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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20. 2024

하루 한 권 독서

[우아한 거짓말]- 김려령

‘내일을 준비하던 천지가 죽었다.’ 소설의 첫 페이지를 열자마자 ‘쿵’하고 무엇인가 떨어지는 느낌이다. 삶을 담아낸 글을 통해 타인을 보고자 가끔 소설을 읽는다. 거짓말에 우아함을 붙인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자신의 거짓말을 예쁘게 포장한다고 해서, 그 자체가 합리화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인생 구비 구비마다 맞닥뜨리는 감정의 소용돌이는 대부분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다. 그 감정의 구름들이 피어오를 때 자신만의 방법으로 흘려보낼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구름에 파묻혀 결국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사람도 있다. 


 책은 청소년 왕따 문제를 무겁지 않게 다룬 소설이다. 아버지가 없는 두 딸, 천지와 만지는 먹고살기 위해 생활 전선에서 정신없이 살아가는 엄마와 나름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같다. 착한 딸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친구로, 자신의 정체성이 투명인간 같은 느낌으로 살아가는 천지가 생을 내려놓은 이야기는 읽는 동안 궁금증을 만들어 낸다. 누가, 왜 천지에게 삶의 의지를 내려놓게 만들었을지 학교에 지각한 아이처럼 불안한 마음으로 부지런히 읽어 내려가게 한다. 자칫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으로 읽게 된다. 


 천지는 늘 왕따에서 용케 살아남은 아이다. ‘티 나지 않게, 교묘하게 그리고 싹 빠지기’라는 고단수 친구 화연의 먹잇감이 되었지만, 절대 드러내놓고 자신의 억울한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천지는 감정의 투명성을 보여 준다. 아이들은 죽은 벌레보다는, 산 벌레를  꾹꾹 누를 때 반응하는 것 때문에 희열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화연의 교묘한 왕따에도 반응을 보이지 않는 천지를 보면서, 직접적인 방식이 아니라 간접 적인 방식으로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아이들에게 쇼를 보여주는 화연. 화연은 천지의 절 친한 친구로 가장하지만, 늘 왕따의 거미줄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천지를 결코 좋아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상한 애는 아니야.’라는 동정을 가장한  우아한 말로 우쭐함을 누리는 재미와 이상한 애라는 말을 자주 사용함으로써 끝내 이상한 애로 몰아붙이는 재미를 누리는 화연이 같은 친구가 나에게도 있었었다. 화연이 써놓은 글 ‘공기 청정기는 있는데, 왜 마음의 청정기는 없을까?’라는 글귀를 언니인 만지가 발견한다. 무거운 주제가 소설의 중심을 누르고 있지만, 작가는 그 무게감을 일상의 삶에서 자연스럽게 다룬다. 그래서 가볍게 이야기 속을 걸어 다니는 걸을 허락하는 것 같다. 슬픈 드라마나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나 같은 독자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 소설 안의 주제를 중심으로 읽어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천지는 자기를 중심에 두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각각 5개의 봉인된 실로 자신의 마음을 남겨 놓고 떠났다. 천지가 선물한 털실을 하나씩 풀다 보면 나오는 마지막 편지는 용서와 화해를 담고 있다. 엄마, 언니, 친구 화연과 미라에게 남겨둔 글을 모두 찾았지만, 마지막 하나는 찾아내지 못했다. 천지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준 도서관에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는 편지를 숨겨두었다. 동생에게 무관심했던 만지와, 은근히 천지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화연은 마지막 봉인실을 함께 찾는 소명을 갖게 된다. 


 삶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누리기보다는 살아내는데 온 정신이 팔린 어른들 세계에서 흔들리는 아이들을 지켜주는 것 또한 인생 선배들의 몫이다. 꽃처럼 피어날 아이들에게도 안전망이 필요하다. 스스로 져버리는 삶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어른이 보기에는 별것 아닌 작은 돌멩이에도 아이들은 쉽게 쓰러진다.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고 엮어가는 것 또한 삶의 기술이다. 천지는 마지막 가는 길에도 꿈을 꾸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가 나타나 자신을 도와주기를. ‘내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내 몸이 겁이 났습니다.’라는 마지막 독백은 그 한줄기 희망의 끊을 잡아 주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남겨 준다. 


 작가는 말한다. ‘너밖에 없다, 사랑한다, 모두 너를 위해서’라는 말보다 진심이 담긴 ‘잘 지내지?’라는 말이 더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작가 또한 중학교 시절 천지처럼 삶의 끊을 스스로 잘라버리고 싶었던 희미한 기억을 이야기하면서, 천지에게 필요한 진정한 관심과 사랑이 무엇인지를 말하는 것 같다. 듣기 좋은 말로 선물 포장하듯이 꾸미기보다는, 마음을 담아 관심을 주는 연습을 해야겠다. 아이들을 일상으로 만나는 나의 삶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의 중심을 찾았다. 따뜻한 시선과 관심 그리고 존재 자체를 그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다. 그래야 건강하게 자신만의 색깔로 형형색색의 꽃들이 피어나는 세상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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