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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권 독서

[어쩌다 보니 지구 반대편]- 이기범

by 조윤효

여행이라는 단어가 항상 주위를 맴돈다. 일상을 떠나 낯선 곳으로 자신을 내려두고 싶은 마음이 여행 관련 책을 잡게 만든다. '10만 원으로 1년간 세계 여행'이라는 표지 글귀가 ‘어떻게’라는 호기심을 발동시켜 책과의 인연이 만들어진다.


머물 용기와 떠날 용기는 누구에게나 있다. 떠날 것인지 머물 것인지에 대한 마음의 소용돌이가 가끔 삶의 우선순위를 바꾼다. 33살의 저자는 세계를 여행하겠다는 마음으로 방법을 찾는다. 목표가 있다면, 다음 순서가 방법을 찾는 것이다. 저자는 지인 40명으로부터 50만 원 지원받기라는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매달 10만 원씩 친구를 지원해 준 우정은 세계 항해 여정의 든든한 밧줄이 되어 저자의 여행을 이끌어 준 것 같다.


책들 사이로 소개된 사진에서는 따뜻한 시선이 느껴진다. 특히, 아이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이 잘 살아 있어, 여행자의 애정이 사진 속에서 흘러나온다. 인도를 시작으로 중동, 유럽, 아프리카, 남미, 미국을 거쳐 캐나다를 끝으로 366일간의 여행이 막을 내렸다. 어떤 느낌일까. 일 년 동안 다른 환경 다양한 사람들을 지속적으로 만나는 일상은 불편함이 익숙함으로 바뀌기 전에 또 다른 낯설음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불편함이란 육체적이라기보다는 정신적인 부분에서 더 클 것 같다. 머물 용기가 더 강한 나에게는 떠날 용기가 점점 줄어드는 느낌이다. 젊음이란 떠날 용기인 돛이 크다는 것이고,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머물 용기의 닻을 내리는 과정 같다.


지구촌 곳곳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자연경관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곳도 있지만, 처음 보는 곳도 있다. 여행동안 만났던 사람들의 사연들과 저자가 겪은 다양한 일화들이 맛을 더해준다.

첫 여행지인 인도는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한 번은 꼭 가봐야 할 곳이라는 것이다. ‘인도를 여행하는 것은 세계를 여행하는 것과 같다.’


인도의 레에서 한 초등학교를 방문하게 되고,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밀크티 한잔을 대접받은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나눌 것이 넘쳐나는 곳임을 보여 준다.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바람 빠진 공으로 흙먼지를 날리며 뛰어논다. 저자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에게 축구공을 사주라고 300루피를 건넨다. 여행의 참맛은 이렇게 마음속에 담긴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아닐까.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허벅지에 쥐가 나서 쓰러져 있는 사진 속에 저자의 두 무릎사에 에 위로 보이는 맑은 하늘과 구름은 더없이 평화롭다.


신들의 놀이터라 불리는 히말라야에서 산행가 박영석 대장을 추모하는 외침이 느껴진다. 안나푸르나의 깊은 밤하늘에 보석처럼 떠있는 그 수많은 별들 사이를 향해 ‘박영석 대장님... 부디 그곳에서 평안하세요~’라는 말이 메아리가 되어 신들의 귓전에 들어갈 것 같다. 신과 함께하고 있을 박영석 대장의 웃는 얼굴이 그려진다.

의미 있는 일을 많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의 존재가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을 때 느껴지는 상실감.... 그 허망함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진심을 담아 추모하는 것뿐이었다.


여행자들의 블랙홀, 파키스탄의 훈자 마을은 물가가 저렴하고, 풍경이 아름 다우며 사람들이 친절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아이들 한 명 한 명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 나누어 줄 수 있는 마음은 마을 사람들의 환대가 끌어낸 따뜻함이다. 나눌 수 있는 게 적어서가 아니라 나눌 마음이 없어서 삶이 마른땅처럼 퍽퍽해지는 것이다. 결국, 어디에 있든지 작은 나눔과 친절 그리고 넉넉한 미소가 그 땅을 살만한 곳으로 만든다.

