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 이야기 - 제도(制度)

1. 진대(賑貸) - 배고픔과 가난은 어떤 시선으로

by 이중석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 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조차 덮어 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중에서





가난은 삶의 고통이 아니다. 가난은 그냥 삶이다.

삶이 가난이 되면 삶과 가난을 구분하지 못한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난이 눈을 뜨고, 밤에 눈을 감으면 가난도 잠을 잔다.

가난한 이에게 가난은 학생들이 아침에 학교에 갈 때 어깨에 책가방을 메듯이 어깨에 항상 메어져 있다.



‘가난은 떨어지는 눈송이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이다.’

(김애란의 <이중 하나는 거짓말> 중에서)



역사에서 가난이 극복된 시기는 최근이다. 인류는 몇 백만 년을 배고픔과 함께 해왔다.

현재도 인간은 유전자에 각인된 배고픔을 잊지 못해 음식을 보면 자신의 양보다 많이 먹는다.

어쩌면 인간이 배고픔을 극복하는 과정이 역사의 진보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도 세계에는 배고픔과 가난에 어떻게 대처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다.

배고픔과 가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문제는 시선의 문제이다.

어떤 이는 게으름과 무능으로, 어떤 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로, 어떤 이는 도움을 주고 싶은 시선으로 본다.

시선의 문제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만 품격 있는 역사를 마주할 수 있다.

‘품격 있는 역사’란 ‘올바른 시선을 갖는 것’이라 생각해도 된다.



난 1년 전 8월 더운 여름 한낮에 동네 횡단보도에 서 있었다.

폐휴지를 줍는 할머니가 손수레의 손잡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땀을 닦고 있었다.

할머니의 위에 큰 파라솔의 햇빛 가리개가 있어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횡단보도에 서 있던 여자아이가 손수레에 실려 있던 손이 떨어져나간 바비 인형을 만지려 하자 옆에 있던 엄마가 매섭게 아이의 손을 탁! 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순간 할머니가 아이를 보며 웃었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더러워요, 만지지 마세요”라고 하며 파란 신호등으로 바뀐 횡단보도를 건넜다.

할머니의 왼쪽 다리는 겨울이었다.

더러워요, 더러워요, 더러워요. 계속 더러워요.

나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다가 파란 신호에 건너지 못했다.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단독 주택 반지하에 세 들어 살던 세 모녀가 번개탄을 피워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당시 어머니는 60세, 큰 딸은 35세, 작은 딸은 32세였다.

큰딸은 당뇨와 고혈압이 있었고 비싼 치료비를 감당하지 못해서 병원 치료를 제대로 받고 있지 못한 상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작은딸은 만화가 지망생이었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렵게 생계를 도왔다.

사실상 어머니 혼자 벌어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어머니가 식당 일을 하다가 넘어져 몸을 다치면서 세 모녀가 더 이상 버틸 힘을 잃어버렸다.

세 모녀는 자살하였다.

죽은 세 모녀의 집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와 함께 70만 원이 들어있는 돈 봉투가 발견되었다.

뭐가 죄송했을까. 집세와 공과금이 좀 부족했었나. 죽으면서 그렇게 세 모녀는 죄송했다.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좀도리 행사를 진행했다.

좀도리라는 말은 전라도 방언인데 한자로는 절미(節米)라고 한다.

쌀을 절약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아낙네들이 쌀 단지에서 쌀을 풀 때 한 움큼씩 다른 단지에 덜어 놓았다가 덜어놓은 단지에 쌀이 쌓이면 절에 가져가기도 하고 제사 때 사용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는 좀도리로 모아진 쌀을 생활이 어려운 친구들을 선정해서 나누어주었다.

내 흐릿한 기억으로는 어머니가 쌀 단지를 따로 만들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냥 좀도리 행사가 있을 때 가정 통신문에 좀도리 행사가 있다고 하면 어머니가 라면 봉지 하나 정도 되는 양의 쌀을 책가방에 넣어주었다.

라면 봉지를 노란색 고무줄로 꽁꽁 묶으면서 어머니는 웃으셨다.

학교에 도착해서 그 라면 봉지에 있던 쌀을 교실 앞에 큰 통에 담았다.

기억이 가물가물 한데 누가 쌀을 냈는지 안 냈는지 체크도 하지 않았던 거 같다.



