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장군의 이름을 자신의 닉네임으로 정한 저자의 재치가 좋다. 여자라는 틀에서 벗어나 인간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용기를 주는 이름 같다. 히말라야의 어떤 힘이 그녀를 불러들였을까? 그녀가 찍은 히말라야의 신비스러운 자연환경이 막연하게나마 답을 주는 것 같다. 가만히 들여다보게 만드는 그 매력적인 자연의 외침이 어떤 수식구나 미사여구 없이도 자연이 작품이 되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은 아닐까.
일 년의 절반을 눈의 거처라는 뜻의 히말라야에서 보내고 싶어 하는 저자의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간다. 그 전의 여행은 파키스탄, 네팔에서 시작한 히말라야 등반여행이라면, 이번 여행은 북인도에서 시작되는 여행이다. 인도가 히말라야라는 산맥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고, 특히 북인도는 흔히 생각하는 인도와 다르게 티베트 불교문화가 강한 곳이라고 한다.
살벌한 냉탕 같았던 라다크에서 시작해 감동의 온탕 같은 시킴에서 히말라야라는 산맥에 그녀의 발자치를 따라가는 여정은 지루할 사이가 없다. 책의 서문을 여는 에피소드가 담긴 사진들과 그녀의 본문에서 나온 글귀들은 시작도 하기 전에 책에 쏙 빠져들게 된다. 책을 읽기 전부터 전체 사진부터 보게 만드는 조급함을 만들어 낼 만큼 사진들은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보라색의 제비꽃깔모의 뒷배경이 되는 황량하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거대한 황톳빛 산은 마치 자연이 인간에게 선사하는 극과 극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진 옆에 저자의 글이 그래서 더욱 각인된다. ‘나의 의지를 믿었다. 내가 아닌 남을 흉내 내지는 말라. 부족해도 나여야 하고, 넘쳐도 나여야 한다. 오늘도 내일도 나여야 함을 잊지 말자!’
히말라야 트레킹을 위해 7명의 등반자와 함께 하는 가이드, 요리사, 짐꾼과 열 마리가 남는 당나귀나 말이 인상 깊다. 거칠 것 같은 그 대자연을 만나러 가는 길이 결코 외롭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라다크에서 함께 여행하는 동안 저자가 겪는 소외감은 의외의 기분을 들게 만든다. 여행은 사람이 많다고 즐거운 건 아닌 것 같다. 거친 자연을 상대로 걸어가는 길에 서로가 위로가 되어 힘찬 걸음으로 나아가게 할 수도 있지만 오해로 인한 서로의 갈등을 무시하는 환경으로 자연을 이용하기도 한다. 결국, 4명의 등반자들이 중도 하산하고 ‘포기하는 자들과 남는 자들’로 책의 작은 서문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17년 직장경험보다 세계의 가장 높은 척박한 히말라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관계가 더 어려웠다는 고백을 통해 ‘안전한 울타리에서 지내다 세상의 민낯을 보는 일’ 또한 인생 여행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 같다.
잔다르크의 붉은 가을 사진도 인상 깊다. 땅에 바짝 기대에 자산만의 존재를 드러내는 꽃들과 그 너머로 아무것도 있을 것 같지 않은 맨 몸뚱이의 산이 함께 어우러져 자연을 만들어 낸다. 여행 중 만나는 이미 폐허가 된 마을과 드문 드문 이야기 소재가 된 유목민의 이야기도 세상 어느 곳에든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내가 누리는 달콤한 문명의 혜택은 당연하면서도 그들은 전통을 고수하기 바란다. 여행자의 욕심이자 오만이다.’ 마을의 빈터를 보면서 잠깐 들었던 그 오만한 욕심을 바로 사라지게 만든다.
텅 비어 있는 듯하면서도 꽉 찬 창탕 고원의 사진은 ‘자연은 어떤 모습이든 완벽하고 조화 로웠다’라는 저자의 의견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라다크의 겨울은 8개월 동안 지속이 되고 영하 40도 이하를 견뎌 내기 위해 볶은 보리 가루와 직접 만든 유제품 등을 먹으며 그 기간을 보낸다는 사람들의 삶은 왠지 모르게 감탄스럽다. 자연으로부터 겸손을 배우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의 가치를 더욱 값지게 사용할 수밖에 없게 만들 것 같다.
