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의 반열에 오를 수는 없어도 그들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 순례를 가는 사람들이 있다. 산티아고 길은 익히 알려진 순례길이 아니라, 불교계의 큰 스승의 반열에 오르신 법정 스님이 지내셨던 산사를 따라 순례길을 저자는 걸었다. <셈터>에 법정스님의 글을 연재하면서 인연이 되어 스님의 제자로 ‘무염’의 법명을 받은 저자는 스님에게 전해 들은 법문을 하나씩 소개해 준다.
무소유란 소유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필요하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는 힘을 말한다. 무소유의 또 다른 말이 나눔이라는 말이고, 이는 자비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으로서 인간으로 돌아가는 길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무소유 삶을 깨닫게 해 주신 내 영혼의 스승님께 이 책을 올립니다.’ 제자의 정성 어린 밥상을 받는 기분이 드실 것 같다.
스님의 발자취를 따라 송광사 불일암, 해남 우수영, 진도 쌍계사, 미래사 눌암, 쌍계사 탑전, 가야산 해인사, 봉은사 다래헌, 강원도 오두막 수류 산방 그리고 길상사를 순례자의 마음으로 저자는 소개한다.
불일암에서 스님과 나눈 대화나 법문을 소개하는 저자의 사진속에 유난히 겨울을 담은 절사진이 많다. 숲 속 깊은 곳에 있는 절 생활 중 가장 힘든 계절이 겨울일 것 같다. 그 힘듬의 과정을 온몸으로 받아 내는 삶을 수행으로 극복하는 삶이 궁금해진다.
‘대나무 그림자 섬돌을 쓸어도 티끌하나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뚤어도 물에는 흔적 하나 없어’
남송 시대 선승인 야보도천의 시를 좋아하셨던 법정 스님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친 욕심을 부리지 않는 대나무처럼 그리고 자신이 살다 간 흔적을 너무 애써 남기려 하지 않는 달빛처럼 살다가신 스님의 생각이 느껴진다. 그래서, ‘무소유’를 비롯해 출간하셨던 모든 책을 사후에는 절판하시라 하셨던 것 같다.
불일암에 스님이 직접 만들어 놓으신 빠삐용 의자는 그 모양새가 투박하지만, 그 존재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해낸 물건이다. 스님을 닮아 투박하지만, 자신이 세상에 나와 어떤 영향을 주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잘 아셨던 분 같다. 사람을 갈라놓는 종교는 좋은 종교가 아니고, 인간을 위한 종교가 될 수 없다는 그분의 말에 공감이 간다. 이는 모든 분야에 해당하는 말 같다. 나누고 분열시키는 사람이 아니라 아우르고 협력을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절 마당에 떨어진 낙엽조차 ‘제 갈 곳을 찾아 제자리에 떨어진 낙엽을 네 마음대로 옮기지 마라’ 말씀하신 그 말에 세상 모든 일에 함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알 것 같다. 저자의 말처럼 불일암 가는 길은 집착과 욕심의 몸무게를 줄이러 간다는 말을 통해 어쩌다 한 번씩 산행하다 들르는 절에 어떤 마음을 품고 가야 하는지 알 것 같다.
차를 마시는 일이 멋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마음이 한가 할 때 차를 마시고, 차분한 마음으로 다기를 매만지고, 차의 빛깔과 향기를 음미하면서 다실의 분위기를 함께 즐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나 돈 이야기를 하지 말고 차에 어울리도록 맑고 향기로운 내용만 이야기하되 큰소리를 내거나 남의 흉을 보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차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한다. 선물 받은 다기와 찻잔을 다시 일상으로 데리고 와야겠다. 차맛이 없었던 게 아니라 일상에서 여유를 만들어 내지 못한 내 삶의 양식이 문제였다. 스님의 그림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한 한잔의 찻잔은 자신만을 위한 차를 마시면서,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내는 삶의 동경이 담겨 있는 듯하다. 차를 기호 식품으로 습관적을 마시는 차인이 아니라 차를 통해 높은 경지에 오르는 사람이 되는 다인을 꿈궈 본다. 그리고 마지막 찻잔에 물을 부어 마시는 백차는 차에 대한 존중이 들어간 의식 같다.
