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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새 Dec 04. 2023

어머님은
얼마나 따님이 보고 싶으실까요?

여름 어느 날,  뤽상부르 공원에서

02 juin 2023 , Paris 


프랑스는 나에게 늘 그런 식이었다


어제, 긴 기다림 끝에 겨우 잡아 탄 버스는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가까워지기도 전에 운행을 종료한다며 

모든 탑승객을 뤽상부르 공원에서 하차시켰다

터덜터덜 학원까지 걷는 길

내 상황과는 정반대로 사무치게 아름다워서 감탄했고

나무에 비치는 햇살이 평소와 다르게 지나치게 찬란했다

그때 막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샤이니의 '한 마디'라는 음악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풍경과 꼭 잘 맞았다


한 겨울, 르아브르의 우울한 날씨와 비바람에 지쳐 집에만 틀어박혀있었을 때

낮은 조도의 조명 아래에서 혼자 일기를 쓰는 시간이 너무 좋아서 행복했고


일 안 하는 프랑스 행정기관들 때문에 지쳐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을 때 

별생각 없이 찾아간 경시청에서 당일 헝데부를 잡아줘서 

그렇게 긴 시간 골머리를 앓던 체류증 문제가 기적같이 해결됐다


그저 이 나라가, 그리고 파리가 좋아서 더 살기로 결정한 후

집을 구하지 못해 아주 스트레스를 받으며 아팠을 때

좋은 새 집이 나에게 우연히 찾아왔다

그 집을 구하게 된 방법도

다정한 프랑스인 친구와 친구의 가족 덕분이다

처음 이 집에 들어와서 창문 밖으로 비치는 말간 햇빛을 마주했던 순간을 잊지 못한다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여전히 들지 않던 어느 날 

센 강 변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노부부와 길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어르신은 당차고 씩씩하게 살아온 나의 해외살이를 가만히 들으시더니,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아이코.. 어머님은 얼마나 따님이 보고 싶으실까요?"


이때 그동안 가슴 한편에 조심히 묻어두었던, 

엄마가 보고 싶었던 마음이 툭, 열리면서 눈물이 나서 고개를 돌려야 했다

한 번도 나는 엄마가 나를 얼마나 보고 싶어 하는지에 대해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프랑스는 늘 나에게 너털웃음을 안겨주는 곳이다

답답한 일 때문에 한숨이 나오다가도 다시 크게 숨을 들이켜고 시작을 다짐하게 하는 곳

지루함의 길을 걷던 나를 다시 일으켜주는 다정한 사람이 있는 곳 

애증이라는 말이 가장 간단하게 이 나라를 표현할 수 있지만

내게 이곳은 그 단어 하나로 설명하기에는 가슴 벅차게 행복한, 밝은 노란빛의 추억이 가득하다


단어 몇 개의 조합으로는 충분히 내 감정이 표현되지 않아서

더 많이 글로 기록하고 영상을 남기고 몸으로 기억하고자 애쓴다

프랑스에서 쓰기 시작한 메종프란치스커정의 짙은 장미향은 

이 나라를, 이 나라에서의 나를, 너를, 우리를 기억하기 위한 수단이다


어느새 미국에서 지낸 날보다 프랑스에서 지낸 날들이 더 많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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