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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22. 2024

하루 한 권 독서

[지금, 여기, 하나뿐인 당신에게] -심영섭

‘진정으로 자신을 알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책이다. 내 안의 나와 수도 없이 타협하고, 합리화하고, 실망하고 그리고 격려하기도 한다. 나를 제대로 알 때 삶의 음악은 경쾌해진다. 오랫동안 내가 아닌 ‘나여야 하는 모습’이 내 모습인 줄 알았었다. 길가의 꽃도, 버려진 듯 홀로 나뒹구는 돌도, 존재의 상위를 나눌 수 없다. 그냥 그 자체로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사람 또한 마음의 자를 들고 타인과 비교하다 보면 어느새 나는 사라지고 남이 원하는 모습도 아닌 낯선 자아만 남게 될 것 같다.

 

 나를 알아가는 기본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인간 본성에 대한 공부가 필요하다. 영화 심리학자인 저자는 만 편 이상의 영화를 본 사람이다. 인간 삶의 미세한 부분까지 드러나 있는 영화 공부는 어떻게 보면 세상과 사람들을 알아가는 좋은 공부 자료가 될 수 있다. ‘심리학과 영화를 두루 섭렵했다’라는 뜻으로 저자는 자신의 이름을 '심영섭'이라 칭한다. 책은 영화 속 인물들과 심리학을 연결해 독자들에게 인간 본성을 깨닫게 해준다. 서문에서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인 것들’이라는 제목에서 내가 놓친 부분을 깨닫는다.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 알았더라면...’이라는 후회보다는 '이제라도 알아서 다행이다'는 긍정의 마음을 가져야 겠다. 


 20년 동안 저자를 찾아온 내담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삶의 모습이 다른 듯 보이지만 본성이 비슷한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그 모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난 영화를 통해 실전과 이론이 하나의 완성품을 만들어 낸 것 같다. 책은 사랑, 고통스러운 감정 그리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영혼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사랑에 서툴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지나고 보니 소유하고자 하던 마음이 간섭을 일으키고 내 마음대로 하려던 욕심이 사랑의 색을 퇴색 시켰던 것 같다. 평생을 한 남자, 평생을 한 여자를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생의 과업이라는 저자의 말도 공감이 된다.

너와 나의 차이보다는 인간으로서 같음을 이해하는 순간, 한 인간을 더 견뎌내고, 더 참아주고, 더 인내하고, 더 받아주고, 더 수용해 줄 수 있다.’


 ‘당신의 사람을 사랑하라. 조건 없이, 욕망 없이, 두려움 없이.’ 사랑하다 이별하는 것조차도 사랑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정할 때, 사랑을 통해 더욱 성숙해질 것 같다. 이별이란 사랑해 봤다는 증거이자 훈장이라는 말은 잔잔한 위로를 준다. 사랑이란 결국, 내가 원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아들여야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 감정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알 때 우리는 좀 더 자유롭게 사랑의 혜택을 누릴 것 같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노란색을 닮은 사랑, 좋은 친구와 나누는 우정의 색 같은 녹색 사랑, 연인 간에 순식간에 달아오르는 빨간 사랑, 노년의 부부가 나누는 은은한 회색빛의 사랑이 있기에 세상은 이 처럼 오색찬란하게 빛을 쏟아내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의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녀석을 잘 관찰해 봐야 한다. 그래야 내 안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그들을 지나가는 손님처럼 대해야 할지 아니면 귀한 손님처럼 대해야 할지 알 것이다. 부정적 감정들로 분노, 권태, 고독, 열등감, 중독, 타인에 대한 지나친 의식, 후회, 그리고 의심을 이야기한다. 권태와 몰입에 대한 비교가 기억에 남는다. 둘 다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주지만 서로 상반된 결과를 만들어 낸다. 몰입을 통해 창의성과 행복이라는 느낌을 받는다면, 권태는 삶을 불모의 사막으로 만들어 버린다. 어떻게 보면 권태는 이제까지의 삶을 털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하는 깊숙한 내면의 신호라는 저자의 해석이 명석하다. 그래서 시간이라는 괴물과 싸워서 이길 방법으로, 관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사랑하고, 일에 의미를 부어하고 사랑하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할 것 같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긴장감이 없는 삶이 지속되다 보면 쉽게 권태라는 녀석이 찾아온다. 의미 부여에 신경을 쓰고 있는 주인을 본 권태라는 손님은 슬그머니 자리를 뜨게 될 것 같다.