갑자기 나타난 두 마리의 개, 까망이와 갈색이의 사진과 함께 완벽한 보호색을 가지고 있는 눈표범의 사진은 자연은 모든 생명체가 함께 존재해야 하는 공간임을 보여 준다. 혼자만 누리고 가지고자 이 척박한 땅까지 인간이 욕심내서는 안 될 것 같다. 가을까지 접어든 그녀의 여행이 설산 행렬로 이어지는 모습이 경이롭다. ‘여행은 딱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만 행복하다. 여행의 시작부터 끝까지 모두 자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는 오롯이 자신의 몫이다. 불편한 감정 까지도.’ 그녀가 생각하는 여행의 정의가 인생이라는 정의와 묘하게 닮아 있다. 인생도 딱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만 행복하고 그 여정은 선택의 연속이고,결과 또한 오로시 살아간 자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함께한 두 여행자를 보내고 시킴에서 시작하는 등반 여행을 위해 두 명의 새로운 사람들이 그녀와 함께 한다. 조용한 그들은 그녀와 잘 맞는 여행자 같다. 사람 사이의 대화로 자연과 나누는 교감의 대화가 방해받지 않았기에 저자의 생각과 사진이 느긋함까지 담아낼 수 있었던 건 아닐까. 여행이 끝나고 떠나면서 그녀에게 남겨준 음식과 용돈은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준다. 그리고 그녀의 혼자 만의 여행은 계속된다. 스태프들과 한 명의 여행자는 왠지 사치처럼 보일 수 있으나 히말라야 등반의 가장 기본적인 시스템 같다. 홀로 여행하기에는 그 큰 산은 너무도 거대하다. 여행도 하기 전에 그곳의 또 하나의 전설이 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에 제도화된 여행 시스템이다.
‘네팔에서는 내노라는 설산을 보았고, 파키스탄에서는 첨봉과 거대 빙하, 초원과 야생화를 만났다. 라다크에서는 척박하고 황량한 히말라야를 원 없이 걸었다. 그리고 여기 시킴에서는 모든 게 왕성하게 살아 있어 곳곳에서 생기가 넘쳤다.’ 저자의 눈으로 본 히말라야 여행은 사람을 겸손하게 만든다. 자연 앞에 그 누구도 잘난 척할 수 없다. 수만 년을 지구의 꼭대기에서 인간을 내려다보는 산은 잠깐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인간삶의 덧없음을 분명 알고 있을 것이다. 어쩌다 인간들이 자신을 방문하면 그 대자연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조용하게 알려주고 있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산에 다닌 사람들은 함부로 산을 정복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누구든 산의 허락이 떨어져야만 산에 오를 수 있다. 히마라야 트레킹도 마찬 가지다. 하늘이 돕지 않으면 가던 길을 되돌아와야 한다. 그러니 산 앞에서는 항상 겸손해야 한다.’ 저자에게 허락된 히말라야의 너그러움이 부럽다.
혼자 히말라야 여행을 하면서 그곳의 전통 술인 따뜻한 술 ‘똥바’ 한잔은 육체적 피로를 한 번에 날려 보내는 마법의 음료 같다. 육솜에서 많이 본다는 경전이 적힌 한 폭의 긴 깃발 룽따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다. 룽따는 티베트어로 ‘바람의 말’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펄럭이는 깃발 소리를 바람이 경전을 읽는 것으로 여긴다. 진리가 바람을 타고, 세상 곳곳으로 퍼져나가, 모든 중생이 해탈에 이르길 바라는 염원이 담겨 있다.’
자연의 힘이 가장 강한 곳, 히말라야. 그리고 그곳이 허락한 여행자 거칠부. 자연 앞에서 작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곳, 히말라야. 감히 그곳에 여행할 용기는 없지만, 저자의 책과 사진들을 통해 여행자의 성숙함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