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착각]- 알렌 랭어
‘어떻게 건강하고 지혜롭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가슴에 품게 된 순간 관련된 책들과 인연이 맺어진다. 답은 틀릴 수 있으나 질문은 틀리지 않는다는 말에 매일 하나의 질문을 만들어 본다. 여전히 나는 나로서 살아 가는데 어느 순간 나이가 들어가는 몸짓이나 표정을 휴대폰 동영상을 볼 때 조금 놀란다. 거리에서 만나는 어르신들의 모습은 항상 그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착각을 한다. 그들 또한 찬란했던 여름이 있었을 것이다.
저자의 책은 노화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와 가치에 영향을 준다. 노화를 퇴화가 아닌 변화로 인식할 때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삶의 질과 가치가 달라질 것 같다. 나이가 들면 생기는 자연스러운 신체적 특징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돕는다. 정신과 육체를 다시 결합해서 우리가 어디에 마음을 두든 몸도 따라갈 수 있어야 함을 알려 준다. 마음이 진정 건강한 곳에 있다면 반드시 몸도 따라갈 것이므로 마음을 변화시키면 몸도 건강해질 수 있다고 조언하는 가능성의 심리학을 이야기한다. 건강한 삶에 대한 통제력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노화를 긍정적으로 보는 눈이 필요하다. ‘과학은 어떤 대상이 통제 불가능하다는 사실까지 밝혀 내지 못했다.’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만의 관점울 유지하면서 의학계를 이용하라는 그녀의 현명한 조언을 만났다.
‘시계 거꾸로 돌리기 연구’에 대한 그녀의 실험은 다른 책에서도 많이 인용된 사례다. 75세에서 80세 노인들을 그들이 젊었던 1959년의 환경에서 2주간 생활하게 했다. 티브이를 당시에 진행되었던 프로그램으로 시청하게 했고 수녀원 요양원의 가구들도 그 시대로 분위기로 꾸몄다. 뿐만 아니라 접시 닦는 것이나 자신의 물건을 나르는 사소한 것들을 홀로 실행하게 했으며, 미리 그들에게 그 시대에 사용했던 언어를 사용하도록 했다. 2주의 노인들의 얼굴에 활기가 돋고, 휠체어를 탔던 사람은 걸어서 나왔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기다리던 그 짧은 시간에 공을 던지고 주고받는 활동성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입소 전과 후의 사진을 비교해 본 타인들은 입소 후의 사진이 훨씬 젊어 보인다고 평가했다.
신체의 변화를 관찰하고 스스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의식을 집중하는 습관이 필요할 것 같다. 건강을 학습하려면 세상 모든 가르침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큰 사건뿐만 아니라 작은 사건들에도 집중할 수 있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모든 것은 변한다’라는 제목이 주는 그 당위성 부분에서는 조건을 알면 변화를 인식할 수 있고 한계가 곧 운명이 아니라 통제력이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해 줄 것임을 말해 준다. 삶의 통제권을 잃을 때 사람은 급속도로 노화가 진행되는 것 같다. 믿고 싶은 데로 생각하는 사람들의 보편성을 노년에 대한 긍정적 재해석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알려 준다.
문제가 아닌 차이를 발견하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분류되기 너무 복잡한 인간이지만 고정관념으로 노인을 바라보기보다는 나이에 대한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저자는 질문한다. ‘왜 더 좋아질 거라고 착각하지 않는가?’ 읽다가 스스로에게 자문해 본다. 100년 후 2123년에는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사리지고 없을 것이다. 그 유한된 삶의 기간 동안 나날이 좋아지다가 어느 순간 멋지게 지구별과 이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면 안 되는 이유가 없다. 몸과 마음을 연결해 그 믿음이 몸을 지배하게 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계절의 변화에는 적응하면서도 노화와 관련된 변화에는 대개 적응하지 않는다.’
병의 증상에 이름을 붙이는 현대 의학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증상에 이름을 붙이면 인간에게 공통의 경험을 주지만 전문가와 의학 기술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고 한다. 과거에는 심리적 증상으로 취급되었던 몸의 변화를 현대는 진짜 증상으로 만들어 냈고, 우리 몸의 다른 부분에서 전달되는 건강 신호는 무시하게 만든 오류를 범한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여러 구획으로 나누고 우리 몸의 다른 부분에서 전달되는 건강 신호에 집중하는 게 ‘의학적 수치는 지배당할 때보다 안내 지침으로 삼을
때 좀 더 이득이 될 것이다’라는 저자의 말을 공감하게 될 것이다.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이 자신의 정체성과 질병 간의 관계를 생각하는 방식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내 몸의 변화를 내가 알아야 한다. 말이 세상을 지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표현도 기억에 남는다. ‘질병과 싸운다’라고 하기보다는 ‘우리 몸 상태에 통달한다’라는 은유법으로 말할 때 질병에 대응하기 훨씬 나을 수 있다. 코로나는 감기의 한 종류인데 그 이름을 구체화시킴으로써 우리의 평온함을 깼던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한다. 코로나가 아닌 감기로 이름을 지었을 때 지난 2년처럼 요란하게 세상을 흔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언어는 통제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늘이거나 줄이는 흥미로운 성질이 있어 똑같은 상황이라도 다른 단어로 표현하면 매우 다른 방식으로 생각을 유도할 수 있다.’ 현대 의사들은 심적인 힘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한다. ‘완화’라고 이야기하기보다는 ‘완치’라고 이야기하는 경우와 ‘회복 중’이라는 말보다 ‘회복했다’는 말을 해야 한다. 우리는 언어를 직접 선택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할 것 같다. 같은 약이지만 ‘비타민’이라 불릴 때 건강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인식되고, 약이라는 이름으로 불리 울 때 ‘병들어 있다’라는 의미까지를 담기 때문에 이름표가 삶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를 상황에 좀 더 맞추면 건강에 대한 통제력이 더 커진다고 믿는다.’
