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한 권 읽기

[헤세의 책 읽기와 글쓰기]- 헤르만 헤세

by 조윤효

‘언어와 예술 속의 모든 혁신은 흥미 진진 하고, 예술가들의 온갖 유희는 매혹적이다.’ 헤세가 60년 동안 자신이 생각하는 독서와 문학에 대한 마지막 편의 글에 담긴 내용이다. 1900년에서 1960년 사이에 헤세의 생각 속에 담긴 독서와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세계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거쳐 오면서, 전쟁의 중심국이었던 독일인인 그가 지성인으로서 어떤 세계관과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냈는지 궁금했었다.


그의 <데미안>과 <유리알 유희>는 대학 시절, 어렵고 힘겹게 읽었던 책이다. 이 책 또한 난해하지는 않지만, 조금은 같은 톤의 음악처럼 지루함이 올라오는 글들이 많다. 그래서 다른 책들과 섞어가며 읽느라 시간이 걸린 책이다. 책을 읽고 정리하면서 헤세의 독서관을 이해하게 되었다.


시로 시작하는 글은 문학적 냄새를 강하게 풍기는 역할을 한다.

<책>

이 세상 모든 책이

그대를 행복하게 해주지는 않아.

하나 몰래 알려주지.

그대 자신 속으로 되돌아가는 길을......


나치의 탄압으로 헤세의 작품들은 몰수되지만, 그의 책은 지성과 감성의 균형을 이루고 시적인 음악성과 간단명료한 문체와 이해하기 쉬운 내용이라 시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살아낸다.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거저 얻지 않고, 자신의 정신으로 만들어낸 많은 세계들 중 가장 위대한 것은 책의 세계다.’ 책을 유독 많이 읽었고, 독자도 많았지만, 쓸데없는 책을 읽는 것으로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고 헤세는 조언한다. 책을 많이 읽으면서 의존적인 사람은 더욱 책에 의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 젊어지고, 새로이 원기가 솟는 느낌이 드는 독서를 이야기한다. 책을 연인처럼 대할 때, 책마다의 독자성을 존중하게 됨을 그는 이야기한다. 그의 표지 사진속 안경너머로 유난히 총명하게 빛나는 눈동자를 통해 그가 독서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얻어내는지를 알 것 같다.


독자가 지녀할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선입견이나 편견에서 벗어나는 일이며, 문학뿐만 아니라 시, 동화, 희곡도 읽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신문과 독서의 비교는 마치 오늘날의 휴대폰과 독서의 비교 같다. 신문을 읽는 절반만이라도 독서로 시간을 보낸다면 학자와 작가의 책 속에 담긴 삶과 지혜의 보물을 접하고, 제 것으로 만들기로 충분하다고 이야기한다. 요즘은 신문조차 읽지 않는 시대를 헤세는 어떤 눈으로 바로 볼까. 조용하고 진지하게 향유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 독서이고, 그래야 독서를 통해 자신의 가장 내적인 아름다움과 힘을 얻는다는 그의 생각에 공감이 간다.


‘일상적인 삶의 모든 행위에서 본연의 목적을 의식하는 습관을 들인 자는 비록 처음에는 신문과 잡지만 볼지라도 곧 독서에 관해서도 본질적인 법칙과 차이를 적용하는 법을 배울 것이다.’ 작가들의 책 속에 기록된 사고와 본질을 살아 움직이는 유기적인 세계로 여기는 헤세는 큰소리로 책을 읽을 때의 효과를 정확히 이야기한다. ‘개인적인 문체의 토대가 되는 산문의 은밀한 리듬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감명 깊게 읽은 책은 얼마뒤 다시 한번 읽으라고 조언 한다. 두 번째 읽을 때, 책의 핵심이 드러나고 순전히 표면적인 표현인 것에 불과했던 긴장감이 사라지고, 내적의 삶의 가치, 서술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힘의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 얼마나 경탄스러운지 알게 된다고 한다. 독서도 모든 향유와 마찬가지여서 우리가 진심으로 애정을 기울여 몰두할수록 보다 깊고 지속적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몇 권 안 되는 책을 철저히 아는 것, 그래서 그것을 읽던 수많은 시간의 감흥을 되새기기 위해 그 책을 손에 집어 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 머릿속 가득 수천 권의 책 제목과 작가 이름을 막연히 떠올리는 것보다 더 고귀하고 만족스러우리라.

