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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Apr 08. 2024

하루 한 권 책

[마음]- 나쓰메 소세키

오랫동안 들어오던 소설책을 빌려왔다. 일본작가들의 섬세한 글맛을 볼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으로 시작한 책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진행이 된다. 클라이맥스가 있는 곡이 아니라 서정곡처럼 잔잔하게 흘러가는 책이다. 1900년대의 일본인들의 생활과 사상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지만, 결국 어느 시대를 살아가든지 사람의 마음은 근본적으로 같은 색을 띠는 것 같다. 


 영문학을 강의하면서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한 소세키는 5남 3녀 중 막내로, 유년 시절 두 번이나 양자로 살아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 속에서도 양자로 살아가는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것 같다.  


 ‘선량한 사람의 대부분은 여차하는 순간 갑자기 악인으로 돌변하니 방심하면 안 된다’라는 사고를 가진 스승과 소설 주인공의 만남은 자연스럽다. 우연히 카페에서 외국인과 동행중인 사람을 관찰하면서, 당시 대학생이던 주인공은 자신도 모르게 그와의 인연을 만들어 간다. 책은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주인공의 아버지와 주인공의 삶과,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스승의 이야기로 두 줄기의 강물처럼 흘러간다.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자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인 스승에 대한 평가를 책을 다 읽어 갈 때 깨닫게 된다. 인생이라는 산행을 시작하는 주인공의 삶은 아직 평탄한 길을 걷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면, 스승의 삶은 어려운 고비를 만나며 정상을 향해 힘겹게 걸어가지만 끝내 포기하는 등산객 같다. 


 우리나라의 소설 ‘토지’의 여주인공 서희처럼, 부모가 차례로 세상을 떠나면서 혼자 남은 스승은 자신의 재산이 숙부에게 넘어가는 것을 본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전적인 신임을 받던 숙부에 대한 배신감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에 대한 불신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새롭게 얻은 하숙집에서 두 모녀를 만나고, 그 집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고백하지 못하고 혼자서만 삭히는 스승의 모습이 당시를 잘 보여 주는 것 같다.


 스승의 친구 K는 양자로 살면서 의대 공부를 한다는 전제로 양부모에게 학비 지원을 받는다. 하지만, 그는 승려가 되기 위한 공부를 하며 자신만의 길로 걷게 된다. 그로 인해, 양자가 취소되고, 자신의 친부모가 학비를 물려주면서 양가 모두에게 단절된 상태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느낌을 보여준다. 그런 K와 함께 살아가면서, 스승이 겪었던 마음의 혼란을 차분하게 풀어낸  소세키의 작법은 당시 이 책이 왜 최고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는지 알 것 같다. 남녀 간의 사랑이야기이지만, 닿을 듯 말듯한 말의 거리와 행동의 거리가 읽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었을 것 같다. 


 죽음이라는 화두로 볼 때, 살고 싶지만 죽음을 앞둔 주인공의 아버지와 살아갈 이유를 빼앗겨 버린 스승의 친구 K의 자발적 죽음 그리고 그런 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신의 삶을 마감한 스승의 이야기는 각기 다른 인생의 마지막을 보여준다. 자신이 사랑한 사람과 결혼해 살아가지만, 그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 스승의 태도는 결국, 친구 K에 대한 미안함으로 그의 길을 따르게 한다. 


 인간을 사랑할 수 없는 스승이 주인공에게 보내는 고백 편지를 통해, 대학 시절 하숙집 딸이었던 자신의 부인을 얼마나 사랑하고 아꼈는지를 느낄 수 있다.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을 가능한 순백의 상태로 보존하게 해주고 싶은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니 내가 죽은 후에라도 아내가 살아 있는 동안은 내가 고백한 모든 비밀을 자네 가슴속에 묻어 두기 바라네.’

자신의 죽음 또한 갑작스럽게 닥친 것으로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한 스승의 사랑. 사랑에도 색이 있다면 그의 사랑은 따뜻함을 품은 보라색 같다. 


 당시의 대학생이 사회적으로 어떤 존재였고, 일반 일본인들의 가족의 삶이 어떠했는지 그리고 일본 황제에 대한 그들의 신적 믿음의 강도를 발견할 수 있다. 일본인들을 단연 한 색으로 표현할 수 없지만, 그 저변에 깔린 색채를 느낄 수 있는 책이다. 일상의 잡음이 시끄러워질 때 소설책은 소음을 가라앉히는 효과를 주는 것 같다. 타인의 삶을 통해, 살아있는 기적을 어떻게 이용할지 고요한 사색을 부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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