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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새 Dec 10. 2023

프랑스에서 이사를 했다,
그것도 두 번씩이나

2 juillet 2023, Cité


그러고 보니 겨울을 살았던 르아브르의 집도 죽어도 떠나기 싫었다

집 창문으로 보이는 노을과 바다는 4개월을 매일 봐도 질리지 않았고

가슴이 답답할 때마다 바다까지 힘껏 달렸다



솜사탕 같은 구름과 거울 같은 바다


얼마나 좋았으면 파리에 있는 지금의 어학원까지

2시간 반 걸리는 flix 버스로 통학을 할 생각도 했다

그러다가 이 집을 만났다





공간이 주는 힘이란 실로 대단하다

처음 이 집에 왔을 때 

아랫집에서 풍기는 향긋한 빵 냄새

바로 옆 노트르담 성당에서 들려오는 바이올린의 선율

창문 사이로 보이는 초록색 아기 나뭇잎들까지

이 모든 풍경들이 어서 여기로 오라고, 손짓을 했다


아직 봄이 오기에는 일렀던 4월 중순, 

이 집이 마음에 드니?라는 집주인분의 질문에

나는 대답 대신 저.. 이 집에서 살고 싶다고 대답했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이틀 뒤 이사를 했고

한 달 반 동안 나는 그곳을 오롯이 나의 공간으로 만들었다

핸드워시의 장미 향, 베개에서 나는 숲 향, 샤워하고 나서 뿌리는 불리 향수, 

소파에서 누워서는 오아시스의 원더월을 크게 틀어놓고 책을 읽다가 잠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는 늘 좋은 꿈을 꾸었다


그러다가 그 집에 예상치 못한 대규모 공사가 예정되었고

급하게 다른 거처를 찾아야 했다

어느 날 짐을 가지러 집에 갔을 때

미처 정리하지 못했던 나의 작은 오리 인형이 시멘트 가루가 가득한 바닥에 떨어져 있었고

너무 좋아서 매일 베개에 머리를 파 묻고 탬버린즈의 룸 프래그런스 향을 맡던 그 공간이

다 망가져있고 부서져 있는데

그 기억의 파편을 바라보는 게 그렇게 눈물이 났다







만약 어떤 일이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것도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3개월 전에는 내가 프랑스에 더 있게 될 줄 몰랐고

2개월 전에는 지금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사람을 만나게 될 줄 몰랐으며

1개월 전에는 내가 좋아하던 그 집을 떠나야 할 줄 몰랐던 것처럼....


집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건 나의 감정, 오늘의 기분, 오늘 해야 할 일뿐이다

당장의 기쁨이 행운도 아니고, 슬픔이라고 불행도 아니겠지만 

한 사건이 또 다른 사건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연속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저 오늘 하루를 잘 살아가야만 하는, 하루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을 지닌 나는

연약하게도 오늘에 해당하는 불평을 할 수밖에 없고

오늘의 슬픈 감정을 삼켜내야 할 수밖에 없다

욕심이 많고 내 환경을 완벽하게 가꾸고 싶은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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