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나르 베르베르 인생소설]- 다니엘 이치비아
‘개미’ 라면 떠오르는 작가가 베르나르다. 수년 전 그의 책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간혹 인터뷰에서 스치듯 봐왔던 그의 인상은 수련 중인 온화한 스님을 연상시킨다. 환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삶의 다른 영역을 조심스럽게 드러낼 수 있는 손끝을 가진 사람이다.
베르나르의 인생 소설을 들려주는 다니엘 이치비아의 솔직한 고백이 살짝 당홍스럽다가 이내 객관성 유지라는 믿음을 준다. 다니엘 이치비아는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그의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베르나르라는 사람은 좋아한다고. 맹목적 사랑이 눈을 가리듯 소설책과 그 작가까지 지나치게 주관적일 수 있다. 책에서 느껴지는 저자와 대상의 적당한 거리가 독자에게 매력으로 느껴진다.
모든 사람의 삶은 한 권의 소설이다. 그의 책은 이미 기억 속에서 거의 사라진 ‘개미’가 전부지만 그의 삶을 한 권의 소설처럼 만나고 싶어 일독했다. 유년기의 삶을 조용하게 듣다 보니 소설보다 더 독특하다. 가볍게 들어갔다가 쏙 빠져드는 느낌이 든다. 오히려 성공 이후의 삶은 너무 많이 먹어 질린 음식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그의 유년기의 삶은 신선하다. ‘개미’를 통해 인간의 부조리를 조용하게 이야기하고자 한 그의 책 쓰기 여정은 그만의 색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개미’, ‘개미의 날’, ‘개미 혁명’, ‘신’, ‘제3 인류’, ‘판도라의 상자’, ‘아버지들의 아버지’ 등등 그의 시선이 주로 머문 곳이 어딘지 알 것 같다.
신과 가장 가까이에서 인간의 삶의 보편적 메시지를 전하고자 하는 작가라는 말이 그에 딱 맞는 표현 같다.
아주 어린 시절까지 또렷하게 기억해 내는 능력은 분명 작가에게는 힘이 된다. 기억할 수 있는 양이 많을수록 꺼내 쓸 수 있는 재료가 많다는 것이니. 그 재료들을 하나씩 꺼내 요리조리 맞춰보는 일이 글 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엄마 배속에서 어렴풋이 놀던 때와 아기 주머니에 쌓여 오히려 부모를 관찰하고,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누나처럼 뭔가를 해내기 위해 걷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그림을 그려보고자 한 꼬마 베르나르. 유치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섞여 활동하기보다는 한쪽에 조용하게 앉아서 자신만의 세계 속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는 특권을 얻어낸 실력자이다.
여름 캠프를 가기보다 할아버지, 할머니댁에서 지내기를 더 좋아한 베르나르에게 개미와의 인연을 만들어 준 것이 바로 조부모의 정원이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정원에 웅크리고 앉아 개미를 관찰하고 있는 꼬마 베르나르가 쉽게 상상이 된다. 무인도에 가지고 가고 싶은 책으로 ‘신비의 섬’이라는 책은 유년기의 베르나르의 정신적 풍요를 더해 준 것 같다.
어느 날 마치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게 만든 ‘강직성 류머티즘 관절염’에 대한 이야기는 긴장감을 준다. 근친결혼으로 인한 가족 유전적 질병으로 어린 베르나르에게 찾아온 질병은 타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보는 훈련이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그의 질병을 잊는 최고의 도구가 글쓰기였다고 한다. 유전병의 발병이 베르나르에게 글을 쓰는 일상을 선물한 것 같다.
할아버지의 죽음을 보면서 베르나르가 느낀 감정의 성숙도도 놀랍다. 삶의 마지막에서 힘겹게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결정하고자 한 할아버지와 달리 끝까지 그의 생의 단절을 허락하지 못하는 할머니를 보며, 어린 베르나르는 삶의 끝에서 만나는 그 죽음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여름 켐프에서 만난 자크라는 친구를 통해 ‘라자 요가’를 알게 된다. 멀리 한 곳을 응시하고 시선과 생각을 집중해서 자신의 몸에서 살짝 나와 타자의 눈으로 삶을 관찰하는 힘은 분명 독특하다. 그 일로 친구들 사이에서 약간의 따돌림 같은 느낌을 받지만 기타 연주를 좋아했던 그에게 큰 상처는 되지 않았던 것 같다.