고대 삼국 시대 고구려에는 진대법(賑貸法)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고국천왕 16년 가을 7월, 서리가 내려 곡식이 죽었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열어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왕이 질산 남쪽에서 사냥하였다. 길가에 앉아 우는 자를 보고 우는 이유를 물으니 그가 대답하였다. “가난하여 항상 품팔이로 어머님을 봉양하였습니다. 금년에는 흉년이 들어 품팔이 할 곳이 없어 곡식 한 되나 한말도 얻을 수 없기에 우는 것입니다.” 왕이 “아아! 내가 백성의 부모가 되어, 백성을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하였구나. 내 죄이다.”라 하며 옷과 음식을 주어 위로하였다. 이어서 서울과 지방의 해당 관청에 명령하여, 홀아비ㆍ과부ㆍ고아ㆍ자식 없는 늙은이ㆍ늙고 병들고 가난하여 혼자 힘으로 살 수 없는 자들을 널리 찾아내어 구제하게 하였다.

봄 3월부터 가을 7월까지 관의 곡식을 풀었다. 백성들의 식구가 많고 적음에 따라 차등 있게 구제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겨울 10월에 상환하게 하는 것을 법규로 정하였다. 모든 백성들이 크게 기뻐하였다.

- 『삼국사기』


고구려의 진대법은 고구려 고국천왕 재위 16년(194년)에 재상 을파소의 건의로 시행되었다.

을파소는 평범한 농부에서 재상까지 올라간 인물인데 배고픔과 가난이 무언지를 경험해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체험하지 못한 가난은 체험한 가난 앞에서는 미사여구를 동원해 설명하는 말일 뿐이다.


‘진(賑)은 구휼하다는 의미로 가난한 백성에게 곡식을 나누어주고, 대(貸)는 빌려준다는 의미로 봄철 춘궁기에 국가가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추수가 끝난 가을에 다시 받는다는 의미이다.

국가가 빌려준 곡식을 받을 때 약간의 이자를 받는데 이자로 걷는 곡식을 모곡(耗穀)이라 한다.

진대법 초기에는 이자인 모곡을 걷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원곡(元穀)을 갚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원곡 손실분을 보충하기 위해 모곡을 징수하였다.

이러한 모곡은 시간이 지나면서 고리대로 변질되어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는 도구가 되었다.


진대법을 단순하게 ‘아!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준 것이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제도나 법을 공부할 때에는 시대의 통찰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자연 재해에 의한 흉년, 전염병 등으로 굶어죽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백성들은 곡식이 떨어지는 봄철에 귀족에게 곡식을 빌렸다.

귀족은 곡식을 빌려주고 고리대를 받았는데 귀족에게 곡식을 빌린 백성 중에는 고리대를 감당하지 못하고 부채노비(빚 때문에 귀족의 노비가 됨)가 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였다.

부채노비화 현상으로 인해 귀족의 노비가 늘어나면서 귀족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강해졌다.

부채노비화 현상은 왕의 입장에서는 매우 불편한 상황이다.

왕(국가)이 귀족을 대신해서 곡식을 빌려주기 시작한 이유는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켜 국왕 중심의 통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라고 기억해야 한다.

진대법을 왕과 귀족 사이에 발생하는 정치ㆍ경제적 역학 관계망을 가지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의 진대법은 현재로 보면 복지 제도이다.

복지의 사전적인 의미는 ‘행복한 삶’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데 많은 지장을 주는 것이 배고픔과 가난이다.

진대법은 지금으로부터 2천여 년 전에 실시되었다.

진대법이 실시된 지 2천 년이 흐른 지금은 어떠한가.

인간의 배고픔과 가난은 해결되었는가.


복지에도 시선의 문제가 생긴다.

‘왜 가난한 사람들을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가.

본인들이 게으르고 무능해서 가난한 것인데.’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마치 ‘동물의 왕국’에서 나오는 동물들처럼 힘이 없으면, 능력이 없으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 ‘우승열패’ 뭐 이런 교육을 오랜 기간 동안 받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는 21세기의 대한민국이지 않은가.


왜 새벽 4시부터 밤 11시까지 일하는 택배 기사의 배고픔과 가난의 이유가 게으름 때문인가.

얼마나 더 부지런해야 배고픔과 가난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가.


개인마다 시선의 차이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이 ‘동물의 왕국’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우리는 사람이니까.