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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윤효 May 27. 2024

하루 한 권 독서

[아날로그인]- 서지현

책이 하나의 시집 같다. 일상의 글들을 종이 위에 펼쳐내는 그녀는 사소해 보이는 물건들 조차 시적 언어로 표현해 내는 재주를 가진 사람 같다. 의미 없어 보이는 것들이 그녀의 손끝으로 중요한 무엇인가로 바뀐다. 두 아이의 엄마이고, 영어를 가르치다 한글이 그리워 전업작가로 인생의 행로를 바꾼 사람이다. 


 매달 들어오는 월급을 이처럼 맛깔스럽게 표현할 수가 있을까. ‘매달의 신성한 대가는 통장에 점만 찍고는 저마다의 용무를 찾아 뿔뿔이 흩어진다.’ 이 한 줄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온다. 

 자신을 아날로그인이라 칭하는 저자의 삶은 들여다보는 재미가 있다. 온전한 자신을 만나기 위해 택한 삶의 방식이 아날로그라고 한다. 가끔 멈춰서 뒤돌아 보는 것. 아날로그의 연속성, 감각, 애착 그리고 아날로그가 나다움이라는 이야기를 펼쳐낸다.


 인생을 뜨개실로 비유한 저자는 잘못해서 코가 빠졌음을 알았을 때 미련 없이 풀어 헤친 후 다시 짜나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멈춰서 짜온 그 길을 보고 빠진 게 있다면 시간낭비처럼 보일 수 있지만 멈춰서 늦더라고 풀어내는 게 현명할 것 같다. 그래야 인생의 마지막 단추를 채울 때 짝을 맞출 수 없는 구멍 때문에 당황하지 않을 수 있다.


 많이 아팠던 날이 도리어 애틋한 그림움이 되거나, 마냥 행복했던 순간에도 그늘진 슬픔이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저자의 어릴 적 이야기가 정겹다. 떼쓰지 않는 아이, 공부 잘하는 아이, 정석을 걸어야만 하는 아이는 어른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인정받고자 한 몸짓이었다. ‘무언가를 이뤄내야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훌륭한 그 무엇이 되어야만 행복에 도달할 거라 믿던 시절이기도 했다.’ 고백 같은 그녀의 독백에서 나에게 있었던 마음을 발견했다. 


 ‘눈앞에 놓인 목표에 열중하느라 놓쳐버린 시절의 즐거움을 이제와 애달파한다.’ 가수 Hot와 젝스키즈가 소녀들의 감성을 흔들었던 때, 여고생이던 저자는 다른 친구들처럼 오빠라는 이름을 불러내며, 열성적으로 사랑을 쏟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불러야 할 ‘오빠’가 없어 아쉽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나 또한 추억으로 부를 수 없는 오빠가 없었다는 게 아쉽다. 야간 자율학습까지 빼먹고, 서울로 유덕화 공연 보러 같던 그 친구들은 여전히 추억 속의 오빠를 웃으며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딱따구리는 하루에 2,000마리의 벌레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그런 딱따구리를 통해 ‘미물이라도 되는 대로 살아가는 법이란 없구나’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뭔가를 이뤄야 하고 뭔가가 되어야 존재가 드러날 것 같은 그 불안감을 하나씩 내려두려 한다. 같은 인생은 없다. ‘굳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도 제 몫을 다하는 것으로 타인에게 울림을 주는 인생이 있다.’ 내 몫을 다함으로 ‘사람의 존재는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완성되어 남는다’라는 문구를 실현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아날로그 감성을 책 사이사이 들려준다. 그녀가 찍었을 법한 사진들도 정겹다. 양쪽으로 심이 나와 있는 짧은 몽당연필, 열 손가락 끝에 예쁘게 앉아 있는 봉숭아 물, 당근 마켓에서 얻은 60개의 맑은 유리병 속의 음식들이 하나 같이 소소한 일상을 잔잔하게 노래한다. 쌀뜨물을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생활 팁도 바로 실천하고 있다. 뜸 물을 받아 두고 위에 맑게 뜬 물은 버리고, 아래 하얗게 가라앉은 물만 모아보니 그 빛깔이 곱기 그지없다. 잘 모아 세수도 하고, 육수의 맛을 더하는 국물로 써야겠다. 


 세상의 속도가 빨라질 때, 발 빠르게 따라가기 버거워질 때 잠시 멈추고 주위를 관찰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 일상에서 나의 시선을 받지 못한 물건들이 하나씩 챙겨 보게 된다. 


 아날로그도 사랑하고, 디지털적인 삶도 사랑한다. Chat GPT로 영어문제도 내고, Google Class room을 이용해 학생들에게 과제를 내주고, Z-library에서 무료로 책을 다운로드하여 킨들로 책을 읽는 삶도 사랑한다. 블로그와 브런치, 유튜브와 밴드를 활용한 내 삶의 소리를 남기는 일도 사랑한다. 


그러나 저자처럼 아날로그적 감성은 결국 나답게 존재하는 방식을 담고 있을 것 같아 쉽게 이별하지는 못할 것 같다. 온전한 나를 만날 자유가 우리에게도 있다는 것을 저자는 조용하게 조언한다. 우리는 각자, 또 함께 삶을 짓는다는 표현이 기억에 남는다. 오늘도 내 삶의 맛을 지어 봐야겠다. 사소한 것이 결코 사소하지 않음을 알려주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느긋한 주말 잔디나 풀밭에 앉아 읽기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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