 ‘인간의 모든 불행은 한 가지, 고요한 밤에 들어앉아 휴식할 줄 모른다는 것에 있다’라는 파스칼 인용글은 익히 들어왔다. 고독과 외로움은 한 끗 차이 같다. 혼자 있는 고통과 상실감을 표현하는 게 외로움이라면, 스스로 혼자 있는 즐거움으로 충만감을 표현하는 게 고독이라는 개념이라는 것을 저자를 통해 배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고독할 자유를 갖는 것이다. 내 감정이 충분한 휴식을 혼자서도 취할 수 있도록 아우렐리우스가 말하듯이 자신만의 신전을 만들어 지친 자아를 어루만지고 쉬는 공간을 만들어 두어야 겠다.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도 삶의 재산이 될 수 있다.


 ‘나를 연기하는 일은 그만’이라는 표현 글을 만나면서, 우는 아이의 울음을 딱 그치게 만드는 묘한 힘을 느낀다.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시선이 아니라 내 안에 들어 있는 스스로의 시선과 검열 때문이라고 책은 이야기한다. 여전히 타인의 눈을 의식하는 게 습관처럼 되어 있지만, 그런 감정을 이해하고 약간의 거리를 두려 노력할 때, 나를 동여매었던 그 줄들이 하나씩 풀려날 것 같다. 그리고 자유롭게 존재 자체를 가지고 편안한 마음으로 삶을 대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에 대한 기대가 클수록 평생에 걸친 후회의 덫에 걸리기 쉽다는 말도 공감이 간다. 후회란 세상에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밑그림을 그릴 때 후회라는 잘못된 선을 발견하고, 다시 지우고 다시 그려보기를 주저하지 않을 때 원하는 삶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삶을 풍요롭게 하는 감정들에 대한 이야기도 공감이 간다. 불행해지지 않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너무 행복해 지기를 바라지 말라는 말을 들려준다. 행복의 지름길은 지금 바로 여기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말도 희망을 준다. 지금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면 미래의 지금도 행복해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리라.


 용서는 내 안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가치가 없는 사람에게 그동안 몰두 했던 내 소중한 에너지를 거두어들이는 행위라는 저자의 정의가 값지다. '용서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는 말에 공감이 간다. 배우 전도연 씨가 연기했던 <밀양>이라는 영화를 통해 용서의 정의를 보여준다. 오래전에 봤던 영화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는 장면을 저자도 이야기한다. 아들을 유괴해서 죽인 범인을 용서하기 위해 감옥을 찾아간 엄마가, 이미 신으로부터 자신이 용서되었음을 이야기하는 범인을 보고 충격을 받은 그 장면은 상치된 감정의 충돌을 잘 보여주었다.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스스로 용서받은 사람이라 이야기하는 사람을 볼 때, 분노라는 또 다른 감정이 화산 폭발하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여 준다.


 다름을 인정하는 마음, 죽음을 인정하는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슬픔의 숲에서 분노의 숲으로, 그리움의 숲으로, 애도의 숲으로 그리고 현실을 받아들이는 숲으로 도달하는 과정을 이야기한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사촌이 몇 달 전 세상과 이별했다. 이모가 걷고 계실 그 숲이 어디일지 모르겠지만, 마음 한 구석이 아련히 아파온다.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박완서 선생님 또한 같은 감정의 길을 통해 결국, 겸손의 진리를 깨달은 과정을 이야기한다. ‘나라고 해서 이런 일을 당하면 안 되는가?’라는 마음을 낮춘 박완서 선생님의 깨달음을 들으며, 숙연한 느낌까지 든다. 지금 나와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가진 것들 그리고 내가 누리는 모든 것들이 기적임을 알 것 같다.


 ‘죽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만, 살지 않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빅토르 위고의 말도 삶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는 한마디기 된다. 더 이상 끼울 단추가 없다는 것, 처음부터 잘못 끼워졌다는 것을 죽음에 가셔야 알게 될 때 지나온 삶을 어떻게 정의한단 말인가.


 피레네 산맥의 지도를 가지고도 알프스 산맥을 잘 건너온 병사들을 다룬 영화를 통해 희망이 삶에서 주는 기적을 잘 보여 준다.

버리거나 내려놓는 연습 또한 삶의 걸음을 가볍게 해 줄 것이다. 인도의 고승 아잔 브라흐마는 인간의 마음을 술 취한 코끼리라고 했다고 한다.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원하는 그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기 때문이다.’

술 취한 코끼리로 살아서는 안될 것 같다. 인간의 불투명한 감정들을 영화 속 주인공들과 연결해 선명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감정에 이름을 달아 주어야겠다. 그리고 긍정의 감정들이 풍요로움을 불러내는 주문이 된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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