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엔카의 위빳사나 명상 2]- 고엔카
명상은 침묵 속에서 텅 빈 나를 바라보는 활동 같다. 머릿속을 다 비우고 오직 살아 있는 생명체의 호흡에 집중하는 게 왜 중요할까. 명상 예찬의 노래는 마치 유행가처럼 다양한 형태로 생활 속으로 파고든다. 초월 명상이 한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잠시 머물다가 사라졌다. 우연히 위빳사나 명상 책과 인연이 되었다.
미얀마의 부유한 인도 집안출신인 고엔카는 31살부터 14년간 수행을 한 후, 그 이후부터 명상 지도자로 살아오고 있다고 한다. 있는 그대로 보는 수행으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명상법이라고 한다. 2500년 전 고따마 붓다가 재발견한 후 보편적인 괴로움에 보편적인 치료법으로 발전해 왔다고 한다. 위빳사나 명상을 삶의 기술로 가르쳤다는 말에 왠지 꼭 알아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준다.
자신을 ‘관찰을 통해 변화시킨다’는 기본 원리로 마음과 몸의 깊은 상호 연결성에 중심을 두라고 한다. 쉽게 말로 표현된다고 해서 쉬운 건 아닌 것 같다. 책은 중간중간 명상과 관련된 불교 이야기와 죽음을 맞이했던 사람들이 위빳사를 통해 어떻게 평온하게 삶을 마감했는지를 들려준다. 병을 치료하는 명상이 아니라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데 ‘순간의 존재’에 집중하는 법을 이야기한다.
모두에게 적용되는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는 다음과 같다.
1. 필할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키는 불만의 씨앗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다.
2. 만족에 대한 끊임없는 갈망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3. 우리 삶에서 경험하는 고통에 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4. 참된 평화와 참된 자유로 이끄는 8가지 성스런 길인 팔정도를 통해 위 3번의 답이다.
팔정도를 다시 3가지로 나누면 도덕적 행휘(실라), 집중(사마디), 지혜(빤냐)라고 하다. 마음, 말, 몸으로 자신이나 다른 사람을 해치는 행동을 삼가는 훈련이다. 마음을 한 곳에 모이도록 하여 고요하게 하는 깊은 훈련을 사마디라고 한다. 빤냐는 위빳사 명상을 통해 가질 수 있는데 우리가 겪는 불행과 불만을 강화하는 조건화와 습관을 뿌리 뽑을 수 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환생(빠띠산디)을 믿는다. 죽음과 동시에 31개의 트랙이 생긴다고 한다. 하나의 삶의 문이 닫히자마자 31개의 다른 삶 중 하나로 옮겨 가기 때문에 죽는 순간에 행복하고 기쁘게 긍정적으로 생을 마감해야 다음 생으로 이동할 때 더 높은 단계로 환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을 생각하고 살라는 뜻 같다. 누구나 죽는다는 확실한 사실 속에서 언제 죽을 지 모르는 불확실한 삶을 살고 있는 게 우리네 생이다.
죽음을 맞이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 중 몇 가지가 떠오른다. 저자의 양어머님이 간암으로 고통 속에서도 평화롭게 위빳사 명상으로 삶을 마감한 이야기는 본보기가 되는 죽음 같다. 마지막 순간까지 몸에서 일어나는 고통을 호소하는 게 아니라 관찰자의 모습으로 다음생을 준비하는 자세로 죽음을 맞이했다. 대학시절 친구의 아빠가 간암으로 돌아가셨었다. 그녀는 울먹이며 이야기했었다.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그녀의 아빠의 성한 이가 모두 으스러져 있어서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다고. 친구의 아빠 또한 마지막까지 진통제를 드시면서 다음생으로 이동하셨는데 슬퍼할 가족들을 위해 아픔을 참아내신 것 같다. 불교적 차원으로 본다면 다음생의 그분의 삶은 한 단계 더 나은 트랙을 찾았을 것 같다.
사랑하는 이의 예정된 죽음은 고통이다. 하지만 함께 위빳사 명상 수업을 들으며, 평온하게 일상을 유지하면서 함께하는 매 순간을 소중하게 보내는 것에 집중한 이야기는 감동 적이다. 남편이 죽고 나서 ‘잠시나마 내 삶을 그런 사람과 함께하다니 나는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말하는 그녀의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그녀는 ‘그 옷의 주인이 이제는 없다’라는 표현으로 육체를 표현한 글귀도 자취를 남긴다.