의사들이 이야기하는 숫자는 단지 도구일 뿐이라는 말도 공감이 된다. 생존율, 치사율 등을 이야기하는 현대 의학에 휩쓸릴 필요가 없음을 이야기한다. 시력 테스트에 대한 결과도 흥미롭다. 대게 시력테스트는 큰 글자가 위에 있고 작은 글쓰가 아래에 있다. 이는 시력이 나빠질 것이라는 무의식 생각의 방식 결과인데, 반대로 시력이 좋아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작은 글쓰기 위에 있고, 큰 글씨가 아래 있을 때 위에서 부터 읽어 내려갔을 때 동일한 사람임에도 더 좋은 시력 결과가 나온다고 한다. 기대감이 이렇듯 독특한 방식으로 시력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보여 준다. 사고방식의 변화가 만들어낸 신체 건강을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육체적인 한계가 상당수 학습된 결과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제한된 시간에 100번의 팔 굽혀 펴기를 하는 그룹과 200번을 요청받은 두 그룹은 3분의 2 지점에서 피로감을 느껴 멈추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결과로 보면 앞 그룹은 65~70개를 했고, 뒷 그룹은 130~140개를 했다고 한다. ‘우리가 시작, 중간, 끝의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주어진 과제에 체계를 부과하듯 과제의 끝에 가까워질수록 피곤함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학습된 육체적 한계를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고방식의 변화가 만들어낸 신체 건강의 한 예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의사나 간호사들이 입은 유니폼은 일반옷에 비해 나이 관련 단서에 노출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나이에서 오는 만성 질환 같은 것이 적고 더 건강하다고 한다. 유니폼이 의사를 하나의 인간으로 보지 않고 권위자 집단의 인물로 보게 만드는 부분에 있어서 환자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부작용이 있지만, 옷 착용자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본인의 가치와 성격, 감성적 인지적 기질 파악은 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 필수 요소라고 한다. 의학적인 기준에 자신을 맞추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관찰하고 자신의 언어로 규정할 때 보다 건강한 삶의 주도권을 완전하게 갖게 될 것 같다.
죽음이 아닌 삶을 바라보면서 의식을 집중해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의식의 집중은 피곤한 일이 아니라 오히려 기분을 들뜨게 만든다. 이는 우리가 완전히 몰입했을 때 느끼는 방식이다.’ 의식을 집중하며 건강을 지키는 것은 질병이 심각해지기 이전에 예방하고 치료하는 과정에서 가장 의미가 있다는 말도 공감이 된다. ‘인생의 목표는 더 젊고 혈기 왕성했을 때의 기분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숨 쉬는 마지막날까지 의식을 집중한 상태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어야 한다.’ 인생의 매 순간을 완전히 의식하는 삶에 대해 미처 생각을 못했었다. 저자의 조언데로 그것은 분명 추구할 가치가 있으면서 실제로 이룰 수 있는 목표라는 것을 알 것 같다. ‘통제력을 되찾고 의식을 집중해서 우리의 몸과 우리를 둘러싼 환경,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알아차리고, 우리가 아끼는 사람들도 그처럼 똑같이 행동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때다.
지혜롭게 나이 드는 법도 배워야 한다. 노화는 퇴화가 아닌 변화다. 발달이라는 용어는 인간의 인생 초기 전반 20년 동안 사용하지만 인생 전반에 걸친 변화에 적용될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의문을 제기할 때 변화는 시작된다고 한다. 노인의 육체적 쇠락을 받아들이면, 타인의 부정적 예상이 우리에게 자기 충족적 예언이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노인에 대한 무의시적 편견을 우리 스스로 벗어나야 한다. 노인이라는 말 대신 인생선배라는 말로 바꾼 다면 어떨지 잠시 생각해 본다. 변화가 열등감이 아니라 차이임을 알아야 한다. 세상 주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아직 가지 않은 길을 누군가는 걸어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노년에는 양식 대신 지혜를 먹고 산다는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긴 다면 늙어서 궁핍하지 않도록 젊은 시절에 열심히 지혜를 쌓아둘 것이다’라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말이 이 책과 참 잘 어울리는 말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