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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여백으로부터 글쓰기]- 수잔 그린핀

by 조윤효

하얀 컴퓨터 스크린을 앞에 두고 머릿속에 흩어져 있는 생각들을 글로 쓰는 일은 쉽지 않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매일 쓰는 사람들은 빙판 위의 얼음을 잘 헤치고 나가는 스케이팅 선수 같을 것 같다. 쓰면서도 내 생각이 어디로 흘러 갈지 모르는 상태로 써갈 때가 많다. 머릿속에 평소에 다양한 생각들이 걸쳐간 흔적이 있을 때 자연스럽게 써질 것이다.


글쓰기가 업인 저자는 사색하는 법을 통해 글자료를 모으고, 흔적 없이 사라지는 생각들을 종이 위에 내려두는 과정들이 일상인 사람 같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예리한 관찰력이 도움이 된다. 수시로 만나는 작은 파문 같은 감정들을 바로 기록해 두다 보면, 어는 순간 그 작은 조각 같은 마음을 글이라는 퍼즐에 맞춰 완성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시작하기 전, 글을 쓰면서 그리고 끝을 향한 여정의 제목으로 글쓰기에 대한 저자 사색이 담겨 있다. 저자 머릿속에서 맴돌았던 생각들을 만날 수 있고, 어떻게 자라왔고, 글 쓰는 법을 배워간 일화들이 소개되어 있다.


침묵이라는 편에서 한 줄의 표현이 독특하다. ‘오늘날 단어의 소리가 있는 곳에, 한때 침묵이 있었다.’ 글쓰기 전에 이루어지는 사색들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 또한, 일상 속에서 언제든 원할 때 집중할 수 있는 힘도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한 대상에 대해 느슨하게 초점을 맞추면서 시간을 두고 기다리는 인내력도 필요하다.


몽상에 대한 한나 아렌트 방법 또한 작가들의 글 쓰기 사전 활동 같다. ‘몇 시간 동안 창가에 머물거나 그저 허공을 응시하면서 생각이 떠돌아다니도록 놔두었다.’

글에는 작가의 기분이 들어간다. 독자는 잘 쓰인 글을 읽으면서 작자가 느낀 감정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감정이 글 위에 나타나고 독자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문장들은 분명 고수만의 내공일 것이다.


저자의 말처럼 글에는 목소리가 들어가 있다. 목소리는 관점과 다르다. 목소리는 무의식과 훨씬 더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써 내려간 글의 목소리를 의식해 본 적이 없었다. 글에 어떤 목소리를 집어넣어야 읽는 사람들에게 소음이 아니라 화음으로 들릴지를 생각해 보게 한다. ‘자신에게 맞는 목소리를 찾으면 목소리가 일종의 촉매 역할을 하여 글이 흘러가도록 돕기 때문에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글을 쓰기 전에 올바른 형식 또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다. 올바른 형식을 갖추면 아이디어와 말이 더 쉽게 풀리기 마련이라고 한다. 엄마의 삶을 기록한 <내 사랑, 고여사>를 다시 수정해야 하는데 아직 형식을 잡지 못해 조용하게 기다리고 있다. 저자의 조언처럼 어떤 목소리와 형식으로 글을 수정할지 좀 더 깊은 사색놀이를 해야 함을 알 것 같다.


글을 멋스럽게 꾸며주는 문장들이 나무에서 떨어지는 열매와 같다는 표현도 재미있다. 잡을 수 있을 때 잡기 위해서는 상하기 전에 빠르게 메모를 해 두어야 한다. 걷기와 글쓰기의 유사성도 공감이 간다. 생각의 리듬과 걷기의 리듬이 신체의 기본 리듬을 반영하고, 신체 리듬이 우주와 자연 속 시간의 흐름, 즉 계절과 일출, 정오와 오후의 흐름을 통해 글로 나타날 것 같다.


책은 한 권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한문단, 한쪽을 쓰는 것이라는 저자의 말도 용기를 준다. 작가의 무능력을 드러낸 방식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은 더욱 풍성해질 수 있다는 것 또한 완벽성 장벽에 시작을 주저하는 사람들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될 수 있다.


글을 써내려 가는 과정은 단어의 조합을 블록처럼 끼워 맞추는 활동이다. 단어가 내는 소리를 통해 생기는 감각적인 힘이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아름다운 화음을 만들어 내는 음계들이 모여 한 곡이 작곡되듯이, 단어의 소리를 조합해 글을 작곡하는 게 작가의 일 같다. ‘거의 맞는 말과 맞는 말의 차이는 반딧불과 번갯불만큼이나 크다.’


문장이 강과 같다는 표현도 멋스럽다. ‘강처럼 흐르고 눈물을 흘리게 하고, 시선을 붙들고, 그저 삶이 끊임없는 움직임을 반영하기도 한다.’

문장의 핵심이 동사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팔팔 튀어 오르는 활력을 주는 것이 동사다. 동사 선택의 폭이 넓다 보면, 문장의 깊이와 활력이 다를 것 같다. 문장은 규칙이 없다. 자신이 쓴 글에 귀를 기울여 들어 보기 위해서는 소리 내서 읽어 보고 그 소리를 느껴 보라고 한다. 긴 문장은 가구로 가득 찬 방이나 물건들이 잔뜩 올려진 탁자 같다는 말도 명심해 본다. 엿가락처럼 늘어나는 글쓰기 습관은 나이가 들수록 혼자 수다를 떠는 사람 같을 것 같다.


아직 써야 할 글이 너무 많아 글을 금단의 땅이라 부르는 작가의 독창적인 생각을 만날 수 있다. 그런 금단의 땅에 작가는 글을 써내고, 그 글들을 만나는 독자는 글 속의 소리나 단어가 여러 장 넘긴 뒤에도 독자의 머릿속에 남는다고 한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의 글들이 그런 맛을 준다. 꽃들이 피고 지는 장면을 보면 김훈의 표현들이 떠오른다.

‘동백은 한 송이의 개별자로서 제각기 피어나고, 제각기 떨어진다./매화는 피어서 군집을 이룬다. /매화는 바람에 불려 가서 소멸하는 시간의 모습으로 꽃보라가 되어 사라진다./ 산수유는 꽃이 아니라 나무가 꾸는 꿈처럼 보인다./ 목련꽃의 죽음은 느리고도 무겁다./ 봄의 꽃들은 바람이 데려가거나 흙이 데려간다./ 봄에 지는 모든 꽃들도 다 제 이름을 부르며 죽는 모양이다.’


독자의 인내심을 시험하는 너무 많은 글도 안되고, 독자를 혼란스럽게 하거나 실망시키는 너무 작은 글도 안된다고 한다. 글에도 중용이 필요하다.


글을 쓰는 마지막 과정 중 작가들이 흔히 쓰는 법으로 원을 완성하는 기법이라고 한다. 끝과 시작이 하나로 연결되어 글이 모나지 않게 잘 살아 굴러갈 것 같다. 원을 완성하는 글은 대부분의 작가가 한번 이상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글을 마무리 짓기 어려울 때, 가끔 따라 해 봐도 좋을 기법 같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 deus ex machina’ 기법이란 선한 존재나 천사가 연극 무대에 갑자기 나타나 어떤 갈등이라도 정의롭고 공정한 사람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는 기법을 말한다. 삶에서도 글에서도 문득 나타난 선한 존재를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글은 사색들이 형체가 되어 하나의 선명한 색채로 타인의 마음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아닐까. 작가들의 사색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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