죽는 순간이 태어나는 순간을 만든다는 개념을 생각해 보지 못했었다. ‘우리가 자신의 미래를 만드는 조물주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행복이나 고통뿐만 아니라 자신의 궁극적 장도 만듭니다.’
죽음을 위한 참된 준비란 평정심과 무아(아닛짜)를 이해하여 몸과 마음에 나타나는 감각들을 반복해서 관찰하는 습관을 계발하라는 말도 이해가 된다.
본보기가 되는 죽음이라는 표현을 통해 삶과 죽음의 깊이를 함께 생각하게 만든다.
‘모든 삶은
다음 죽음을 위한
준비 과정입니다.
현명한 사람이라면
이 생을 최대한 활용하여
좋은 죽음을 준비할 것입니다.’
붓다는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생각, 말, 행동의 결실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미래는 현재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들로 형성됩니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죽음과 삶의 그 한 궤도를 흘러 가게 하는 바와-상카라(되어감의 흐름 속의 세계)가 일어나는 장면을 생각해 볼 만하다.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지 않고, 기분 전환과 즐거움만 갈망한다. 괴로움의 가장 깊은 원인이 무지라고 한다. 힘듦이 삶에 찾아왔을 때 그 근원을 직시하는 눈을 가질 때 한 단계 더 성숙한 사람이 될 것 같다.
돌아가신 분을 이름으로 기부를 하면 그분의 다음 생에 도움이 되느냐는 질문에 답이 인상 깊다. 자신의 명상을 기부하라! ‘내가 명상한 공덕을 당신과 나누고 싶습니다’라고 또는 ‘내가 쌓은 공덕을 당신과 나눕니다. 당신도 평화롭고 행복하기를!’
‘순간순간마다
삶은 자꾸 흘러갑니다.
매 순간을 활용하세요.
지나간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마음을 훈련시키는 실용적 도구가 위빳사니 명상이다. ‘내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했을 때, 어딘가에서 옛일을 되새기거나 오래된 문제와 두려움 주위를 쓸데없이 돌고 돌면서 내 삶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지 이젠 잘 잘 알아차리고 있습니다’라는 진심 어린 고백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 또한 내 삶의 많은 순간을 낭비했었던 시절에서 순간순간 아끼듯 살아가는 과정으로 이동 중이다.
‘삶은 금세 소리소문 없이 지나가 버릴 것이고, 우리는 삶이 지나가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한다’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천천히 꾸준하게 에고를 없애는 과정 없이는 진정으로 현재의 순간을 살 수 없다고 한다. 죽음을 알아차리는 연습은 삶을 경건하게 해 줄 것이다.
위빳사니 명상 코스의 3단계는 다음과 같다. 첫째, 다른 사람들의 평화와 조화를 방해하는 말이나 행동을 삼가야 한다. 둘째, 난폭한 마음을 하나의 대상 즉 호흡에 고정되도록 훈련시킴으로써 마음을 다스리는 힘을 키운다. 셋째, 단계를 밟지 않는 한 부정성은 억눌린 상태로 남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자시의 본성에 대한 통찰력을 계발함으로써 불순한 마음을 정화한다.
‘내면의 진리를 관찰함으로써 실상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 이것이 자신을 경험으로 아는 것입니다.’ ‘내면의 고요함이 계발되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고통에 사로잡혀 있는지 분명히 볼 수 있고, 자연스럽게 소망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찾은 것을 그들도 찾아내기를.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 평화의 길을 찾기를...’ 수행의 올바른 의도라고 한다.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고 바꿀 수 있는 부분과 바꿀 수 없는 부분을 구별할 줄 알고 그리고 바꿀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의 노력을, 바꿀 수 없는 부분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배운 책이다.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은 최고의 기예일 것이다. 다채롭게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자시만의 중심축을 가지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아 관찰’이 그 첫걸음이요 지속적인 공부를 통해 무지에서 벗어나야 함을 알려 주는 책이다. 그리고 예정된 죽음을 인식하고 지금 숨 쉬고 있는 현재에서 평온하게 존재하는 생활 의식이 명상이 될 수 있음을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