로는 목숨도 버리고 때로는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릴 만큼, 운명을 걸 만큼 사랑에 올인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자로 젠듯 한치의 손해도 없이 감정의 선을 제는 사랑에서는 사랑도 이미 거래가 되어버린다. 막고 세우고 차단하기보다는 내가 가진 편견의 틀을 내려 버리고 광장처럼 넓게 열어두어야 사랑이 봄날 유채꽃처럼 화사하고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사랑에 빠져 있는 연인들은 숨길 수가 없다고 한다. 두 사람의 마주한 얼굴 가득 꽃이 만개해서 주위 사람 누가 봐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쥰세이와 아오이의 소설 속 사랑이 현실의 고단한 바쁨에 한줄기 바람처럼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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