‘원하는 것이 없으면 고통도 없다’라고 말하는 어린 시절 자크라는 친구의 그 초월적 표현이 독특하다. 문제가 생긴다면, 그것은 네가 무엇인가를 원해서야 욕망을 갖지 않으면 더 이상 문제도 안 생긴다고 말했던 자크와 어린 베르나르가 둘이서 나란히 앉아 숲을 보는 정경이 상상이 된다.
10대부터 개미를 쓰기 시작했던 베르나르의 관찰력과 침착성은 단한순간도 자신의 시선의 흐트러짐을 허락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다. 어리지만 삶에 집중되어 있다고 해야 할 까. 14살의 어린 베르나르가 자신의 이마에 금속의 차가운 총의 접촉을 만났을 때 두렵기보다는 오히려 차분하게 그 상황을 관찰할 힘이 생긴 이유가 ‘라자 요가’ 덕분이었는지도 모른다. 식당 주인이 자신의 식당을 위협하는 무리 중 한 명으로 오해하고 화장실에서 만난 베르나르에게 총을 겨눈 것이다.
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다. 수학 시험에 실패해서 원하지 않았던 학교로 가지만 그곳에서 신문을 스스로 발간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학년 전체에 남학생이 4명밖에 되지 않았지만 부드러운 그에게는 좋은 여건이 되었던 것 같다. 신문에 기사와 관련된 적합한 향을 담은 종이에 기사를 써보는 독특한 발상도 그답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지만, 그의 성향과 기질에 맞지 않아 그만두지만 그때까지도 글쓰기는 그의 중요한 일상이었다. 신문발간의 계기가 그에게는 신문사 인턴사원 지원의 동기가 되었다. 과학 관련 지식을 좋아해 대중이 좋아하고 쉽게 나열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과 과학 기사는 어렵게 써져야 권위가 있어 보인다는 당시의 대립을 조용하게 보여준다. 여전히, 논문이나 무거운 소재의 주제는 어렵게 써져야 어필이 된다는 생각이 남아 있다.
아프리카에서 개미를 촬영하는 기회를 얻었던 그가 목숨을 걸고 여왕개미를 촬영했던 이야기는 섬뜩하면서도 그 답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개미라는 책을 쓰면서, 그들을 관찰할 필요성이 있어 자신의 욕조에 개미집을 넣어두고 1000마리가 넘는 개미를 키운 그의 노력은 감탄스럽다. 하지만, 출판사로 부터 ‘개미’는 환영받지 못했다. 계속되는 거절 속에서도 끊임없이 수정하는 과정을 게을리하지 않은 베르나르는 인내의 의미를 제대로 알고 있다.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영매와의 만남은 그의 글쓰기 영역에 많은 영향을 미친것 같다. 112번의 전생이 있었고, 그중 11번 만이 중요한 인물로 세상에 존재했으며, 사무라이였던 전생과 자신의 어머니가 전생에는 자신의 딸이었다는 이야기는 읽는 동안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지속된 거절 속에 결국 두 출판사가 어느 날 갑자기 서로 베르나르 책을 출간하기 위한 경쟁을 하기 시작해 결국 자신의 능력을 인정해 준 출판사와 계약을 한다. ‘개미’라는 책이 서서히 대중의 사랑을 받았었고 그중 한국과 러시아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었다. 일본에 그의 책은 저자의 허락 없이 ‘개미’라는 책 사이사이에 랭보의 시 6~7편의 실려 있어다는 말에 헛웃음이 났다. 그래서 일본에서는 그의 책은 존재감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 같다.
결혼 후 인도의 신혼여행 경험담도 독특한 맛이 난다. 책에만 빠져있는 그의 결혼생활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부인과 아들이 원하는 모든 것을 먼저 양보하는 지혜도 멋스럽다. 이혼 소송하느라 각자의 변호사들에게 돈을 쓰는 것보다는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는 것이 더 낫다는 친구의 조언을 바로 실천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기도 하지만, 실험적으로 영화를 만들어 보기도 했고, 개미와 관련된 온라인 속 게임도 함께 개발해 보기도 했으며, 연극 대본도 써보고 실제 연극으로 올려본 일들에 대한 실패와 좌절의 이야기도 그의 삶의 한 부분이다.
‘책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베르나르의 삶의 여정은 독특하지만 일관된 선이 보인다. 쓰는 삶과 영적인 삶에 대한 추구자라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매일 무엇인가를 쓴다면 어느 순간 습관이 되어 쉬워진다는 단순한 삶의 테크닉도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소설만큼 재미있는 그의 인생소설을 통해 베르나르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가 세상에 차례로 내놓은 책들과의 인연을 준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