여행을 하면서 어디를 가느냐,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를 만나느냐이다. 누구를 만나 어떤 이야기를 만드냐가 여행의 색깔을 결정지어 준다.’


언어 장벽은 이란의 우르미에 소금호수를 지나쳐 다시 돌아 가게 했지만, 사진을 보니 놓치면 안 될 곳이었음을 알 것 같다.


이탈리아는 유명 영화 속에 등장한 지역들이 많아 여행자들의 눈길과 발길을 끌어당긴다. 트레비 분수, 콜로세움, 피렌체 두오모 등등... 우리나라 곳곳에 숨어있는 아름다운 정경들을 영화라는 상품 속에 배경으로 잘 활용한다면, 한류 열풍 덕분으로 관광 산업까지 크게 발전할 것 같다. 이탈리아처럼 관광객 만으로 벌어들이는 수익이 높아질 것이다.


인생에 단 한 번은 페트라를 가봐야 한다는 말은 공감대가 크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한 곳이고, 세계 문화유산인 이곳은 영화 <인디아나 존스>와 <트랜스포머> 촬영지로 잘 알려진 곳이다. 붉은 바위산을 깎아 만든 도시 페트라는 신전과 수도원만 남아있지만, 어마어마하 규모의 고대 신전 알카즈네는 신과 인간의 합작품이라는 느낌을 준다.


아프리카 여행은 그 어떤 곳보다 용기와 건강이 필요한 곳 같다. 수천 개의 언어를 쓰는 다양한 부족들이 밤하늘의 별처럼 평화롭게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서양 열강들이 자신들의 기준으로 선을 만들고 국경을 만들어 아프리카 땅에 내전과 학살로 얼룩진 역사를 만들었다. 탄자니아에서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야생 코끼리나 사자들을 보며, 지구의 주인 행세를 하는 인간에게 공존자로서의 동물들을 생각하게 한다. 어둠이 깔리는 들판, 세렝게티에서 만나는 야생동물들 사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응고롱고로 분화구의 얼룩말과 홍학 사진은 동물의 세계에서 자주 만났던 장면이다. 문명인 인간이 그들 동물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를 생각하게 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 타운의 희망봉 사진은 깊이가 다르다. 인류 조상의 근원지인 아프리카라는 역사적 사실 때문에 더 크게 와닿는 곳일 수 있다. 케이프 타운 볼더스 비치에 아프리카 펭귄들이 인상적이다. 펭귄은 눈 덮인 땅 위에 추위 속에 알을 품고 있을 것 같은 선입견 때문인지, 아프리카에 산다는 펭귄은 낯선 상상이 된다.


저자가 볼리비아 데스로드에서 자전거 투어를 하다가 팔꿈치 뼈가 부러지고, 거의 죽음 일보 직전을 만난 상황은 놀랍기도 하다. 깨진 안경사진이 당일 사고의 위험을 보여 준다. 사고 후 살아있다는 감사함에 눈물을 흐리며 볼리비아의 민민한 빵을 잼에 찍어 먹으면서 느낀 그 감정이 여행의 가치를 더 크게 해 주었을 것이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그저 살아 있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를 깨닫는 것 만 큰 값진 보물은 없다. 사고 이후, 새로운 인생을 선물 받은 저자가 덤으로 한번 더 산다는 마음은 살아가면서 만나는 크고 작은 상황들을 넘어설 수 있는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은 지구촌의 여행자이다. 잠깐 머물고 가든 조금 오래 머물고 가든지 우리 모두는 여행자다. 이 여행지에서 어떤 여행을 꿈꾸어야 할지는 각자의 몫이다. 책을 읽으면서 함께 여행하는 기분으로 일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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