바닥에 아무리 멋진 양탄자가 깔려 있고, 벽을 아무리 귀중한 벽지와 그림이 뒤덮고 있다 한들 책이 없다면 가난한 집이라는 말과 함께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준다. 스스로 책을 알고 소유하며, 사랑한 사람만이 자녀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이해하고, 깨닫도록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성장하는 단 하나의 법칙과 유일한 길은 읽는 것을 존중하고, 참을성 있게 이해하려 하고, 겸허한 마음으로 인정하며 그것에 귀 기울이는 것이라 것이다. 최상의 것만을 가려 읽을 때 위대한 영속적인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 주는 ‘인생서’의 영역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책은 삶에 도움이 되고, 다시 젊어지는 예감, 새롭게 원기가 생겨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읽는 시간은 모두 낭비가 된다는 그의 말은 독서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다. ‘우리 자신의 삶을 보다 의식적이고 성숙하게 다시 단단히 손에 쥐기 위해 독서해야 한다.’


자신과 자신의 영혼 사이의 보초병은 의식이나 도덕 같은 치안 당국을 하나씩 세워 둔다는 표현도 인상 깊다. 예술가는 두 집 살림하듯 무의식과 의식 사이를 몰래 드나든다고 한다. 전쟁 선동자, 아우성을 치는 전쟁 시인, 위대한 시인이라 부르짖는 논설위원들의 다리가 브러지고, 무덤에 누워 있는 것을 기뻐해야 한다고 조용하게 이야기한다. 전쟁 중 좋은 읽을거리와 나쁜 읽을 거리를 선별해 50만 명에 달하는 사람에게 글을 골라 주는 것이 그의 직무다. 그래서 그는 그가 만약, 교사라면 '아이들에게게 진리를 뒤집어 보는 것도 필요하다' 는 것을 가르쳤을 것이라고 한다.


한창 놀고 공부할 열여섯, 열일곱 스물의 나이에 전쟁터에 휩쓸려 간 젊은이들에 대한 따뜻한 기대도 느껴진다. 건너뛴 반항기 시절을 특별히 강도 높게 누릴 권리가 있는 그들이 폭력과 총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전쟁과 폭력은 미묘한 문제를 너무나 미개하고 너무나 어리석으며 잔인한 방식으로 해결하려는 시도라는 사실을 깨닫게 도와줄 것이라는 그의 희망도 이해가 간다.


니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헤세는 읽히지 않기 때문에 오해받는 작가들을 이야기한다. 니체 또한 살아 있는 동안 대중에게 오해받는 작가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작가는 오해받아야 하고, 유명하고, 인기 있는 작가도 오해받아야 함을 이야기하다. 인류의 존속을 확실히 하려면 많은 구속과 진지함, 많은 도덕과 우둔함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말에 삶의 희로 애락이 한 인간의 삶의 완성풍이라는 말을 떠오르게 한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즈음 쓴 글에도 그의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수많은 인종과 민족, 수많은 언어, 많은 종류의 성향과 세계관이 있다는 것은 근사한 일이다.’ 다름에 대한 열린 마음이 인류의 삶을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려 줄 것이다.


인간만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바람, 바다, 강과 시냇물도 글을 쓰고, 동물도 대지도 글을 쓴다. 단지 인간만이 객관화된 정신으로 바라보려 하기 때문에 다를 뿐이라고 한다.

헤세가 인용한 세퍼의 글인 ‘작가의 임무는 의미 심장한 것을 단순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간 것을 의미 심장하게 말하는 것이다’를 통해 작가의 임무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작가의 임무는 의미 심장하고 중요한지를 결정하는 일이 아니라 사소하고, 하찮은 것에서 영원하고 어마어마한 것을 인식하고, 선은 어디에나 존재하고 모든 사물에 깃들어 있다는 지식을 발견하고 알려 주는 일이라 말한다.


사소하고 매우 하찮은 일, 현재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조언을 주는 거장의 말이 많은 것을 이야기해 준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최선을 다하면서 책이라는 조언자를 멘토로 삼고 삶의 희로 애락에 대한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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