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갑니다. 세계 속으로]- 김가람
가끔 시골집 티브이에서 만나는 ‘걸어서 세계 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은 시선을 온통 빼앗아 간다. 이국적 느낌과 요란하지 않은 소개가 멋스러운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 프로그램을 디자인한 피디 김가람 씨의 이야기다. 입사 5년 차인 29살부터 세계를 누볐던 그녀가 35살이 돼 못 다루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다. 1300개의 도시를 누비고 다녔을 그녀의 역동감이 고스란히 프로그램에 반영된 것 같다. 3분짜리 15컷을 위해 하루종일 또는 며칠간 필름에 담아낸 그녀의 열정 덕분에 세계에 대한 더욱 진한 호기심을 시청자에게 심어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이들에게 대리 만족을 주었을 것 같다.
촬영을 한다면 거창한 팀이 출발해 무엇인가 동선이 무거울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녀가 소개한 배낭 속 소지품은 단출했다. 한비야 씨가 이야기하듯 진정한 여행 가는 가방이 작다는 말과 상통하는 것을 보니 단연 최고의 여행 가다. 그녀와 몇 대의 카메라 그리고 높이 떠올라 지상을 찍어야 하는 드론이 그녀의 단짝 여행자다. 현지에서 코디네이터와 함께 찍기도 하지만 그녀가 담아내는 1인 화면이 생기를 뛰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다.
한국에서 가장 먼 나라이고 우리나라보다 27배가 큰 아르헨티나에서 시작한 그녀의 여행집은 멋진 사진들을 담고 있다. 하늘과 사막의 경계로 그 아래 초록빛 물을 담아낸 모래는 자꾸 눈이 간다. 섬 주위를 둘러싼 호수가 하늘을 그대로 담아낸 사진은 마치 합성 같은 느낌이 들정도다.
스페인어를 배워 직접 섭외를 하는 적극성은 그녀의 외모에서 보여주는 야무진 인상과 잘 어울린다. 나태함이라던가 소극적이라든가 부끄러움이 없을 것 같은 그녀의 당찬 인상이 세계 여행가답다.
그녀의 라트비아 남편에 대한 이야기도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와 함께한 사랑도 요란하지 않다. 그저 서로 인연이 되어 각자의 모습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느낌이 좋다. 발트해 3국인 라트비아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3국은 1991년에 소비에트 연방에서 독립한 국가들이라고 한다. 독립과정이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이 될 만하다. 600Km 길이로 손에 손을 잡고 자유노래 ‘발트의 길’을 불러 냉전시대 비 폭력 저항의 상징으로 기록될 만하다. 총부리에 뿌려진 꽃과 나비를 보고 누가 총을 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멋스럽게 통일을 이루어낸 나라가 있을까. 손에 손을 잡고 노래하는 시민의 모습에서 우리의 촛불 집회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결국, 폭력을 폭력으로 맞서는 것이 하수임을 역사가 보여준다.
2018년 100년 건국 기념을 위해 5년마다 열리는 여름 합창제 사진은 진한 감동을 준다. 선의의 의지가 모여 큰 물결을 만들어내 역사를 만들어 낸다. 그 축제의 크기도 클뿐더러 밤새도록 함께 노래 부르는 행사는 라트비아에게 의미 깊은 행사로 가치가 대단할 것 같다.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레이나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상황에서 무엇인가 답을 얻을 수 있는 힌트가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생로 병사의 비밀’을 촬영하면서 그녀가 마주한 어두운 현실이야기를 통해 피디의 역할이 진실을 보고 알리는 시청자의 눈역할임을 알 것 같다. 조용한 한 시골 마을에 3개의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서고 전국 18%의 쓰레기가 태워진다. 마을 사람들은 암에 걸리기 시작하고 병들어 가는 와중에서 서로 와해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소각장이 생길 예정이라는 말에 가슴이 답답해진다. 마을 어르신들의 소박한 소망도 반성을 한다. 새 물건을 감싸는 비닐을 제발 만들지 말아 달라는 그들의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람이다. 처음부터 만들지 않으면 태우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긴 울림을 준다. 저자는 생각할 주제를 조용하게 던진다. 플라스틱 재활용 공장에는 한국인이 일하지 않는다. 영업시간이 끝나면 백화점의 비싼 식품들은 어디로 가는지.......
콩코 민주 공화국 남부의 광산 도시 콜웨지에 대한 소개를 통해 우리가 누리는 많은 혜택이 그 누군가의 희생 위에 쌓인 것임을 다시 한번 느께게 해준다. 독성 중금속인 코발트는 스마트폰, 노트북, 무선 이어폰, 무선 청소기, 전기 자동차 같은 무선 전자 기기에 들어가는 리튬 베테리의 가장 중요한 원료라고 한다. 그 코발트를 어린아이들이 충혈된 눈으로 캐내는 장면이 ‘지구는 없다’라는 포르그램을 통해 소개되었다고 한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만 지구가 아니다. 이곳에서 살아가는 어두운 면도 알려져야 개선이 될 것 아닌가. 하지만 그녀의 말처럼 고아인 남매의 충혈된 눈을 보면서 도와주고 싶어도 수만 명의 어린아이들을 어떻게 한꺼번에 도울 수 있을까. ‘AI가 사람처럼 소설을 쓰고, 화성을 거주지로 개발하는 시대를 떠받치는 건 가장 가난하고 어린아이들이라는 것을 알릴 것이다.’
인도의 시크교도 이야기도 인상 깊다. 암레 차르는 한때 이슬람교는 파키스탄으로 시크 교도는 인도 쪽으로 이동하는 과정 중에 영토와 인구를 두고 100만 명의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지구촌 곳곳에 아프지 않은 역사가 없는 것 같다. 하지만 시크 교도들의 포용성은 종교가 가지고 있는 참뜻을 제대로 펼치고 있는 것 같다. 우상을 세워두고 경배하는 게 아니라 지혜가 담긴 경전인 책을 사원에 두고 이슬람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인에게 개방적이라고 한다. 종교가 전쟁과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화합의 근원이 될 날이 오길 바란다.
저자의 개인적 이야기와 피디로서 해쳐나간 여행일지가 읽는 재미를 준다. 특히, 엄마와의 여행 이야기는 웃음이 난다. 오랜 여행은 당연히 서로 마음의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친구 같은 딸은 모든 엄마의 자랑이다. 하지만, 서로 간의 티격태격도 너무 가까워 생기는 문제이기에 먼 훗날 웃으며 추억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하게 살아간다. 지구별에 찰나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100년 안에 모두 이 별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지구인들이 주인이 되어 선조가 남긴 정신으로 살아가다가 그들 역시 후손들에게 무엇인가를 물려주고 우리의 뒤를 따를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이렇게 주인이 교체되면서 흘러가고 있다. 지구별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다. 아름다운 환경을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고, 삶을 겸손하게 찬란하게 살아갈 정신적 지혜의 전통도 물려주어야 한다. 세계 곳곳에 눈 부신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 그리고 여전히 살아내기 위한 고난을 겪고 있는 이들이 있다. 행복하게 웃으며 시작한 독서가 마음 잔뜩 숙제를 안고 끝냈다. 내 한 몸 즐기고 웃고 끝나는 여행서가 아니라 좀 더 넓고 깊게 지구를 보며 성찰을 이끌어내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