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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10. 2024

하루 한 권 독서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넵

글을 읽으면서 친구와 대화하는 느낌을 주는 책이 있다. 평소에 내성적이고 말이 없던 친구가 어느 날 조용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이 든다. 누구나 느끼는 감정들을 얽힌 실타래를 풀어 나가듯이 하나씩 하나씩 풀어낸다. 읽어 가면서 ‘나만 이런 느낌이 드는 건 아니였 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 없이 살 수 없어 함께 있지만 때론 혼자 있고 싶어지는 그 이중 하모니의 조화를 이루어 내는 건 어렵다. 가족에 둘러 쌓여 있고, 수십 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그리고 보이지 않는 수천가닥의 생각들 속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젓은 빨래 널듯이 걸어야 하는 삶이 가끔 버겁다. 


 캐럴라인 넵은 저널리스트로 쌍둥이 자매 중 한 명이다. 정신분석가 아버지와 화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의 삶은 미국 중산층 이상의 가정에서 외부적인 시각에서는 완벽한 조건이다. 저자 소개 사진에서 보여 주듯이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를 갖추고 있고, 브라운 대학의 우등 졸업생에 남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그녀가 살아생전 세상에 내놓은 5권의 책은 그녀만의 솔직하고 디테일한 일상의 감정들이 잘 담겨 있을 것 같다. 


 그녀의 내면은 외면처럼 완벽하지 않다. 자신 안에 피어나는 불편한 감정들을 피하기 위해 거식증과 알코올 중독이 그녀의 짧은 생에 높은 장애물 이였다. 자신의 감정을 피하는 대신, 그 감정과 마주치고, 받아들이면서 극복하는 심리적 이야기를 들려준다. 

‘홀로, 함께, 떠나보냄, 바깥 그리고 안’이라는 주제로 책은 삶을 읽어내는 저자만의 손길을 잘 보여 준다. 부모님이 두해에 걸쳐 그녀 곁을 떠나면서 저자의 고독은 깊어진다. 부모의 부재는 성인이된 자식들에게도  큰 정신적 충격이다.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과, 세상에서 온전히 자신을 지지해 주는 유일한 팬을 상실한 한 사람의 정신적 홀로 서기를 볼 수 있다.


 고독이 주는 즐거움과 고립의 절망감속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특히, 결혼 혼령기를 넘긴 여성들이 한 번쯤 겪어 봤을 감정이다. 60세의 삶에 관한 에세이 ‘시간의 마지막 선물’을 쓴 캐럴린 하일브런의 인용글이 기억에 남는다. ‘사적인 공간이 충분하되, 지속적인 교유가 있는 상태’를 통해 적절한 균형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혼자 있는 시간과 남들과 함께하는 시간의 적절한 혼합을 60이 돼서야 달성했다는 캐럴린. 끊임없이 함께 있고 싶어 하면서도, 철저하게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 그 이중의 마음이 당연하다. 단지, 어떻게 스스로 조화를 이루어 낼지는 개개인의 노력에 달린 것 같다. 저자는 혼자만의 시간을 위해 없던 가상의 약속을 만들어내 사람들 만나는 것을 피하고, 다시 사회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내키지 않지만, 형식적 대화로 이웃들에게 의무적 질문을 하면서 그렇게 균형을 맞추려 한다. 


 고독은 자신을 돌볼 의욕이 있어야 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능력이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에 공감이 된다. 결혼 이후, 철저히 고독하게 홀로 있어본 경험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나를 돌보는 일보다는 가족을 돌보는 일이 우선시되고, 자신을 달래고 즐겁게 하는 일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지 않아서 그런 능력이 부족할 것 같다.


 사교는 나를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고, 기꺼이 취약해질 수 있어야 가능하다는 말에 여전히 사회 모임에 나가는 일이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평소에 조용한 저자를 보고 ‘도도하다’는 평을 사람들은 쉽게 전한다. 간접적으로 자신의 평을 듣게 될 때 사람들은 기분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평가와 불쾌한 감정이 그 크기를 더해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더 큰 무게감을 주기 때문이리라. 


 수줍은 성격이라 자신을 규정하는 저자는 고독의 시간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보내고, 생활 규칙을 알아서 정하고, 내 취향을 맘껏 탐닉할 자유! 내가 원하지 않는다면 아무하고도 소통하거나 협상하거나 타협하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 나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을 스스로 구축하는 설계자라는 사실이 안겨 주는 주기적인 작은 성취감.

‘왜 혼자 지내는가?’보다는 ‘왜 혼자 지내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 우선되어야 함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고독을 즐기는 저자는 스스로 만들어 내는 생활 속도와 리듬에서 사치스러운 안도감 같은 것을 느낀다고 한다. 


 고독과 고립의 경졔선을 유지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결국, 고독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경으로 두고 즐길 때 가장 흡족하고 가장 유익하다는 것을 알 것 같다. 그녀의 남자 친구이야기, 친한 여자 친구들 이야기 그리고 어린 조카를 보며 느끼는 감정들이 한때 내가 느꼈던 감정과 닮아 있다. 좋은 우정, 그저 그런 우정, 기능을 하는 우정, 망가진 우정을 구별할 수 있는 냉정이 세월이 주는 선물이리라. 가끔 타인의 우주 속에서 내가 중심이 되고자 하는 바램을 통해 ‘한 없이 사랑받고 싶은 여자’의 마음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욕심이다. 


‘그냥 존재하기만 해도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것도 깊이 사랑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너를 통해 알게 된 것이 내게는 놀라운 일이야.’ 조카 조이가 이모인 저자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 이야기한다. ‘네 존재만큼이나 소중한 선물이 란다’라고 조카에게 들려주는 고백의 글도 인상 깊다. 


 남자보다 개가 좋다고 이야기하는 저자는 자신을 너그럽게 대하는 법을 20대부터 묻기 시작했다. ‘나는 정말로 어떤 사람일까? 나는 정말로 시간을 어떻게 쓰고 싶을 까? 나는 어떤 삶을 살 수 있는 사람일까? 네게 적합한 삶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에 격려받고, 무엇에 의욕을 얻고, 무엇에 만족하는 사람일까?’

 다시 한번 태어난 다면 이탈리아인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인생은 가끔가다 한 번씩 여유가 있는 토요일에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매일 즐기는 것이라고 투철하게 믿을 것이기 때문이란다.


 ‘그냥 나 자신으로 존재하는 것만으로 부족할까? 그냥 특별할 것 없는 보통의 여자가 되면 안 될까?’라는 질문을 통해 그녀가 사회적 기대로 삶의 발걸음이 무거웠음을 알 것 같다. 그냥 평범한 존재로 살아가도 된다. 그녀의 짧은 생이 좀 더 가벼운 발걸음이었다면 더 많은 경험을 했을 것이고, 더 오래 살아 낼 수 있었을 것 같다. 책을 보면서 ‘고독한 삶과 함께하는 삶’의 균형을 이루는 게 인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균형감을 위해 오늘도 조금씩 저울의 균형을 맞춰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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