<월든>의 저자 소로처럼 단순하고 간소하게 사는 것을 지향하셨던 스님의 당부 어린 말도 기억에 남는다. ‘입안에 말이 적고, 마음에 일이 적고, 배속에 밥이 적어야 한다. 이 세 가지 적은 것이 있으면 신선도 될 수 있다.’
출가 전에 스님이 사셨던 해남의 우수영에서 만나는 글들도 기억에 남는다. 소년 박재철. 스님의 속명이다. 걸어온 삶이 울퉁불퉁 산행길을 닮아 있지만, 그 또한 삶이라는 여정의 한 부분으로 여기신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보이지 않은 상처가 있고, 겉으로는 추억 사진 한 장으로 보이지만, 내면은 보이지 않아 찍히지 않은 1~2장의 사진이 있을 수 있다. 바다 밑의 조개가 자신의 몸속으로 파고들어 상처를 주는 모래를 품고 진주를 만들어 내듯이 스님 또한 자신의 상처를 반짝이는 보석으로 승화시키셨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이 간다.
동백꽃에 대한 묘사가 멋스럽다. <자전거 여행>의 저자 김훈의 글처럼 꽂을 참으로 멋드러지게 표현한 글귀를 만났다. ‘동백꽃은 온몸으로 정직하게 피는 꽃이다. 흰 눈에 순결한 핏방울처럼 떨어진 동백꽃은 자결의 비장함 까지 더해 옷깃을 여미게 한다.’ 흰 눈에 떨어진 동백꽃의 묘사가 삶을 담은 것 같다.
절에서 식자 전에 암송하는 법문인 ‘오관게’또한 음식이 넘쳐나는 현대인에게 귀한 가르침이 될 것 같다. ‘습관적인 식사가 아니라 섭생하는 약으로 알고 음식을 먹었던 적이 있었던가’라는 저자의 반성이 내게도 전해져 온다.
법정 스님의 스승인 효봉 스님의 말씀 또한 귀하다. ‘한 방울의 물이 멈추지 않고 흘렀기 때문에 도도한 물결이 되고, 바다가 된 이치다. 또한 물은 고지식하게 흘러갈 줄 만 아는 것이 아니라 행동 방식이 유연하고 지혜롭다. 장애가 나타나면 돌아갈 줄 알고, 웅덩이가 나타나면 가득 채워질 때까지 기다릴 줄도 알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던지 흘러가는 물처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
쌍계사 탑전에서 ‘착한 사람을 가까이하는 사람은 마치 이슬 속을 가는 것 같아서, 비록 당장에 옷이 젖지는 않아도 점점 촉촉하게 적셔진다’라는 저자의 말을 통해, 스스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갈 때 세상은 더욱 살기 좋아지는 곳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 강해진다.
가야 해인사에서 이야기하는 ‘텅 빈 충만’도 인상 깊다. 한잔의 차에 온몸을 적셔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텅 빈 곳에 맑고 향기로운 차 향이 충만해진다는 그 경지를 만나고 싶어 진다.
봉모사 다래헌에서 전해주는 스님의 법문도 공감이 간다. 필요에 따라 물건을 가져야 하지만, 소유한 물건이 우리를 부자유하게 얽어맬 수 있다. 소유가 많을수록 그만큼 얽히는 게 많다는 말이다. 우리는 홀로 있을수록 함께 있는 것이라는 말도 차향처럼 잔잔하게 퍼진다.
자신의 전 재산을 절에 바친 길상화 보살의 공덕비에 세긴 글도 그 향이 진하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은 내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내가 평소 이웃에게 나눈 친절과 따뜻한 마음씨로 쌓아 올린 덕행만이 시간과 장소의 벽을 넘어 오래도록 나를 이룰 것이다. 따라서 이웃에게 베푼 것만이 진정으로 내 것이 될 수 있다.’ 기부란 내가 잠시 맡아 가지고 있던 것을 되돌려 주는 것이라는 마음으로 사셨던 스님의 인생이 보인다.
중국 선사의 ‘온몸으로 살고, 온몸으로 죽어라’는 말씀을 좋아하셨던 스님의 삶은 보이지 않게 베풀고, 침묵의 채로 거르지 않은 말을 삼가 하셨던 삶의 절제와 열정이 느껴진다. 온몸으로 살아내고 난 후 온몸을 다해 세상과 작별할 수 있는 용기를 꿈꾸게 만드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