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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by 조윤효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라톤 마니아 일본 작가 하루키의 책이다. 그의 책 몇 권을 읽었었다. 짧고 중간 정도 길이 문장으로 물 위를 튀는 돌팔매질처럼 흘러가는 글들이다. 영어적인 방식으로 일본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기억이 난다. 소설가가 전업인 사람의 일상에서 장거리 달리기가 갖는 의미가 궁금했다.


2005년부터 1년간 달리면서 쓴 글들이다. 그 당시 나는 무엇에 빠져 살고 있었는지를 돌아본다. 작가가 달리며 살아갔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미래에 대한 불안, 주체할 수 없는 젊음과 시간으로 삶을 어떻게 제단해야 할지 몰라 서툰 가위질을 하고 있었다.

‘나 자신이 달리는 의미를 찾기 위해 손을 움직여서 이와 같은 문장을 직접 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라톤 완주는 마치 한 권의 소설책을 끝내는 일만큼이나 어려워 보인다. 25번 완주를 기록했고, 책을 출간하고도 더 달렸다면 기록적인 수치를 보유한 작가다. 노벨 수상감 못지않은 인내력이다. 심지어 하루 동안 11시간 이상 달린 100킬로미터 완주는 초인적 힘과 글을 쓰는 힘이 서로 닮아 있음을 알려 준다. 소설을 쓰는 것이 육체노동과 버금가는 활동이라, 글을 잘 쓰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42.195 킬로미터를 달리는 일은 어쩌면 인생과 닮았다. 정해진 길을 쉬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그 길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감정과 생각이 자신이다. 가끔 잘 달리기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달려야 한다. 삶 또한 왜 사는지를 생각하지 말고 물 흐르듯 자연과 함께 흘러가야 할 때도 있다.


장편 소설은 육체노동과 닮아 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지만 뼈를 깎는 듯한 노동이 몸 안에서 역동적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표현은 마라톤과 글쓰기의 공통점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테네에서부터 시작된 마라톤은 전업 작가인 하루키에도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달리는 동안에도 글을 쓰고, 강연하고,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생활한 그의 삶은 분주해 보인다. 그러나 바쁘다는 이유로 달리는 연습을 멈추면 평생 달릴 수 없을 것 같아 달린다는 말은 묘한 감동을 준다. 그런 핑계를 수도 없이 달고 살고 있는 나의 한 단면이 보여서다. 계속 달려야 하는 이유가 조금이라면, 그만둘 이유가 대형 트럭을 채울 만큼 가득하지만 이를 극복한 저자의 지혜가 보인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그 아주 적은 이유를 하나하나 소중하게 단련하는 일뿐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부지런히 빈틈없이 달련하는 것.’


살면서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이 있다. 혹여, 하지 않을 수많은 이유들에 둘러싸여 아주 작은 소중한 일을 미루고 있는지 생각하게 한다. 대가 다운 발상이다. 작지만 소중하게 단련해 나가라는 조용한 조언이다.


달리는 동안 3가지의 뚜렷한 목표를 작가는 가지고 있다. 반드시 골인하기, 걷지 않기, 그리고 레이스를 즐기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하루키의 목표를 인생에 대비해 보면, 이루고 싶은 목표를 정하고 꾸준히 노력하며 즐기면 된다.


직업 외에 자신을 온전한 몰입으로 이끌어 본다는 것은 신이 주신 발견되지 못한 재능을 찾아낼 확률을 높이는 것이다. 작가로서의 단색보다 달리는 사람으로 색채를 뚜렷하게 그려낸 하루키의 삶은 그의 소설이 더욱 깊어지는 과정을 만든 것 같다. 연인을 찾는 마음으로 남아있는 생 동안 삶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루에 1시간쯤 달리며 나 자신만의 침묵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것은, 나의 정신 위생에 중요한 의미를 지닌 작업이었다.


남편의 사촌형이 젊은 시절 수도승으로 입산해서, 스승과 함께 7년 동안 돌길을 닦아 절을 만든 지리산 수도암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폭풍 ‘매미’ 때부터 성을 쌓아 만든 매미성도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다. 사막을 숲으로 만든 미국인의 이야기도 한 인간이 남길 수 있는 흔적들을 만들어 냈다. 하루키가 남긴 삶의 흔적은 분명 그의 소설들이다. 하지만, 달리기를 통해 만나는 자신과의 대화와 영감들이 그 소설에 담겨 있을 것이다. 생각을 비우고 텅 빈 시간이 필요했다는 하루키와 남편의 사촌형이 같은 말을 했다. 아무 생각 없이 해야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자신이 흥미를 지닌 분야의 일을 자신에게 맞는 페이스로, 자신이 좋아하는 방법으로 추구해 가면서 지식이나 기술을 지극히 효율적으로 몸에 익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번역 기술을 돈을 들여 가며 하나씩 익힌 덕분에 하루키는 <위대한 게츠비> 영문을 일본어로 번역해서 출간했다. 기술을 효율적으로 몸에 익힌 덕분에 평생 써먹을 수 있는 자신만의 도구를 갖고 있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의 손끝으로 번역된 책은 독자에게 원문 그대로의 감동을 잘 전달한다. 류시화 씨가 번역했던 타고르의 시집을 읽고 감동을 받았었다. 우연히 다른 작가가 번역한 타고르 시집을 읽었지만,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없었을 때, 번역자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하루키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한 방법으로 재능, 집중력, 지속력을 이야기한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필요한 곳에 집약해서 쏟아 붙는 능력이 집중력이라면, 마라톤처럼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지속력이 있을 때, 한 권의 명작이 탄생한다. 마라톤과 닮아 있다. 건강하게 뛸 수 있는 몸이 있고, 오로시 달리는 길에 집중하고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것이 마라톤이다.


‘언젠가 사람은 패배한다.’ 육체는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쇠잔해 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작은 올케 아버지도 80세까지 마라톤을 뛰셨다. 건강에는 자신이 있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다. 지인의 아버지도 80세 가까이 전국 명산을 다니시며 산행을 즐기 셨다. 그분도 요양 돌봄 이를 받고 계신다. 나이가 들수록 겸허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들이 평생 갈 것이라 믿을 수 없다.


설령 오래 살지 않아도 좋으니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은 온전한 인생을 보내고 싶다.’

저자는 그의 묘비명에 ‘~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라는 희망문구를 준비해 두었다고 한다.


읽을 때보다 쓰면서 대가의 생각이 뚜렷하게 다가오는 책이다. 살아 있는 동안 온전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마음을 준다. 온전한 삶이란 죽음이 오는 그날까지 내가 가진 모든 재능을 찾아내고 갈고닦는 일일 것이다. 묘비명 또한 준비해 두어야 한다. 그래야 삶이 방향성을 가지고 생기로 충만해질 것이다. 하루키 덕분에 묘비명에 쓸 한 줄 글을 생각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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