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의 품격]- 이기주
가끔 어머니 화장대에 꽃을 올려놓는 남자가 쓴 책이다. 그 한 줄의 힘으로 저자에 대한 호감도가 올라간다. 말을 잘하는 것과 말을 제대로 한다는 것은 다르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제대로 말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말이 힘이 되고, 위로가 되며, 하면 할수록 관계가 더 좋아지고 그로 인해 인생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는 화법은 분명 욕심나는 삶의 기술이다.
말은 귀소 본능이 있다는 저자의 말에 그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내가 생각 없이 쏟아낸 말이 타인에게 상처가 되었을 때, 그 흩어진 말들이 다시 돌아와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내 안에 잠재된 언어들이 매일 소리 없이 우주로 흘러 들어가 개울이 되고, 강이 되어 내 삶이라는 물결의 방향을 정할 수 있다. 그래서 쏟아내는 말들을 내 안의 검열대를 갖추어야 함을 알 것 같다.
인간의 외로움을 줄이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손길과 정돈된 언어사용이라는 저자의 말이다. 한자의 품(品)은 ‘말이 쌓이고 쌓여서 한 사람의 품성이 된다’라는 의미를 잘 보여 준다고 한다. ‘내가 지닌 고유한 인향은 분명 내가 구사하는 말에서 뿜어져 나온다.’
좋은 가방이나 옷보다 중요한 것이 내가 품어내는 언어들임을 알 것 같다. 책은 이청득심(들어야 마음을 얻는다), 과언무환(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 언위 심성(말은 마음의 소리다) 그리고 대언 담담(큰 말은 힘이 있다)이라는 4가지 주제로 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들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예로, 그가 병사들과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얼마나 주의 깊게 들었는지를 보여 준다. ‘나는 병사들과 자주 어울려 술을 마셨다.’ 대화와 의논 그리고 토론의 장소로 운주당의 턱을 낮추고 이야기를 들었던 이순신 장군이 그 지형의 특징을 정확하게 꾀게 되어 무전무패라는 기록을 이루어 낸 것이다.
그냥 듣는 수동적 듣기보다는 반응을 보여 주면서 듣는 적극적인 듣기는 말을 해석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에 배어 있는 감정과 목구멍까지 차오른 절박한 말까지 헤아릴 때 가능해질 것이다. 1분에 200 단어를 말할 수 있지만, 우리의 뇌는 말하기의 4배인 800 단어를 충분히 해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렇기에 말을 충분히 해석할 수 있어 타인의 말을 경청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진화 심리학자가 말하기를 인간의 언어가 침팬지의 그루밍(서로 털을 골라 주면서 친밀감을 유지하는 것)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을 누일 곳이 필요하다는 말은 언어를 통해 서로에게 몸이 아닌 마음을 누일 곳을 제공하는 것이다.
‘삶의 지혜는 종종 듣는 데서 비롯되고, 삶의 후회는 대개 말하는 데서 비롯된다.’ 듣기의 중요성을 가장 잘 드러낸 글귀다.
‘남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고 내 행동과 말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면, 상황에 따라 우리는 얼마든지 제2, 제3의 아이히만이 될 수 있다.’ 유대인 학살을 통해 악의 평범성을 이야기했던 한나 아렌트의 말이다.
절충과 협상의 전제 조건이 상대에 대한 완벽한 이해라는 말도 기억에 남는다. ‘각기 다른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른 우주의 충돌이다.’
말이 적으면 근심이 없다는 과언 무환의 예로, 미국 전 대통령 오바마의 사례는 그의 리더로서의 품격을 느끼게 해 준다. 총기 난사로 어린 청소년까지 희생이 된 현장에서 그가 진심을 담아낸 말과 51초 간의 침묵은 그의 언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언어 대화인 침묵의 가치를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나폴레옹 또한 연설을 하기 전에 10초 정도 매서운 눈으로 전방을 바라보고 시작했다고 한다. 당연히 그의 위엄성이 전달되었을 것이고, 듣는 이의 집중을 자신에게로 모았을 것 같다.
숙성되지 못한 말은 오히려 침묵만 못함을 알 것 같다. 성인의 듣기 집중력은 18분이라고 한다. 그래서 마크 트웨인은 ‘설교가 20분으 넘으면, 죄인도 구원받기를 포기한다’라고 이야기했다.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도 모여들게 마련이다.’ 가족과 친구에게 습관처럼 친절과 격려의 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즐거워지는 순환이 만들어질 것이다. 생각과 실천의 길이 다소 멀지만, 한두 번의 실천이 지속되면 길이 될 것이다.
‘칼에 베인 상처는 바로 아물지만, 말에 베인 상처는 평생 아물지 않는다.’
말은 마음의 소리라는 언위 심성 편에서는 사람이 지닌 고유한 향기는 사람의 말에서 뿜어져 나옴을 이야기한다. 말을 통해 관계를 맺는 인간의 세계에서, 관계는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에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쌓아 가는 것임을 알게 해 준다. 말의 성찬을 쏟아낸 히틀러와 말을 더듬지만 진심을 담아 이야기하는 조지 6세의 이야기인 <킹스 스피치> 영화의 예도 기억에 남는다.
큰 말은 힘이 있다는 대언 담담의 내용에서 ‘사람의 마음을 얻는 것은 우주를 얻는 것과 같다’라는 글귀도 잔잔한 생각의 물결을 만들어 낸다.
‘사람을 이롭게 하는 말은 솜처럼 따뜻하지만, 사람을 상하게 하는 말은 가치처럼 날카롭다. 한마디 한마디의 무게는 천금과 같으며, 한마디 말이 사람을 다치게 하면 그 아픔은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언품의 가장 큰 특징이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교황의 답변은 마음까지 따뜻해지게 만든다. 무신론자에 대해 ‘신의 지배는 한계가 없습니다.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자신의 양심을 따르면 됩니다’라고 화답했다.
‘과거는 벽이 되기도 하고 길이 되기도 한다.’ ‘질문형식의 대화는 청자로 하여금 존경받는 느낌이 들게 한다.’
책을 읽다 보면 줄을 긋고 싶어지는 문구를 계속 만나게 되는 책이다.
‘햇빛 한 줌 들지 않은 곳에서 얼음이 저절로 녹을 리 없다. 빛을 쫴야 겨우내 언 땅이 풀린다. 사람 감정도 매 한 가지가 아닐까 싶다. 따스한 햇볕아래 서 있을 때 삶의 비애와 슬픔을 말려 버릴 수 있다.’
물질적인 선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상대의 마음속 꽁꽁 언 얼음에 따뜻한 한 줄기 햇빛이 되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